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먹기] [부족의 미학]

2017년 설에 바람

by 덜깬잠꾼

아들이 왔습니다.

밥상이 달라졌습니다.

내 여자의 얼굴에 미소가 사라지지 않습니다.

이 놈이 내 여자의 모든 것을 차지해 버렸습니다.

"아들아 옷 사러 가자!

고의 같지 않은 고의로 옷가지를 제대로 들고 오지 않은 고단수의 아들을 위해서 엄마는 알고서도 설빔이라는 명목으로 옷을 사줍니다.

저는 또 기사에 만족해야 합니다.

커피라도 한잔 얻어먹을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이 놈이 무지 부럽기만 합니다.


딸 놈이 어느 날 이럽니다.

"아빠! 효녀 딸 둬서 행복하지?"

"왜? 니가 효녀야?"

"나 같은 효녀가 어디 있어? 아빠가 힘들게 번 돈을 딸이 이렇게 즐겁게 쓰잖아!"

그 효녀가 오늘 온다고 합니다.

멀리 북경에서 남쪽 끝 광주까지 열 시간의 기차를 타고 말입니다.

아빠가 힘들게 번 돈을 알차게 쓰려고 이 이쁜 넘이 오늘 옵니다.

이런 놈이 왜 기다려질까요?


과거를 돌이켜 보면 이상하리만치 기억 속에는 "모자람", "부족"이라는 단어가 남아 있습니다.

지금의 잣대로 본다면 "궁핍"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과거를 곱씹으며 살아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일까요? 부족했던 그때가 풍족한 지금보다 행복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왜인지 모르겠습니다.


핸드폰이 없어도 좋았고 인터넷이 없어도 좋았던

아들 딸 넘이 고3이라도, 회사 일이 많아서 가지 못한다는 핑계를 찾을 필요가 없는

고향집에 가는 것이 당연했던 그때가 그립습니다.

통장 잔고가 모자더라도 내일을 걱정하지 않고 양손 가득 바리바리 싸들고 갔던 무모함이 그립습니다.


넘쳐남이 대세인 지금, 올 설에는 부족하고 배고팠던 그때를 생각하며 떡국만으로도 배부를 수 있다는 소박함을 느끼셨으면 좋겠습니다.

빔을 받았던 기대와 즐거움을 올 설에는 주는 기쁨으로 채웠으면 좋겠습니다.

받는 즐거움은 나의 의지로 조절을 할 수 없지만

주는 즐거움은 내가 조절을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올해에는 주는 즐거움이 많은 한 해 만드시길 소원합니다.


새해에는 얼굴 가득 웃을 수 있는 날들이 많기를 바라오며 유행가 가사처럼 아프지 말고 행복한 한 해 보내십시오.

마지막으로 이 메시지가 부족의 미학을 느끼시는데 늦지 않았기를 바라겠습니다.

2017. 01. 26 덜깬잠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