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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공지마 Jul 17. 2022

[한자썰63] 前, '不行而進'하는 사람

'앞'과 '가위'의 기원과 진화

前(앞 전): 止(그칠지) + 舟(배 주) + 刀(칼 도)


前(앞 전)의 갑골문은 舟(배 주)와 止(그칠지)의 합자 歬이다. 不行而進이라는 뜻으로 만들어졌은데, 사람이 움직이지 않아도 나아가는 것, 즉 물과 바람의 흐름으로 배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에 착안해서 앞이라는 방위를 나타내게 된 말이다. 주 1)


[표 1]의 1에서 상부는 止의 갑골문인 발인데 위에서 내려다본 왼발의 상형이다. 하부에 舟의 갑골문은 통나무의 속을 파낸 작은 배를 가리킨다. [표 1]의 2에 行(다닐 행) 자 한가운데 겹쳐진 歬자를 보면 허신(許慎)이 前을 왜 不行而進이라 설명했는지를 알 수가 있다.


[표 1] 前의 자형변천

소전에 이르러 歬자에서 前이 분화한다.([표 1]의 7) 상상컨대 배가 물살을 가르고 앞으로 나아가는 모습이 가위가 물건을 자르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닮았기 때문인 것 같다. 새로운 발명품 가위로 가죽을 마르면서 사람들은 '배의 전진'을 떠올렸고, 거기서 생긴 말, 歬를 가위를 가리키는 데에 빌려 쓰기 시작한다. "자네, 거 뭐라더라 '앞(歬)'이라는 거 써 봤나? 엊그제 소가죽을 마르는데 '앞(歬)'을 썼더니 자를 안 대고도 아주 똑 바르게 잘리고 아주 질긴 가죽인데도 힘을 별로 안써도 되더라구...!'


[그림 1] 당나라 가위

상고시대에 가위는 상류층의 전유물이다. 도끼나 칼과 달리 주로 얇은 것을 자르는 데 쓰는데, 그 시대에 얇은 것들이라야 동물의 가죽이나 천, 양의 털, 초의  심지 같은 대체로 귀하고 값진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무슨 초의 심지?'라 할지 모르겠으나, 실제로 신라 경주에서 출토된 유물 중에는 초심지를 자르는 용도로 쓰인 전용 가위가 발견되기도 한다. 주 2)

 

어쨌든, 歬은 점차 '앞'이라는 방위와 '가위'라는 공구를 함께 나타내게 된다. 당연히 헷갈리는 일이 많았을 것이다. 그래서, 가위를 위해서 만든 글자가 前(앞 전)이다. 歬자에 刀(=刂)(칼 도)를 추가한 것이다.


상류층의 전유물이던 가위는 점점 민간으로 퍼지기 시작한다. 귀족들만 쓰기에는 일상생활에 너무나 유용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이때부터 글자 사용에 역전(逆轉)이 발생한다. 가위(前)가 앞(歬)을 밀어내 버리고 대신해 버린 것이다. 사람들은 추상성이 강한 歬를 '앞'으로 사용하기보다, 구체적으로 일상생활에서 직접 접하는 前을 '앞'의 의미로 사용하는 것이 더 편했을 것이다. 어차피 가위(前)가 앞(歬)에서 파생한 글자가 아니던가 말이다!


결국, 먼저 글자인 歬(앞 전)은 도태되고 거의 쓰이지 않게 된다. 정작 前은 '가위'에서 그 자리를 옮겨 '앞'의 자리를 차지한다. 前에는 지금도 가위라는 의미가 남아는 있다. 그러나, 거의 쓰이지 않는다. 歬이 도태되고 前을 두 가지 의미로 쓰다 보니 사람들은 또 혼선이 생긴다. 할 수 없이 가위를 명확하게 구별하기 위해서 剪(가위 전) 자가 또 만들어진다. 가위는 칼을 두 개 엇갈려 합친 도구이니 剪자에 刀가 두 개인 것과 딱 맞아떨어진다. 剪이 '앞'의 자리를 넘볼 일은 그 후로 더 이상은 없어졌다.



사족, 이렇게 써 놓고 보니, 한자의 자형변천은 생물의 진화 과정을 너무나 닮았다. 여러 가지 원인으로 돌연변이가 생기고 자연선택에 따라 적응 변이가 살아남는 과정에서 생물의 종은 끊임없이 진화한다.  갑골문 歬이 문명이 발달하면서 의미가 확장되고 그 결과 돌연변이 前을 만든다. 前이 사회(자연)선택을 당하자 歬이 도태되어 前은 歬의 자리를 빼았는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다시 剪이라는 돌연변이가 만들어 진다. 최초의 부분 개체 발(止)과 배(舟)이 합쳐진 기이하게 생긴 쌍성체는, 歬와 前 그리고 剪으로 종의 다양성을 만들어 낸다. 그 종의 다양성은 인간의 문화와 문명의 발전에 바탕한다.


가위는  '' 표현하는 대체물이 되었을까에 대해   가지를  보탠다. 가위는 눈에 보이는 잘리는 방향과 압력을 가하는 방향이 일치하지 않는다. 가위는 압력이 상하로 가해지기 때문에 가위에 가죽이나 옷감이 잘려 나가는 '앞쪽'과는  방향이 다르다. 반면, 칼이나 도끼는 압력을 가하는 방향으로 대상이 잘리거나 쪼개져 나간다.  작동원리를 허신() '不行而進',  움직이지 않아도 나아가는 배의 동작원리와 같다고 인식했던  같다. 가위를 처음 발명한 어떤 사람이, '가위는 마치 배처럼 밀지 않아도 저절로 물체를 자르고 앞으로 나아가니 가위를  부르도록 하자!'라고 했을 것이다. 힘쓰지 않아도 무리하지 않아도 드러내지 않아도 순리대로 일을  풀어 나가는 '不行而進'하는 사람이 된다면  좋겠다. 이상은 순전한 뇌피셜이다. 어디 가서 전파혔다가는 욕보신다. 哼哼。


주) 1. 䒑(초두머리 초)는 止를 간략화시킨 모양자로 보았다.

2. 중국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가위는 전한(前)시대 때 것이다.([그림 2]) 그 전 시대 출토유물이 없으니 당시 가위가 실제로 어떤 모양인지 알 수는 없다, 글자와 관련 기록으로 그 존재를 알 뿐이다.

[그림 2] 가위의 발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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