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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공지마 Aug 21. 2022

[한자썰69] 津, 배! 붓처럼 미끄러지다.

4대 강은 수천 년을 우리와 함께 했다. 주 1)

津(나루 진) : 水(물 수) + 聿(붓 율)


津(나루 진)은 물(水)과 붓(聿)을 합해서 나루를 가리킨다. 물과 붓을 붙여 써놓고서 나루라?! 의아하다. 그런데, 그 처음 글자인 금문(金文) 津은 이와 사뭇 다르다. 위와 아래로 淮(물 이름 화)와 舟(배 주)를 합친 자인데 津이 왜 나루이어야 하는지를 쉽게 알려 준다.


배(舟)가 뭍을 떠나고 들며, 물(淮)을 건너거나 또는 거스르거나 따라 내려가서, 낯 선 땅에 사람과 물산을 옮겨서 모으고 흩는 곳이 나루다. 나루가 서기 위한 필수요소가 바로 금문 津에 들어 있는 물(淮)과 배(舟)다.(【표 1】 1)


【표 1】 津의 자형 변천

淮(물 이름 화)는 특별한 물이다. 고대 중국은 큰 물이 다니는 도랑(瀆(도랑 독))을 강(江)、하(河)、화(淮)、제(濟)라 해서 네 개의 수계(水系)로 나누고 사독(四瀆)이라 불렀다. 황제는 이 독(瀆)들을 신성하게 여겨 이미 기원전(B.C 61)부터 제사를 매년 정기적으로 지냈다. 淮(물 이름 화)는 그 넷 중에서도 가장 구불구불하고 변화가 무쌍하며 전장의 2/3가 넓은 평원을 달린다. 그러니 다른 어는 지역보다도 물산과 사람이 많이 모였을 물이다. (【표 2】 참조) 주  2, 3, 4)


화수(淮水)를 따라서 양 편으로 난 나루의 수효와 그 번창함이 다른 수계들에 비할 바가 아니었을 것이다. 이 때문에 淮(물 이름 화)가 포함된 금문 津이 모든 도랑(瀆(도랑 독))에 들어선 허다한 나루들을 대표하게 된 것이 아닐까 싶다.

【표 2】 禹시기의 사독(四瀆)과 구주(九州)

津(나루 진)의 자형 변천을 살펴보면, 전국 시대에 이르러 배 모양이 그 자취를 홀연히 감춘다. 배가 없는 나루라니?! 상식에 맞지 않아서 궁리하던 중에 상상력을 발휘해 보니, 사공의 우악스러운 거친 손(彐)이 기다란 삿대(丨)를 부여잡고서 강물 바닥(二)을 힘차게 밀며 배를 나가게 하는 모습이 聿에 그려져 있었다. 보태어 그 하단 좌편에는 삿대질이 일으키는 물결(彡)까지 더해져 있으니 몇 줄의 선으로 가히 한 폭의 그림을 그려낸 津이 놀랍다. 聿(붓 율)은 붓과는 아무 상관이 없이 그런 수수께끼를 숨기고 있었다. (【표 1】 3, 5, 7)


잘 쓰이지는 않지만 彡를 넣은 해서(楷書) 동자(同字)까지 있었던 것을 보면 그런 식으로 해석하는 데에 별 무리가 없다. 그렇지만 이곳저곳을 꽤나 열심히 뒤져 봤는데 그런 발상으로 풀어낸 설명을 아직은 찾아내지 못했다.(【표 1】 楷書)


한편으로, 津(나루 진)의 처음 글자가 금문이 아니라 갑골문이며 그 모양이【표 1】에 A, B, C라는 주장이 있다. 작은 배를 타고 서있는 사람이 강물에다 삿대를 지르는 모습이다. 삿대는 얕은 물에서 바닥을 질러 배를 밀며 나아가게 할 때 쓰인다. 그러니 수심이 얕은 나루에서 배를 띄우거나 정박할 때 일반적으로 쓰이게 된다.


津의 갑골문으로 추정되는 글자들은 평원을 달리는 화수(淮水)의 여러 나루터에서 볼 수 있는 흔한 풍경을 그렸을 것이다. 갑골문 津(나루 진)의 원래 뜻이 '삿대를 질러 물을 건너다'였지만 점차 ‘나루'로 그 뜻이 바뀌어 간다. 그 과정에서 나중에 물(水)을 추가해서 의미를 보강하고 그로 인해 글자가 복잡해지니 배를 생략하여 삿대만 남긴다. 그 글자가 지금 우리가 쓰는 津(나루 진)이다.

