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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공지마 Jul 18. 2022

[한자썰64] 後, 노예와 군왕의 상통

먼저 된 자가 후에 되고 후에 된 자가 먼저 된다.

後(뒤 후):彳(조금 걸을 척)+幺(작을 요)+夂(뒤쳐져 올 치)


後(뒤 후)는 발에 족쇄가 채워진 노예가 길을 걷는 장면이다. 彳는 사면 통달하는 길을 뜻하는 行의 일부를 나타낸 것으로, 길이 자유롭지 못해서 활보하기가 어려우니 소폭으로 걷게 된다는 의미에서 ‘조금 걷다’라고 새긴다. 幺(작을 요)는 밧줄을, 夂은 거꾸로 보이는 발을 그린 상형이다.


발이 밧줄에 묶여서 뒷길로 피해서 가는 노예의 발걸음이 빠를 리가 없다. 함께 가는 무리 중에서 앞장을 섰을 리도 만무하다. 그래서 後는 ‘뒤’라 새긴다. 파생해서 뒤지다, 뒤떨어지다, 아랫사람, 늦다, 미루다, 뒤로하다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표 1]의 1, 2)


[표 1] 後의 자형변천

발을 나타내는 止(그칠 지)가 추가되면서 변형이 일부 생기지만([표 1] 6, 8, 10), 현대 간체자로 바뀌기 전까지 원형이 그대로 유지된다. 주 2)


後는 임금이나 왕비를 가리키기도 한다. 바쁘게 걸을 일이 없고, 호위와 시중을 받느라 뒤에 설 수밖에 없는 고귀한 처지이기 때문에 그렇게 부르게 된 것일까?

[표 2] 后의 자형변천

後의 간체자는 后다. 그런데, 간체 목적으로 만들어진 글자가 아니라 이미 춘추 금문에서 발견이 된다. 뜻은 처음에는 왕이나 제후를 가리키다가 나중에는 왕비로 바뀐다.


毓(기를 육)과 后는 갑골문이 같다. ([표 2]의 C, D)가 두 글자의 갑골문이다. 산모가 아이를 출산하는 장면이 아주 리얼하다. 아이 머리가 아래쪽을 향하고 있으니 순산이고 점 셋을 흩어 찍어서 양수가 흘러 튀는 모양까지 그리고 있다. 毓자는 이 갑골문을 그대로 기호화한 것이다. 每(매양 매)는 산모를 가리키고, 㐬(깃발 류)의 위부분은 머리가 아래를 향한 아기, 아래 부분에 川처럼 생긴 분사되는 선 셋은 흘러내리는 양수다. 后 자도 간략하기는 하지만 그에 다르지 않다. 좌로 덮은 위부분이 산모, 口는 아이를 상징한다.


원시 사회에서 부족을 생육 번성하게 하는 것은 리더의 중요한 역할이다. '나아서 기른다'는 부족 전체를 위한 절체절명의 가치다. 이때문에 毓은 군왕(君王)을 의미하게 된다. 비교적 복잡한 毓자는 춘추시대를 지나면서 그 원래 뜻이 育(기를 육)과 后(임금/왕비 후)로 분화하여 대체된다. 毓이 지금은 쓰이지 않는다. 주 3)


사족, 後와 后는 서로 다른 글자였다. 그럼에도 後의 간체자로 后가 선택된 것은 발음(중국발은 호우(Hou, 사성))이 똑같아서다. 그게 아니라면, 비천한 호송 죄수나 고귀한 군왕과 왕후가 똑같이 뒤쳐저 걷는 것을 빗댄 것일 수도 있겠다. 삶이 자유롭지 못한 것도 양자가 다르지 않다.


혹은, 노예가 왕이 되고 왕이 노예가 되는 혁명사상을 중국 공산당이 비밀코드로 은밀히 숨겨  일지도 모른다. 수천 년을 이어 대륙을 지배해  황제를 일개 평민으로 끌어내리고 노동자와 농민이 주인이 되는 나라를 만드는 것이 그들의 꿈이었다 하니,  해석도 그럴 듯은 하다. 哈哈。


주) 1. 대문사진 : 홍무제(洪武帝) 주원장(朱元璋)의 젊을 때 초상이다. 고아, 거지, 소치기 머슴, 탁발승, 도적 등 온갖 인생 역정을 넘어서 명을 건국한 황제가 된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2. 辵(쉬엄쉬엄 갈 착)은 彳(조금 걸을 척)과 止(그칠 지)의 합자가. 뒤쳐진다는 의미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 변화를 준 듯한데 쓰기에 복잡해서 도태된 것 같다.

3. 育(기를 육)도 㐬(깃발 류)와 비슷하게 설명할 수 있다. 윗부분은 거꾸로 선 아이, 아랫부분 月(肉)는 혹독한 산고를 치르고 혼신의 모든 힘을 소진해 맥없이 쓰러져 누운 산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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