[아들 옷 사는 날]

아들과의 동행

by 덜깬잠꾼

아들이 대학 졸업을 앞두고 캐주얼 정장을 산 다고 한다.

감정이 묘하다.


버거운 삶의 무게를 이제부터 혼자 짊어지고 가야 하는 것이 가엽기도 하고 나를 떠나서 혼자 살아갈 시간이 됨이 서글프기도 하다.


오래전 나의 희망은 놈이 대학 졸업만 하면 해방이라고, 빨리 졸업하기만을 손꼽았는데 정작 졸업을 한다고 하니 감정이 이렇게 왔다 갔다 할 줄을 몰랐다.


그래도 잘 컸다.

놈이 인생에 얼마나 무거운 짊을 지고 살아가야 할지 모르겠지만 벌어진 어깨를 보고 있자니 정장보다 무겁게 몸을 감쌀 삶의 무게가 그렇게 무겁게 보이지 않음에 안도를 한다.


입고 보니 잘 어울린다.

놈의 삶도 정장 맵시처럼 이쁘게 만들어졌으면 좋겠다.

놈이 대견하고 참 자랑스럽다.

2018. 08. 08 서울 엄마랑 함께



놈이 이번 설 성묘를 같이 가는 것이 어렵다고 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열정페이지만 지가 정말로 해보고 싶은 일을 하겠다고 우겼다.

객기라고 생각했지만 고생도 젊을 때 아니면 언제 해보겠냐며 그때만 해도 하고 싶은 것 다 해보라고 했다.

그때는 놈의 실패를 부축해 일으켜 줄 정도로 나도 젊었다.


열정페이가 이골이 났는지 회사를 때려치우고 공부를 하겠단다.

어려서 학원까지 보내 줄 때는 공부에 소질이 없다고 돈 낭비라며 차라리 그 돈으로 맛있는 것 먹자고 하던 놈이 공부를 한다니 기도 안 찼다.

그때도 나는 일으켜줄 정도의 힘이 있었기에 하고 싶은 것 하라고 했다.

놈은 집에서 가방끈이 제일 긴 사람이 되었고 어느새 보따리 장사를 하고 있다.


혼을 생각할 나이가 되었다.

최저시급보다도 못한 보따리 수입으로 생활을 할 수 있는 처지가 안된다.

어느 날 여자 친구를 데리고 오더니 장가를 가겠단다.

놈은 누굴 닮았는지 과감하다.

놈은 나를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나도 이제 나이가 들어 넘어지면 부축할 여력이 없는데 놈에게는 아직도 내가 큰 산으로 보이는걸까?


래서 이번 성묘에 예복을 맞추느라 함께 하기 어렵단다.

돌아가신 어른들에게 죄스러움 보다는 걱정이 앞선다.

대학 졸업 때 샀던 정장보다 엄청 무거운 예복을 입을 것이다.

더 이상 벌어지지 않은 어깨에 걸쳐질 예복의 무게를 아는지 모르겠다.


내가 입었던 옷을 물려줄 수도 없다.

스스로 골라 입어야 하는데 혼자가 아닌 둘의 무게를 가늠이나 하고 있는지?


성현이 말씀한 "이립"(而立)이라는 나이.

혼자 서야 한다.

다만 어떻게 서는 것까지 "이립"인지 정의하지 못한다.

어린아이가 혼자 일어나 첫 발걸음을 내딛는 것은 이립이 아니다.

호모사피엔스가 직립보행을 시작한 것은 이립일 수도 있다.


나의 절대적 방의 시간은 멀지 않았다.

그렇다고 놓고 좋은 티를 내지 못한다.

놈이 좋아하는 일이니 열심히 응원해 주기로 한다.

잘했다고 그리고 잘 살 거라고.


다만 해방의 날이 가까워질수록 내 어깨가 짓눌리는 찜찜함이 있다.

만세를 불러야 하는데 손을 못 들 것 같은 불길 함이다.


아직은 놈을 부축할 힘이 있어 다행이긴 하다.

아직은 놈에게 비빌 언덕일 수 있어 좋긴 한데

짓눌린 어깨가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좀 더 가벼운 짐이면 좋겠다.


그래도 놈이 대견하다.

늦었지만 나를 오래 살라고 하체 운동을 시작하게 한다.

2026.02.06 덜깬 잠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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