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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공지마 Jul 11. 2022

[한자썰61] 鄉, 작고 어진 이들의 땅

배추전 익는 내 고향

鄉(시골 향) : 幺(작을 요) + 皂(하인 조) + 邑(마을 읍)


鄉(시골 향)은 갑골문을 보면 음식이 가득 담긴 그릇을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이 정겹게 마주 보고 앉아 있다. 손님을 초대해서 술과 음식을 대접하는 장면이다. 그래서 鄉의 원래 뜻이 ‘대접하다’, ‘잔치를 베풀다’였다.


그런 정겨운 광경을 많이 볼 수 있는 곳이 고향이고 시골이라 鄉은 고향 또는 시골이 된다. 鄉에는 잔치나 대접하다의 의미가 여전히 남아 있지만 잘 쓰이지는 않고, 대신에 食 자를 보탠 饗(잔치 향) 자가 새로 만들어진다. 향연(饗宴)에 들어 있는 글자다. ([표1] 1, 2)


[표1] 향(鄉)의 자형변천

흥미롭다. 음식을 정겹게 나눠 먹고 이웃과 잔치 베풀기를 즐기는 곳이 고향 또는 시골이었다니 말이다. 향(鄉) 자는 옛 촌락사회의 전통적 가치를 잘 대변해 주는 글자다.


도시는 어땠을까? 都(도읍 도)는 渚(물가 주)에 위치한 邑(=⻏,마을 읍)이다. 강변 마을에는 물산이 모인다. 상류에서 실어 내리고 바다를 건너 강을 거슬러 올라온 갖가지들이 넘친다. 육로는 고개를 넘고 계곡을 건너 사람과 우마가 오래도록 다녀야만 겨우 낼 수가 있지만, 수로는 강과 호수 위로 이미 나 있으니 사람들은 그 적당한 물가에 모여 살기만 하면 그만이다. 물의 흐름은 그 자체로 훌륭한 동력이 되니, 인신이나 물자의 대량 수송에는 육로보다 수로가 훨씬 유리하다. 그래서, 고대에 번성한 큰 도시들은 대부분 큰 강의 중하류에 위치한다. 都(도읍 도)는 그런 유래가 담긴 글자다.

[표2] 시(市)의 자형변천

市(저자 시)는 갑골문을 보면 발이 닿는 곳이다. 저자거리에는 사람들 발길(止)이 모이고 섞이니 시끄럽고 혼잡하다. 아랫부분은  兮(어조사 혜)인데 그렇게 소리가 번잡하게 퍼져 나가는 것을 나타낸다. 얼마나 시끄러웠으면  兮로는 모자라, 윗부분에 발 주변으로 점까지 두세 개씩을 찍어 놓았다.([표2] 1~3) '야료(惹鬧) 부린다'는 말이 있다. 까닭 없이 트집을 잡고 함부로 떠들어 대는 것을 가리키는 말인데, 뒷글자 鬧(시끄러울 료/뇨))는 鬥(싸울 투)와 市(저자 시)의 합자다. 온갖 사람들이 흥정과 모략, 비방과 분쟁으로 요란법석을 떠는 곳이 시장이라는 것이다. 주 1)


사족, 향(鄉)을 지금 모양 그대로 분해하면 幺(작을 요), 皂(하인 조) 그리고 邑(마을 읍)의 합자다. 보잘것없는 미천한 사람들이 사는 작은 마을이 된다. 가운데를 良(어질 량)으로 볼 수도 있는데, 그리하면 보잘것은 없지만 착한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다. 주 2)


소시 때 내 고향 경상북도 순흥 산골 마을에도 잔치가 제법 있었다. 잔치라고 하기에 소박하고 조촐했지만 이상하게 그 장면들이 잊혀지지 않는다. 그중에 생각나는 한 가지가 배추전이다.


가마솥 뚜껑을 거꾸로 엎어 놓고, 숭덩 자른 무 윗둥에 기름 듬뿍 묻혀서 뚜껑 바닥에 둘러놓고, 뚝뚝 뜯어낸 싱싱한 배추 잎에 묽은 밀가루 반죽 입힌 둥 만 둥해서 칙칙 부치다가, 노릇해질라치면 반죽 물을 슬슬 조금 더 뿌리고, 주걱이나 국자로 꾹꾹 눌러서, 오봉에 대충 올려 한상 차려 내면 그게 우리 고향 배추전이다. 너무 익으면 배추 단맛이 마르고 식감이 떨어져 맛이 한참 덜하다. 흰 배추 줄기는 여전히 씩씩하고 푸른 이파리만 약간 오그라 들 정도면 그 때가 딱 제격이다. 어린 시절이라 곁들이면 좋았을 막걸리는 입에 대지도 못 했지만 그 시원하고 따스한 맛을 영원히 잊지 못한다.


'미천하다', '비루하다', '보잘것없다',  쓰잘  없는 소리다. 없는 살림에도  맛난 배추전 넉넉히 나눠 먹던 곳이 고향이고 시골이다.  사람 냄새가 가시면 () ()가 아무리 편하고 좋다해도 헛방이다. 哈哈。


주) 1. 兮(어조사 혜)는 갑골문을 보면 도끼 찍는 소리가 퍼지는 것을 나타냈다. 퍼지는 소리로 가차 되다가 지금도 그 흔적으로 감탄사에 주로 쓰인다.

2. 향(鄉)의 갑골문이 전하는 낭만주의에 불만을 품은, 도시 것들이 고향과 시골을 음해하거나 부러워하여 억지로 짜낸 글자일지도 모르겠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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