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쓰다.
힘겹게 내딘 한발 한발 속에 거친 숨을 내뱉는다.
차가운 공기를 가르고
작은 연못의 두꺼운 얼음도 깼다.
춘곤증에 빠지기 전에 도착하려고 걸음을 재촉한다.
여기 왔노라고 바람에 따뜻한 입김을 불어넣는다.
양지바른 어딘가에는 따뜻한 햇살도 흩뿌린다.
여기 왔노라고 여기저기 흔적을 남긴다.
봄은 그렇게 겨울과 이른 동거를 시작했다.
밤이면 숨었다가 낮이 되면 나타난다.
낮이 길어진 만큼 겨울이 숨어들 공간은 줄어든다.
겨울은 이불속에서도 숨어 있지 못하고 봄에게 자리를 내준다.
봄은 그렇게 소리 없이 왔다.
꽃샘은 이른 봄을 겨울 속에 은폐시킨다.
두꺼운 옷으로 둘둘 말린 남자의 감각은 여전히 겨울이다.
오라고 불러놓고 막상 왔는데 일에 묻혀 아는 체를 안 한다.
"나 잡아 봐라"며 눈앞에서 알짱거리는데도 눈을 감고 딴짓이다.
첨병으로 찾아온 봄은 남자에게 발각되지 않는다.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했음에도 뭔가 찜찜하다.
발각되어 장열 하게 전사해야 하는 것이 첨병의 역할이기나 하듯이.
기지개라도 켜고 하늘이라도 쳐다보라고
봄은 남자의 나른함을 더해본다.
봄볕이 참 좋다.
낮잠 자기 좋은 날이다.
2026. 03. 13 덜깬잠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