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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공지마 Aug 15. 2022

[한자썰68] 秋, 가을의 전설들...

가을이 남긴 낭만, 실용 그리고 생계

秋(가을 추) : 禾(벼 화) + 火(불 화)


秋(가을 추)는 벼(禾)와 불(火)을 합해서 가을을 가리킨다. 그 둘의 결합이 어째서 가을이 된 걸까? 설이 여럿이다. 먼저, 낭만파의 설명이다. 곡식이 한창 익어가는 황금빛 가을 들녘이 노을을 받아서 바람에 붉게 일렁이는 풍경이, 이글거리는 요원(燎原)의 불길처럼 보였다는 것이다. 다음은 실용파인데, 병충해를 방지하고 토질을 증진하기 위해서 볏짚을 태워서 논과 밭에 뿌리는 전통 농법을 표현한다는 설명이다. 주 1)


마지막으로 생계파도 있다. 갑골문 秋(가을 추)는 메뚜기를 불에 굽는 장면을 그렸다.(【표 1】 1, 2) 단백질 섭취를 위해서 메뚜기를 먹던 풍습을 표현한 것이란다. 여름 내 볏잎을 포식해 잔뜩 살이 오른 메뚜기들이 논과 밭에 득시글 대는 때가 가을이다. 고된 추수로 지친 몸을 고작 벌레나 구워 먹으면서 달래야 했던 가난한 농민들의 애환을 해학적으로 담은 글자가 갑골문 秋다.


【표 1】 秋의 자형 변천

맥락이 같은 조금 다른 설명이 있다. 메뚜기를 잡아먹을 요량(料量)이 아니라 해충 박멸을 목적으로 불을 피웠다는 설이다. 중국 대륙이 워낙 황량하다 보니 인간은 물론 메뚜기도 굶주리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인간들이 재배하는 곡식은 메뚜기들에게도 좋은 양식이 되었다. 메뚜기들은 논과 밭을 초토화시켜 버렸다. 오죽하면 메뚜기 재해를 뜻하는 황해(蝗害)라는 별도의 명칭이 생길 정도였다. 이 때문에 농민들은 가을만 되면 늘상 메뚜기와의 힘겨운 전쟁을 치러야 했다.


그런데, 메뚜기는 빛을 향해 달려드는 습성이 있다. 그래서, 농민들은 논이나 밭 근처에 큰 불을 놓는 전략을 썼다. 메뚜기들은 그 불을 향해 떼로 날아들어 죽어 갔다. 요행히 완전히 소실하지 않고 적당히 익은 메뚜기들은 가난한 농민들에게 양질의 단백질 보충원이 되었다. 갑골문 秋(가을 추)에 대한 실용형 생계파의 설명이다.


서정형 낭만파도 있다. 갑골문 秋(가을 추)가 묘사한 곤충이 메뚜기가 아니라 귀뚜라미라는 설이다. 중국 북방에서는 9~10월이면 성충이 된 귀뚜라미들이 저녁부터 새벽까지 밤이면 밤바다 울어댄다. 그렇다 보니, 북방민들은 가을 하면 제일 먼저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게 귀뚜라미였다는 것이다. 그 울음소리가 '치오우 치오우((Qiūqiū)'하니, 가을을 가리키는 귀뚜라미를 그려 넣어 갑골문 秋(가을 추)를 만들고 그 발음마저 치오우(Qiū)라고 부르기로 약속한다. 귀뚜라미 밑에 불(火)은, 쓸쓸하고 깊은 가을밤에 추정(秋情)에 겨워 잠을 못 이루는 어느 시인이 그 붓 가는 길을 밝히려고 켜 놓은 등불이다.


갑골문 秋(가을 추)는 대전(大篆)을 지나면서, 벌레 모양은 거북이(龜)로 바뀌고 日(날 일)이 더해진다. 한대에 이르면 손(彐)까지 추가된다.(【표 1】 4, 11) 주 2) 시절을 나타내고 추수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함으로 추정된다.


소전 이전의 秋는 글자가 너무 복잡해서 일찌기 춘추 전국에서부터 간화되기 시작해서 벌레 모양이 사라지더니 한대 예서에 이르러 지금의 秋가 되었다. 예서를 고안한 진(秦)의 정막(程邈)은 고민이 많았을 것이다. 낭만, 실용 그리고 생계의 그 모두를 어찌 새로운 간략자에 담아 둘까 하고...! 골몰하다 답을 못 내린 채, '에라 나도 모르겠다!' 해서 그전부터 내려오던 秌(가을 추)의 앞 뒤 순서만 살짝 바꿔서 秋(가을 추)가 된 것은 아니었을까?!


