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두 번 키우면 우리 인생도 다 사는 거죠”

충주공동체 허금례·최창섭 씨

by 밀란킴데라

밭에 오가면서 부지런히 주워 모은 도토리로 묵을 쑤고 상추를 뜯어서 한데 무쳐 뚝딱 무쳤다. 속이 꽉 찬 도토리묵은 젓가락으로 집어도 댕강 부서지지 않고 단단했다.

죽 맑다가 비가 내렸다. 서리가 내리는 상강 때 아니랄까 봐 공기에 습기가 가득했다. 그 습기를 하늘이 다 머금지 못해 종일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충북 충주 ." 있는 허금례·최창섭 씨 과수원에는 내리는 비만큼이나 꽤 많은 양의 사과가 ‘우수수’ 땅에 떨어져 있었다.


허금례1.jfif 아직 따지 못했는데 달린 게 많지 않다. 얼마 전 소비자들이 '사과 따기' 하러 와서, 한바탕 수확하고 남은 건지 알았다고. 올해 어려웠던 사연을 들으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올해 사과농사는 완전히 망쳤어요. 다른 때는 18kg짜리 컨테이너가 1천 개 정도 나갔는데, 이번에는 200~300개밖에 안 되는 것 같아요.”


무농약으로 복숭아 9천900㎡(3천 평), 유기농으로 블루베리 1만 3천200㎡(4천 평)을 지으면서 무농약 사과농사도 1만 3천200㎡(4천 평)이나 짓는 게 워낙 만만한 일은 아니지만 특히 올해 사과농사를 망친 건, 남편 최창섭 씨가 많이 아파서다.


최창섭 씨는 어릴 때부터 힘이 좋아 무슨 일이든 거뜬하게 해냈고 건강한 편이었다. 지난해 오른쪽 무릎이 조금 불편해 병원에 갔던 게 화근이었다. 병원에서 줄기세포를 이식해 관절염을 치료하라고 권했고, 그 수술로 인해 심각한 부작용이 생겼다. 병원에 두 발로 걸어 들어갔지만 수술 이후 걸을 수 없게 되었고 큰 병원으로 옮기면서 7~8개월가량 치료를 계속했다. 움직이거나 조금이라도 무리하면 온몸에 열이 났다. 39℃로 오르는 열을 내리려 몇 달 동안 매일 해열제와 항생제를 달고 살았다. 항암치료를 받는 사람들도 입원 기간은 길어야 몇 달인데 최창섭 씨는 그들의 퇴원을 보며 병원 침대를 지켜야 했다. ‘암보다 더 심각한 병에 걸린 것’이라는 생각에 울기도 많이 울었다. 퇴원한 것도 완치되어서가 아니라, 약해진 혈관이 더 이상 항생제를 받아들이지 못해서였다.


수술 과정에서 병균이 들어간 모양이라고 병원에서 이야기하면서도 무슨 병균인지는 모른다고 했다. 병원의 과실을 찾으려 법률 상담도 받아보았지만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했다. 다행히 지금은 집 앞 가까운 곳까지는 걸을 수 있게 되었지만, 앞으로도 무리는 금물이다. 늘 바삐 몸을 움직이던 사람에게는 답답하기만 할 터이다. 그는 “그래도 감사”하단다.


허금례 씨는 시간 날 때마다 블루베리 나무 밑에 있는 흙을 꼭꼭 눌러 밟아 준다. 농약을 안 쳐 미생물이 살아 있는 밭에는 지렁이가 있고 그 지렁이를 먹으려고 두더지가 돌아다닌다. 두더지가 땅을 헤집으면 뿌리에 바람이 들기에 그 흙을 눌러 준다. 입동이 되어 땅이 얼기 전에 부지런을 떨어야 한다.


