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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공지마 Jul 17. 2022

[한자썰62] 眞, 알 수도 볼 수도 없는 씨앗

貞과 眞의 분화와 차별

眞(참 진): 匕(비수 비)+目(눈 목)+L(숨을 은)+八(여덟 팔)


眞(참 진)은 낱자들로 그 뜻을 가늠하기 너무 어렵다. 참된 것은 비수(匕)처럼 날카로운 눈(目)으로 숨겨져 진 속(L)에서 분간(八)해 내야 비로소 볼 수 있다?! 또는 참된 것은 쉽게 드러나지 않으므로 예리한 눈으로 거짓된 것들과 잘 분별해야만 겨우 발견할 수 있다?! 상상으로 둘러대 본 억지 해석이다.


<설문해자(说文解字)>에서 허신(許愼) 선생님께서도, '득도한 신선이 비행체를 타고 하늘로 승천하는 장면'이라며 고도의 상상력을 발휘하셨다가 후학들로부터 글자의 생김만을 보고 그 뜻을 섣불리 지어냈다는 비판을 들으신다. 한자 해설의 원조격이신 이 분, 썰이 정말 만만치 않은 분이신데, 眞의 해독이 그만큼 난해한 탓이다. 주 1)


[표 1] 眞의 자형변천

眞(참 진)은 貞(곧을 정)의 의미가 발전하면서 파생한 글자다. 갑골문 貞은 손잡이가 두 개 달리고 다리가 셋인 청동솥, 鼎(솥 정)이다.(표 2의 1) 그 솥이 각지고 두터워져 점차 당당해지더니, 상대(商代) 말 무렵에 이르면 윗부분에 卜(점 복)이 추가된다.


그렇게 변화하다가 생긴 글자가 금문 眞이다(표 1의 1). 금문 眞은 새로 생겼다기보다는 금문 貞(곧을 정)이 眞(참 진)으로 쓰이기 시작했다고 해야 맞을 것 같다.(표 2의 5) 금문 貞과 금문 眞은 가운데 횡선 하나 차이 말고는 완전히 동일하다. 두 글자는 발음도 쩐(Zhen)으로 똑같고 성조조차 삼성(三聲)으로 같다. 그러니 말로 들어서는 두 글자를 구분할 방법이 없다.

[표 2] 貞의 자형변천

갑골문 貞, 즉 鼎(솥 정)은 신에게 기원을 드릴 때 제물을 담아 두는 신성한 솥이다. 인간들은 신이 그 솥에 제물을 흠향(歆饗)하고 자신들의 기원이 이루어지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무심한 신은 나타나지도 응답하지도 않았고 인간들은 신을 의심하고 불안해했다. 신과 연결되는 통로인 鼎(세발솥 정) 역시 말이 없었다.


그때 영리한 누군가가 신의 징표라고 주장하면서 고안해낸 것이 占(점 점)이다. 우연의 무위성에 약간의 신비한 행위를 보태면, 자연에 무지하고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가득한 미개한 인간들은 그 영리한 자들의 현혹에 쉽게 넘어간다. 점이 유행해 널리 퍼지자 글자에도 반영이 된다. 거북 등껍질에 난 금, 卜(점 복)이 신성한 鼎 위에 추가된 이유다. 이것이 지금의 貞이 만들어진 유래다. 물론, 허신처럼 자형의 변천만을 근거해서 꾸며낸 필자의 상상이지만, 표 1의 1~3과 표 2의 1~5를 비교해 보면 분명히 그렇게 읽힌다.


알 수도 없고 볼 수도 없지만, 필연적으로 존재해야 할 그 무엇을 사람들이 眞이라 해서 貞과 구별해서 부르기로 한다. 금문 貞(표 2의 5) 가운데에 횡선 하나를 더 그어서...! 금문 이후의 眞은 여러 차례 간화 되어 真에 이른다. 그런데, 그 모양이 貞을 너무나 닮았다. 원래 하나였다가 의미의 확장으로 분화된 두 글자가 이천여 년 오랜 세월 동안 독립된 간화 과정을 각각 거쳤지만 결국에 다시 닮음꼴이 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사족, 종교적 기원을 둔 貞 자는 '곧다', '바르다'라는 보편적 의미로 만들어졌다. 신령에게 길흉을 묻는 순간인 복문(卜問)하는 거룩한 때에, 그 일을 맡은 이는 '마음이 곧바르고 지조가 굳으며 성심을 다해야 했기'에 貞은 그런 뜻을 갖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절(貞節), 정숙(貞淑) 그리고 정조(貞操)라는 식으로 여성의 행실에 국한된 봉건사회 성적 억압의 용도로 貞 자가 쓰인 연유는 무엇일까?


상고시대에 주술사가 여성이 비중이 높아서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박수(博數)라고 해서 남자 무당을 부르는 명칭이 따로 있다. 한자도 일반적인 무당을 가리키는 巫(무당 무)는 여자 무당에 쓰이고, 남자 무당을 覡(박수 격)이라 해서 따로 글자가 있다. 별도로 명칭이 있는 것은 특수한 소수인 경우가 많다. 주 2)


眞이 파생한 탓이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眞이 본질이나 본성, 진실과 같은 형이상학적 보편성을 가리키게 되자, 貞은 인간의 행위나 태도, 생각, 또는 상대적 하위문화에 대해 올바름을 규율하는 일종의 역할분담이 일어난 것이다. 은 현상으로 주어진 규율을 따르고 지키는 것이니 수동적이고 보수적이다. 眞은 현상에 안주하지 않고 본질을 끊임없이 추구하니 능동적이고 진보적이다. 眞은 미신과 우상에 저항하고 이성과 과학을 키워내는 씨앗이 된다.


자유주의와 인권이 주류 사조가 된 세상에서 貞은 설 자리를 잃었다. 정절과 정조는 차치하고 '정숙(貞淑)하다'는 말을 칭찬으로 여기는 여성이 과연 얼마나 있을까! 우리 부모와 우리 세대까지와는 다르게 아이들 이름에 貞 자를 쓰는 경우를 잘 보지 못한다. 그러나, 眞은 세상에 온통 넘쳐난다. 정치적인 좌와 우를 가리지 않고, 종교의 종류와 분파를 가리지 않는다. 과학을 하는 동인이 眞이다. 그 모든 곳에서 眞을 추구하고, 그 곳에서 발견했다는 모든 것들을 眞이라 주장한다.  


갑골문에서 貞이라 쓰인 것은 貞人, 즉 점쟁이를 가리킨다. 한편, 眞人은 도가(道家)에서 본성을 잘 보존하고 참된 것을 갈고닦아서 득도한 경지에 이른 사람을 가리킨다. 貞과 眞은 그 기원이 같음에도 그 쓰임에 격차는 너무나 크다. 呵呵。


주) 1. 허신(許愼)이 소전 眞을 보고서 한 해석이라 한다. 비수(匕)와 눈(目)을 합쳐서 사람, 모양자 '一' + '儿'은 그 사람이 올라탄 비행체라는 설명이다. 그런데, 소전 眞은 그 갑골문이 형태가 변한 것일 뿐이므로, 소전의 모양을 가지고 그 뜻을 추정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것이 후학들의 지적이다.

2. 박수는 한자 박수(博數)로 표기하지만 한자와는 관계가 없고 알타이어계에서 남무를 부르는 명칭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유력하다. 만주 어에서는 faksi, 나나이 어에서는 paksi, 어원키 어(또는 예벤키 어)에서는 baksi, 몽골 어에서는 baksi 혹은 balsi, 터키 어에서는 baksi, 키르기스 어에서는 baksa로 불린다.(한국민속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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