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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공지마 Aug 27. 2022

[한자썰70] 希, 꽃을 피운 두건

희망(稀望)이 아니고 희망(希望)이다.

希(바랄 희) : 爻(사귈 효) +巾(헝겊 진)


希(바랄 희)는 수(爻)를 놓은 헝겊(巾)이다. 이때 爻(효)는 가늘고 긴 막대를 엇갈려 연속으로 엮은 모양만을 빌려 온 것이다. 사귀다, 본받다, 가로긋다, 지우다, 육효(六爻), 점괘 등과 같은 爻의 원래 뜻과는 별로 상관이 없다. 각색의 실들이 헝겊의 올 사이 좁은 틈을 수백천 번씩 들고 나서, 각양의 무늬를 만들어 내는 것을 爻로 간략히 흉내 낸 것이다.


希(바랄 희)를 㐅(다섯 오)와 布(베 포)로 나누어 보기도 한다. 이때는 㐅(오)가 爻(효)의 생략이라 설명한다. 그런데, 진(秦)의 전문(篆文)에서 상단 爻(효)와 하단 巾(건)의 명확한 생김을 봐서는 ‘생략’ 보다는 ‘변형’이라 해야 맞을 듯싶다. 만일 ‘생략’이라면 巾(헝겊 건)이 布(베 포)로 바뀐 까닭을 밝혀야 하는데 그럴듯한 해석을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표] 1~3)  주 1)


[표] 希의 자형 변천

보잘것없는 헝겊 한 조각에 한껏 정성을 들여서 예쁜 수를 놓았으니 아무리 흔하게 쓰이는 수건이나 두건 따위라 한들 귀히 여기지 않을 수가 없다. 그것들을 사용할 때마다 멋진 문양에 눈이 호사롭고, 수(繡) 실에 닿을 때 느껴지는 도톨한 촉감에 그 님의 따듯한 손길을 떠올리게 되니, 그 순간 행복감에 젖는 마음 역시도 빙긋이 좋다.


별 볼 일 없는 천 쪼가리 하나가 보물이 되는 순간! 그것이 무엇이든 그런 소중한 것들을 향해 품는 ‘바라는 마음’이, 꽃 한 송이나 나비 한 마리 자수(刺繡)한 삼베 한 필, 希(바랄 희)이다. 그래서 希(바랄 희)가 '바라다'이다. 희망(希望), 바랄 희(希) 바랄 망(望)! 希자의 유래를 분간하고 나니 그 말이 참으로 곱고 귀하다.


希(바랄 희)에는 ‘드물다’, ‘성기다’, '적다'라는 뜻도 함께 있다. 그냥 쓴다 해서 그 쓸모에 하등 지장이 없는 수건이나 두건에 딱이 수를 놓을 필요가 사실은 없다. 게다가 수공도 많이 들고 가격도 비싸지니 그 수효가 적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적다고 해서 꼭 바랄만한 것이 아니고, 또 많다고 해서 바라지 않는 것도 아니다. 드물거나 성기거나 한 것은 객관적 관찰이지만, 마음속에 간직하는 바람은 주관적인 관념이다.


그런 맥락의 차이 때문에 希 하나로 쓰기가 마땅치 않았던가 보다. 禾(벼 화)를 보탠 稀(드물 희)가 따로 만들어져서 ‘드물다'라는 뜻으로 구별해 쓰이게 된다. 이런 연유로 희소(稀少)를 희소(希少)로도 많이 쓰는데 그 연혁으로 보면 무방하다. 그러나, 희망(希望)을 희망(稀望)이라 하지는 않는다. 희망(希望)이 드물(稀)어져서야 어디 이 세상 살 맛이 나겠는가!


사족, 希를 해석하는 중에 물신주의(物神主義)가 언뜻 보인다. 바람(希)이 귀한 물건을 향한 것이라 하지 않았나! 정성을 다해 한 땀 한 땀 수를 놓은 그 님의 바람(希)은 어찌 보지 못 하는 것일까?! 떠난 정인(情人)이 돌아오기를 바라는 마음, 자식이나 남편의 입신(立身)과 양명(揚名)을 바라는 마음, 나라의 독립과 민중의 혁명을 위해 떨치고 일어난 의기를 꿋꿋이 떨치기를 바라는 마음....!


그 마음이 손수건이나 두건이나 옷섶에 매화로 피고 댓잎으로 뻗고 나는 벌레로 생동하고 날카로운 칼로 엄중해져서 자수가 되었을 것이다. 希는 받는 사람의 물건을 향한 마음이 아니라 주는 사람의 님을 향한 마음일 수도 있다. 베풀고 나누고 중보(仲保)하는 것에 희망을 품은 선한 사회를 고대해 본다.

중국에서는 지배층의 논리로, 후한(後漢)말에는 황건적(黄巾贼), 원(元)말에는 홍건적(红巾贼)이라 이름 붙여, 전국적인 대규모 농민 봉기를 그저 도둑의 패당 짓쯤으로 치부했다. 백성들이 떼로 일어나 칼과 창을 들면 도둑으로 몰아 버리기가 일쑤이지만, 그 역사적 진실은 지배층이 도둑이라서 그런 때가 대부분이다.


어떤 시대든 그 말기에는 다스리는 자들이 자기들끼리 다툰다. 그들은 그 싸움에 꼭 백성을 동원하고 착취하여 해악을 끼친다. 이 때문에 그 시대의 종말은 백성이 만들어 낸다.


백성들이 뒤집어쓴 노란색과 빨간색 두건에 꽃과 나비를 수놓았더라면, 그래서 그들을 황희적(黄希贼), 홍희적(红希賊)이라 불렀더라면, 그 시절 중국 대륙이 수월히 평화로졌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배가 없는 세상은 없다. 허울이 민주주의라도 다르지 않다. 그렇다고 백성들이 머리띠를 두르고 무리를 지어 다니는 것을 가벼이 보지는 마시라! 다스리는 자가 교만해서 건(巾)을 희(希)로 바꾸지 못한다면, 결단코 다스림을 당하는 백성이 다스리는 자를 바꾸고 만다. 哼哼。


주) 巾은 갑골문, 布는 금문 그리고 希는 전문에서 처음 발견된다. 따라서 그 순서대로 글자들이 만들어졌다고 봐야 한다. 전문 希는 그 하단이 앞 시대 두 글자 중에 굳이 巾을 선택한 것이 분명하다. 예서(隸書)까지고 그 모양이 유지되다가 마지막 해서(楷書)에서 멋을 부려 쓸데없는 혼란을 불러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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