秋(가을 추)의 다양한 새김, 때, 시기, 해(세월), 1년, 여물다, 날다, 근심하다, 시름에 겹다, 추상(秋霜)같다 등등이 秋 자의 유래를 알고 나니 낱낱으로 다 이해된다. 하지만, 딱 두 개, '밀치 끈'과 '그네'만은 도저히 짐작조차 못 하겠다. 哭哭。


사족, 오행(五行)에서는 秋가 계절 중에서 양(陽)의 기운이 수그러드는 金에 해당한다. 이 때문에, 가을바람을 금풍(金風)이라 하고, 가을철을 금추(金秋)라 한다. 고대에는 秋의 쓰임에 미추나 선악, 옳고 그름이 없었다. 그러다가 차츰 秋는 처량함과 소슬함을 상징하게 된다. 가을이면 만물의 양기(陽氣)가 수그러드니, 나뭇잎은 시들어 추풍에 낙엽 하고, 연이어 그 열매마저 땅에 떨어져 쭈그러들고 이리저리 흩어지니 그런 감상에 어찌 젖지 않을 수가 있겠나! 그토록 찬란했던 지나간 여름을 돌아 보면 대비되는 슬픔과 허허로움이 더 더욱 커진다.

【표 2】 시성 두보(杜甫, 712~770)

조조(曹操, 삼국시대 위(魏)의 시조(始祖)(155~220))는 가을바람은 쓸쓸하다(秋風萧瑟, 추풍소슬)라 했고, 시성(詩聖) 두보(杜甫, 당(唐)의 시인(712~770))는 가을이 너무 슬퍼 나그네 신세(悲秋常作客, 비추상작객))가 되어 넋까지 놓는다라 하고, 금(金)에 평생 주전(主戰)한 절개 시인 육유(陸游, 남송(南宋)의 시인(1125~1209))는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귀밑머리 쇠어짐(胡未灭, 鬓先秋(호미멸, 빈선추))을 가을에 빗대었다. 어느 새인가 그 쓸쓸하고 허망한 가을, 秋는 인생의 막바지인 노년(老年)에 비유되기까지에 이른다.


사족 하나 더, 중국에서도 그네 타기는 흔한 민속놀이였나 보다. 그 이름이 추천(鞦韆)이라 불렸다. 여기서 추(鞦)는 '밀치 끈'이다. 밀치 끈은 소나 말에 안장을 올릴 때 벗겨지지 않도록, 꼬리 밑으로 '밀치'라고 부르는 막대를 걸고 양끝에 끈을 묶어 안장과 연결했는데, 그 끈을 가리킨 말이다.


   그넷줄이고, '밀치' 그네의 밑싣개(a seat of swing) 해당한다. 그래서 그네를 추천(鞦韆)이라 부르게  것이다. 이것을 써내기 너무 어러우니 발음이 똑같은 추천(秋千)으로 오래전부터 바꿔 쓰게 되었고 지금에 이르고 있다. 비로소 秋가  밀치 끈과 그네가 되었는지 비로소 알았다. 웬만한 중국사람도 추천(鞦韆) 무슨 물건인지 물어보면 알기가 어려울 것이다. 咳咳。


사족  하나 , 추파(秋波) 여인의 아름다운 눈빛이라니?! 유혹의 눈길 정도로 알고 있었건만, 맑고 깨끗하게 빛나는(청량섬락(清亮)) 가을 호수의 물결에 여인의 눈빛을 비유한 말이다. 비록 유혹의 의도가 없었다 한들 그런 추파에 매료된 남심이  호수에 어찌 뛰어들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남자의 계절, 가을이다. 이번 가을은 가을 너무 심하게 타지 말고 잘들 넘기시라!


주) 1. 볏짚 태우기가 요즘에는 권장되지 않는다. 태우는 과정에서 볏짚에 함유된 규소 성분이 줄어서 토질 개선에 오히려 불리하고 해충은 물론 익충 마저 타 죽어 병충해 방지에 도움이 되지도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은 볏짚을 그대로 잘게 썰어서 흙에 뿌려 주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

2. 주문(籀文)은 대전(大篆)의 다른 말로 같은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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