허금례2.jfif 시간 날 때마다 나무 밑 흙을 꾹꾹 눌러 밟는다. 미생물 가득한 흙에 있는 지렁이를 잡으러 온 두더지가 땅을 헤집어 뿌리에 바람이 들까 봐서다. 입동되어 땅이 얼기 전 서둘러야한다

혼자는 버거운 농사

올해 농사는 고스란히 허금례 씨 몫이었다. 충주 시내에 사는 아들이 주말이면 돌아와 일을 거들었지만 역부족이었다. 무엇보다 방제 시기를 놓친 탓이 컸다. 방제는 그간 최창섭 씨 몫이었기 때문에 허금례 씨가 직접 하는 건 처음이라 “아저씨(남편)가 시키는 대로 했지만 순서를 틀리”는 등 서툴렀다. 농약을 안 치기 때문에 대신 유황과 석회를 섞어서 방제 제제를 만들어 작물에 뿌리는데, 이 유황합제를 만들다가 실수했다. 유황과 석회의 비율이 일정해야 하는데 두 개를 섞어 고다가 넘쳐 버렸고, 어느 것이 얼마나 넘친 건지 정확히 모르는 채 그 위에 다시 유황을 섞었다. 아까워도 쏟아버리고 다시 해야 했다고 이제 와 후회해도 소용없다. 순 나방이 수정하지 못하게 막는 교미 교란기도 너무 늦게 달았고, 적과도 둘이 하다가 혼자 하려니 역부족이었다. 진즉 ‘올해 농사는 성공하기는 힘들겠다.’고 예감했더란다.


“순 나방이 다 먹어서 저렇게 바닥에 다 떨어졌어요. 봄에 순 나방이 한 마리 생기면 1년 동안 알을 300개나 낳아요. 과실 하나에 딱 하나씩만 알을 낳아요. 한 마리를 빨리 잡지 못하면 순식간에 번져요. 순 나방이 먹어 땅에 떨어진 사과도 얼른 치우고 물에 담그고 해서 벌레를 죽여야 하는데 일손이 부족하더라고요.”


허금례 씨가 벌레가 먹은 부분을 도려내고 노란 속살을 내비치는 사과를 내밀었는데, 침이 고일 정도로 딱 적당히 시고 ‘더 달면 과할’ 정도였다. ‘아삭’ 하니 입맛이 돌았다. 일부는 근처 주스 가공공장에 낸다지만 그래도 많은 것이 버려진다고 생각하니 아까웠다. 잠시 말을 잊고 있더라니 최창섭 씨가 “이런 사과 봤어요? 제일 좋은 거예요. 벌레 먹은 사과는 공판장에도 없어요.”라고 했다. 허금례 씨가 “농사 이렇게 지은 게 자랑은 아닌데 그래도 정말 달죠?”하더니 사과 한 조각 내밀면서 하는 얘기가 남편 못지않게 ‘무한 긍정’이다.


“그나마 올해는 사과나무가 해거리를 하느라 열매가 많이 맺히지 않는 때예요. 그때 벌레를 먹었으니 얼마나 다행이에요. 안 그러면 치우는 것도 얼마나 더 힘들었겠어요?”


아내는 남편을, 남편은 아내를 고마워하며

“예초기 작동하는 법을 진작 배워서 남편 일 좀 거들어 줄 것을, 내가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렇게 힘든지 몰랐어요.”


삼십 년 가까이 농사를 해 왔지만 허금례 씨는 최창섭 씨가 아프면서 새로이 해 보는 일이 많다. 몸이 건강할 때 최창섭 씨는 깜깜할 때 일어나 아침까지 풀을 베었고, 다른 일을 못 하는 비 오는 날 같은 경우는 새벽부터 점심 먹기 전까지 예초기를 돌렸다. 허금례 씨는 비 오는 날 남편이 밖에서 일할 때 집에서 텔레비전을 보았다는 이야기를 하며 코끝이 찡해졌다. 그 얘기를 듣던 최창섭 씨도 “나를 이렇게 아끼고 사랑하니까 그 마음이 고맙죠. 감개가 무량해요.” 하더니 살짝 목이 멘다.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6월까지 최창섭 씨가 서울에 있는 병원에 입원한 동안, 허금례 씨는 낮에는 충주에서 농사일을 하고 밤이면 서울에 가서 병간호를 했다. 힘든데 뭐 하러 왔느냐고 말은 그렇게 하면서, 자기를 보면 얼굴이 환해지는 남편을 혼자 둘 수가 없었다고 했다.