이상을 종합해 보면 이렇다. 금문 津은 화수(淮水) 유역에서 나루를 가리켰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나루를 가키는 글자는 갑골 시대에 이미 중국 전역에 널리 퍼져서 존재했다. 여러 지역에 산발적으로 존재하던 원시적인 형태(A, B, C)의 갑골문 津이 전국시대 이후 점차 정제된 형태(3, 5, 7)를 갖추어 가는데, 상대적으로 복잡한 금문 津은 경쟁력을 잃고 도태되어 버린다. 그 통합의 과정에 춘추 전국시대의 경쟁이 촉발한 문화의 융성과 교역의 발달이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사족, 이명박의 4대 강은 한강, 낙동강, 영산강, 금강이다. 그런데, 해 아래 새것이 없다 했으니 4대 강은 MB의 창작이 아니다. 그 강의 목록이 지금과 조금씩 다를 뿐 이미 신라 때부터 나라가 4대 강을 지정하고 중사(中祀)라는 소규모 제사를 정기적인 국가적 행사로 치렀다.


중국에서 사독(四瀆)을 정해서 황제가 제사를 지낸 것을 흉내 낸 것인데, 국가의 강역을 선포하고 지방 세력에 대한 중앙의 통치권을 공고히 하는 목적으로 쓰였다. 사독(四瀆)은 치수행정 중 하나였지만 사실은 고도의 정치적 통치 행위이기도 했다. 그 전통은 고려, 조선시대까지 연연히 이어진다. 신라에서는 한강과 금강이, 조선에서는 낙동강과 한강이 사독(四瀆)에 들어 있어, MB의 4대 강과 겹친다.


MB의 4대 강 사업이 어느 날 갑.자기 툭. 튀.어 나온 게 아니라 오래된 역사적 연원이 있다. 잘 생각해 보면 그 사업은 단순히 거대한 토목사업이 아니라 그 진의가 심히 의심스러운 정치적 복선을 강하게 깔고 있다. 4대 강 사업이 성공했더라면 진보 정권의 수권은 아마도 지난했을 것이다. 십수 년이 지난 지금도 그 잘잘못에 대해서 여전히 갑론을박이다. 아마도 더 오랜 세월을 필요로 할 것이다.


이런 저런 복잡한 생각들 훌훌 털고, 津(나루 진)은 명필을 만난 귀한 붓이 종이 위를 미끄러지듯이 배가 깊은 강물을 향해 힘차게 나아가는 곳, 바로 그곳이 나루다. 哈哈。


주) 1. 대문사진은 다산 정약용의 생가가 있는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에 연해 있는 팔당호에서 9년 전 어느 새벽에 찍은 풍경이다.

2. 隹(새 추)에 근거해서 배가 새처럼 앞으로만 나아가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서 淮을 썼다는 해석도 있다. 물이나 하늘을 다니는 것들은 후진을 할 줄 모른다. 새나 배 그리고 비행기가 그렇다. 그들은 선회할 뿐이다. 더욱이 짐과 사람을 싣고 나루를 떠난 배는 그 선회조차 잘하지 않는다. 손해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화(淮)가 그런 뜻을 내포한다는 것이다.  

2. 수원(水源)에서 부터 혼자서 계속 흘러서 바다(獨流入海)까지 다다르는 큰 강을 독(瀆(도랑 독))이라 불렀다. 각 시대마다 사독(四瀆)이 조금씩 달라지는데, 오랜 퇴적이나 지진 등으로 지형이 바뀌어 강의 방향이 달라지고 강끼리가 새로 합류하고 끊어지는 현상이 생기기 때문이다. 때로는 정권의 근거지에 따라서도 달라지기도 한다. 자신들을 중심으로 해서 사독(四瀆)을 동서남북 방위와 연결시켜서 정하였기 때문이다. 신라와 조선의 사독(四瀆)은 다르다.

4. 지금은 큰 하천(River)을 가리키는 데 강(江)을 일반적으로 쓴다. 그러나, 예전에 강(江)은 양자강(揚子江)을 가리켰다. 하(河)는 황하(黄河), 화(淮)는 화수(淮水), 제(濟)는 제수(濟水)를 각기 달리 가리켰으니, 그 글자들은 모두 독(瀆)의 하위 개념이었으며 일종의 고유명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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