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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나기 Mar 27. 2024

강아지풀의 나날

                           


집고양이들은 자극이 부족하기 때문에 무료해지기 쉽다고, 그러니 인위적인 자극이 필요하다고 했다. 다른 고양이도, 개도 없는 딱지에게 자극이라면 사람들이 시간을 들여 사냥놀이를 해 주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 굳이 고르라면 나는 사냥놀이와 녀석의 화장실 청소 중 화장실 청소를 고르겠다. 아무리 정성껏 낚시대를 흔들어봐야 나로서는 2,3분이 한계다. 



예전 하루키의 산문집에서 고양이 비디오에 대한 내용을 읽었던 것이 떠올랐다. 그가 미국에 체류할 당시 누군가로부터 고양이들이 좋아하는 비디오가 있다는 것을 전해듣고 구해봤더니 과연 고양이가 한참동안 집중해서 비디오를 시청하더란 이야기였다. 어쩌면 지금 시대라면 유튜브에 뭔가 나와 있지 않을까? “고양이가 좋아하는 영상”으로 쳐보니 과연 여러 가지가 뜬다. 한 시간 내내 수십 마리 새들이 먹이를 쪼아대고, 물고기들은 어항속을 헤엄 키고, 누군가는 바닥에 사냥놀이용 낚시대를 드리운 채 쉴 새 없이 휘둘러댄다.




처음 동영상을 틀어줬을 때 딱지는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마술이라도 일어난 것일까, 녀석은 까맣던 화면에서 갑작스레 수십마리 새가 나타나자 크게 놀란 눈치였다. 어지간해서는 거실장 위로는 점프하지 않던 녀석이 몸을 날렸다. 텔레비전 화면 위로 얼굴을 들이밀며 탐색하더니 조금 뒤에는 텔레비전 뒤쪽을 뒤지기 시작한다. 텔레비전 뒤에 새들이 감춰져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 우리는 녀석이 생각보다 영리하다며 감탄했다. 하지만 뒤를 아무리 뒤져본들 새가 나타날 리는 없다. 한참을 머뭇거리던 녀석은 좁은 공간이 불편한지 다시 바닥으로 내려와 목을 길게 내밀고 그냥 화면을 감상한다. 몸을 낮추고 언제든 튀어나갈 준비 자세를 취한다. 하지만 그렇게 얼마나 계속할 수 있을까? 긴장이 과했는지 녀석은 십분 정도가 넘어가자 지친 기색이다. 스크레쳐를 실컷 긁어서 쌓인 긴장을 풀어내고 이제는 딴 일에 몰두한다. 




영상을 두번째 세번째 반복할수록 반응은 약해졌다. 반복되는 화면에 질려 버린 걸 수도 있고, 가짜에 속아 넘어가지 않을 만큼의 연륜이 쌓인 것인지도 모른다. 뭐가 되었든 고양이를 오래 만족시키기란 힘들다.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다들 동의하겠지만, 녀석들은 한 가지 장난감에 쉽게 싫증낸다. 혼자만의 생각이지만 사람과의 평균 수명이 다른 만큼 시간에 대한 감각도 다른 건 아닐까 추측해본다. 다섯 살인 딱지는 인간 나이로는 32살. 단순 계산하면 고양이의 하루는 우리의 일주일 정도와 비슷하겠다. 매번 다른 장난감으로 놀아줘야 하는 이유도 이렇게 생각하면 왠지 납득이 가기도 한다. 그런 이유로 녀석의 사냥놀이 장난감은 계속 늘어간다. 물고기, 쥐, 잠자리, 나비, 깃털, 공, 깃털달린 공, 방울. 녀석은 매번 그날의 놀거리에 까다롭다. 




하지만 항상 통하는 아이템이 하나 있으니, 바로 강아지풀이다. 실제로 고양이 장난감 중에는 강아지풀을 흉내낸 장난감이 있다. 강아지풀이 무성한 시기라면 나는 외출했다 돌아올 때 가끔 강아지풀을 하나씩 뜯어온다. 공원이 있고, 주변에 주인 없는 노지가 많은 여기는 여름부터 가을까지 강아지풀이라면 먼지만큼 돌멩이만큼이나 흔하다. 많고 많으니 털부분이 진짜 강아지 꼬리처럼 풍실풍실하고 손에 잡기 편하게 대가 길다란 놈으로 까다롭게 고른다. 내 손에 들린 강아지풀을 보자마자 딱지는 초흥분상태다. 어서 놀자고 졸졸 따라다니며 재촉한다. 하지만 혹시 벌레가 붙어 있을 수도 있으니 나는 먼저 꼼꼼히 살핀다. 그렇게 여러 번을 털어 내고 마지막에는 물로 한 번 헹군다. 풀인만큼 금방 찢어지겠거니 했지만 실제 써보니 한번 신나게 노는데 무리 없을 정도의 내구성도 있었다. 


자, 선물이야.



녀석은 선물에 감사 인사라도 하듯 온 몸을 바쳐 신나게 논다. 껑충껑충 뛰기도 하고 호떡 뒤집듯 몸을 뒤집기도 하면서 풀을 물어뜯으려 안간힘을 쓴다. 다행히 딱지는 지금껏 단 한번도 강아지풀에 싫증을 낸 적이 없다. 이 세상 어디서 풀 하나만으로 다른 존재를 이렇게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단 말인가? 흥이 난 고양이를 보고 있노라면 내가 더 신이 난다. 딱지에게 주었지만, 실은 내게 주는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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