최창섭 씨와 허금례 씨는 소개로 만났다. 전라도 순천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일하던 허금례 씨와 앞뒤에 앉아 일했던 이가 사촌오빠인 최창섭 씨를 소개해 주었다. 최창섭 씨는 젊은 아가씨가 농사지으면서 산다니까 고마웠고, 허금례 씨는 착하다고 해서 그거 믿고 결혼했다. 당시 허금례 씨는 21살, 최창섭 씨는 25살이었다. 허금례 씨는 농사짓는 가정에서 자라 농사가 낯설지 않았고, 농사가 팔자려니 여겼다. 최창섭 씨의 삼 형제 부부가 이곳 충주에서 같이 친환경 농사를 짓는 것도 힘이 된다.


허금례3.jfif 많은 말을 하지 않아도 바라보는 눈빛에서 서로 아끼는 마음이 전해졌다. 빗속에서도 고즈넉하고 아름다운 과수원 모양새가 어쩔 수 없이 농부와 닮았다.


마을에서 처음으로 시작한 친환경 과수농사

최창섭 씨는 어릴 때 중이염을 앓은 뒤 귀가 어두워져 중학교 3학년 무렵엔 선생님 말씀을 잘 듣지 못할 정도로 악화되었다. 허금례 씨가 보청기를 선물해 준 뒤로는 의사소통에 무리가 없다. 어릴 때 귀가 아파서 객지에 가 보지 못한 남편에게 허금례 씨는 더 넓은 세상에 나가 보라고 권했다. 어릴 때부터 신앙생활을 해 오던 최창섭 씨에게 1980년대 중반 가톨릭농민회 운동을 할 기회가 생겼고, 허금례 씨는 남편이 그 일을 맘껏 하도록 도왔다. 집에 농민운동하는 대학생들이 수시로 와서 머물기도 하고, 최창섭 씨도 쌀값 투쟁이나 수세 폐지 투쟁 등이 있는 곳은 어디든 달려갔다. 농협중앙회, 국회의사당, 청와대, 각 군청과 시청 등 안 가본 데가 없다. 최창섭 씨가 한 달 동안 서울에서 풍찬노숙하며 집회할 때도 허금례 씨는 한마디 잔소리도 않고 묵묵히 농사일을 했다. 허금례 씨 말대로 “그게 바로 뒷바라지”였다. 동네 사람들은 “전라도 마누라 얻어서 ‘빨갱이’가 다 되었다.”라고 말들 했다.


최창섭 씨는 가톨릭농민회 활동을 하면서 농약의 폐해를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친환경 농사를 시작했다. 그때는 예초기도 없어 낫으로 풀을 벴다. 굳이 어렵게 농사짓는 부부에게 사람들은 “미쳤다”라고 했지만 그런 말들에 신경 쓰지 않았다. 가톨릭농민회 활동을 하면서 당시 한살림청주생협의 오상근 상무와 인연이 닿았다.

“마을에서 우리가 처음 친환경 과수를 시작했는데 어려움이 많았어요. 농약 안 치고 과수농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사람도 당시에는 없었고, 사과 이파리가 다 떨어져서 농사를 실패하고, 또 실패하고 했어요.”


고심하다가 인연을 만났다. 경북 상주에서 친환경 과수농사를 하는 햇살 아래 공동체 조성용 씨에게 석회보르도액에 대해 배웠다. 그런데 처음엔 이슬이 맺혔을 때 석회보르도액을 치는 바람에 잎이 모조리 탔다. 다른 농약과 달리 석회보르도액은 날이 뜨거울 때 쳐야 하는 걸 몰랐다. 석회보르도액을 치면서 농사가 훨씬 잘되었다. 무엇보다 한살림 농사를 하면서 보람된 것은 내가 농사지은 작물을 누가 먹는지, 그들이 어떤 마음으로 먹는지 알게 된 것이다. 몇 날 며칠 비가 와서 당도가 떨어진 복숭아도 받아 주고 먹어 주는 소비자 조합원이 있고, 그들이 오히려 고맙다고 말들을 해 주니 힘이 나고 자부심이 생겼다. 그리고 힘든 시간을 견뎌 내는 또 하나의 힘은 하늘을 바라보는 신앙이었다.


“성서에 보면 하늘을 나는 새는 아무것도 하지 않지만 하느님이 먹이신다는 말이 있어요. 하물며 사람은 어떻겠어요. 걱정한다고 나아지는 것도 아니고 성실하게 살고 있으면 먹고살 수 있도록 다 남겨 주실 거예요.”


허금례4.jfif 순나방 피해를 입어 사과가 저리 되었다. 벌레가 좋아할 정도로 달지만 저 상태로 시장에 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벌레 잡기 역부족이었을 만큼 올해 농사는 고되었다.


하늘과 작물과 나, 삼박자로 벌이는 향연

지지난해 사과밭이 냉해를 입어 사과나무를 다 베어 냈다. 사과를 심었던 곳에 다시 사과를 심으면 지력이 약해지기 때문에 지난해 그곳에 블루베리를 심었다. 친환경 농사를 하면 땅에 미생물들이 살아 있고 그걸 먹는 지렁이도 꿈틀댄다. 지렁이를 좋아하는 두더지가 땅 밑에 구멍을 내며 돌아다니고, 이 때문에 뿌리를 흙이 단단하게 덮고 있지 못해 바람이 들고 나무가 말라 버린다. 수시로 걸어 다니며 땅을 밟아도 한계가 있다. 사과나무는 특히 냉해에 약한데 그나마 블루베리는 괜찮다. 허금례 씨는 새로 시작한 블루베리 농사가 재미있다.

“나는 블루베리 밭에 가면 막 엔도르핀이 솟는 것 같아요. 사과나무는 키가 커서 사다리도 써야 하고 목도 아프고 열매도 무겁거든요. 그리고 나 혼자 하기 벅찬 부분이 많고. 그런데 블루베리는 전지도, 적과도, 풀 뽑는 것도 혼자 다 할 수 있어서 정말 재미있어요.”


복숭아는 올해 맛은 좋았지만 크기가 작았다. 가물어서 복숭아가 엄청 달지만 크기가 작고 무게가 미달되어 많이 팔지 못했다. 그래도 8월에 난 후작은 상태가 괜찮았다. 허금례 씨는 농사를 지으면서 하늘에 맡길 건 맡기고, 내가 할 것은 하는 지혜를 얻었다.


“한약을 먹을 때 지어 준 사람, 달여 준 사람, 먹는 사람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잖아요. 농사도 그래요.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하늘이 안 도와주면 안 되고, 하늘이 도와주는데 내가 열심히 안 해도 망치고 하늘과 작물과 내가 삼박자를 이루어야죠.”


복숭아밭을 거닐던 최창섭 씨가 복숭아나무를 가리키며 고목이어서 내후년쯤에는 베어 내고 다시 심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복숭아나무나 사과나무는 20년 동안 자라는 데 두 번 키우면 우리 인생도 다 사는 거죠. 이제 한 번 더 남았어요.”


그의 말을 들으며 나도 모르게 걸음을 멈춰 섰다. 내가 먹는 사과가 이 농부들의 인생 반만 한 무게를 지니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에 순간 가슴이 먹먹했다.


지난해 산판에서 얻은 잔가지를 바숴 나무 밑에 수북하게 쌓아 두었다. 너무 많지 않냐고들 말해도 신념대로 했다. 과수농사에서 얻은 노하우가 있어 블루베리 농사는 그리 어렵지만 않다


허금례6.jfif 밭에 오가면서 부지런히 주워 모은 도토리로 묵을 쑤고 상추를 뜯어서 한데 무쳐 뚝딱 무쳤다. 속이 꽉 찬 도토리묵은 젓가락으로 집어도 댕강 부서지지 않고 단단했다.

*이 글은 도서출판 한살림에서 펴 낸 잡지 <살림이야기>에도 실렸습니다.

2014년 00월[땅땅거리며 살다-충주공동체 허금례·최창섭 씨]_글 김세진 편집부 \ 사진 류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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