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공지마 Sep 03. 2022

[한자썰71] 律, 판소리이고 랩이다.

율(律)을 가락 혹은 음률(音律)이라고도 새긴다.

律(법칙 률) : 彳(조금 걸을 척) + 聿(붓 율)


律(법칙 률)은 사거리(彳)와 붓(聿)이다. 行(다닐 행)이 원래 사거리를 나타내는데, 彳(척)은 그 생략형이다. 사거리가 반이나 잘려 나갔으니 다닐 공간은 좁고 통행이 불편해지지 않았겠나! 그래서 ‘조금 걸을 척’으로 새기게 된다. 그러나, 彳(척)은 실제 그 새김대로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대부분 부수로 쓰이는데 이때 ‘가다’ 또는 ‘움직이다’의 개념을 보탠다. 주 1)


사거리는 두 개의 길이 교차하는 공간이다. 사방에 흩어져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만나고 지나다니며, 그 각지의 사건과 소식들이 모이고 전해져 퍼지며, 각기의 다른 의견들을 말하고 듣는 공론의 장(場)이다. 그런 사거리 잘 보이는 널찍한 벽에는 보통 방(榜)이 붙는다.


[표 1] 律의 자형 변천

방(榜)이 옛날에는 중요한 미디어 기능을 했다. 인쇄 기술은 아직 모르고 전파 매체가 있을 턱이 없으니 세상에 널리 소식을 퍼트리기가 참으로 난망하다. 저 근동 땅 어느 나라에서 있었던 일처럼 백성들이 스스로 관아(官衙) 문 앞으로 “Come and see!” 해준다면 얼마나 좋겠냐만, 관에서 알리는 그 무슨 알량한 것들이 복음(福音)에 비길 리가 만무하려니와, 관원들에게는 오병이어(五餅二魚)의 기사(奇事)를 일으킬만한 재주나 재원도 없다.


부득이 방(榜)은 백성들이 저절로 모이는 곳을 찾아다닐 밖에 다른 도리가 없다. 전통농경사회에서 이 마을 저 마을 갈라져 살던 사람들이 그나마 모이는 곳, 그들이 자기 사는 데로 다시 널리 흩어지는 곳, 정보를 향한 호기심이 넘치고 그걸 이용하려는 욕망이 꿈틀거리는 곳, 그런 곳이라야 좋다. 사거리가 딱 그런 공간이다. 방(榜)은, 그 사거리(彳)에 탁 트이고 널찍한 벽 한켠에 붓(聿)으로 크게 써서 높이 붙이는, '관아의 알림판’이다. 그리고, 거기에 실리는 글이 바로 律(법칙 률)이다.

【표 2】仇英(明, 1498~1552)의 '방(榜) 보는 사람들'

어쩌면 이랬을 수도 있겠다. 기실(其实), 율(律)이 방(榜)이라는 글자가 생기기 전에 원래 방(榜)을 가리키는 글자였다. 율(律)이 사거리에 붙기 시작한 이후로, 백성들이 그 율(律)을 통해서 공포된 규칙들을 잘 지켜내지 못하여 처벌을 받는 일이 자주 생기게 된다. 그럴 때마다 관은 그들이 행하는 처벌의 근거로 율(律)을 내세웠다. "네 이놈, 지난 정월에 현내(縣内) 모든 사거리마다 율(律)에 붙여 분명히 알렸지 않느냐! 몰랐다는 변명을 더는 하지 말거라!"


고대사회가 차츰 발전함에 따라 율(律)도 함께 복잡해진다. 덩달아 백성들이 규칙을 못 지켜서 처벌을 받는 일도 더욱 잦아진다. 그것을 두려워하다 보니 율(律)을 '지켜야만 하는 규칙'과 동일시하는 관념이 백성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생겨 나고, 그것이 차츰 굳어져 율(律)은 그 자체로 '법칙'이 된다. 그러자, 율(律)의 엄중함을 더욱 명확히 알게 하기 위하여 '관아의 알림판’을 뜻하는 방(榜)이라는 글자를 새로 만들어 낸다. 율(律)이 더 이상 방식이 아니고 내용이므로 더욱 잘 지켜야만 한다는 것을 인식시키기 위함이다. 그 대신에 그전까지의 율(律)은 방(榜)이라 부르도록 한다.

【표 3】갑골문 榜 

() 갑골문을 보면 형식성이 꽤나 세밀하게 표현되어 있다우선변에 나무() 넣어 게시판의 재료를 표시하고(), 토담틀(), 여러 (), 사람들(등을 섞어 넣어서, () 걸리자 사람들이 그리로 몰려들어 주목하는 장면을 꼼꼼하게 그려내고 있다. 나무판(片)과 토담틀(), 여러 곳(方)으로 된 다른 갑골문 ()도 마찬가지다. 그 낱자들이 뜻하는 바들이 전자와 크게 다르지 않다.(【표 3】참조) 주 2)


한편으로 이렇게도 해석해 볼 수도 있겠다. 【표 3】좌측 글자의 우측 가운데 부분은 목에 칼을  죄인((아무 )+)이다. 죄인을 군중() 앞에 붙잡아() 세워 놓고 창피를 주어서 본을 보이는 체벌장과 똑같은 장면이 펼쳐지게 하는 나무판() 바로 갑골문 ()이라는 것이다. 이는  구성 글자들을 낱자대로 개별 분석해서 억지로 짜맞춘  필자의 뇌피셜이닌, 어디 다른 곳에서 전파하지는 마시라!  3)


율(律)은 혼자 쓰이기보다는 법률(法律)처럼 법(法)에 붙여 쓰인다. 그런데, 법(法)과 율(律)은 그 나온 뿌리가 다르다. 법(法)은 신화와 전설에서 기원한다. 법(法)의 고자인 灋(법 법)는 그 우측 상단에 정의를 상징하는 전설의 동물 해치가 있었다. 고대에 지배층은 비록 폭력을 써서 권력을 장악했지만, 민중을 다스리는 데에는 무력에만 계속 의존할 수가 없다. 그래서 꼼수로 내세운 것이 해치와 같은 신화와 전설이었다. 법(灋)에는 신령한 존재가 신탁(神托)으로 내려준 것이니 마땅히 따라야 한다는 속임수를 동원되어 있다. 결국, 법(灋)을 정한 것은 지배층 자신들이었고, 기준은 자신들의 입맛이었다. 


지배층의 권력이 공고해지고 체제와 제도가 안정되자, 지배층은 신화와 전설에 굳이 기댈 필요가 없어졌다. 그래서, 해치가 자취를 감추어 버린 법(法)이 만들어지고, 규칙은 지배층 스스로가 정한 한 것임을 감추지 않은 율(律)이 생긴다. "'우리가 붓(聿)으로 써서 정한 것'이 율(律)이니라! 엄히 지키도록 하라!" 규(規)는 법의 Gonernance다. 가장(夫)의 관점(見)에 맞추어 만들어지는 것이 규칙임을 나타내는 글자인데, 가장들의 가장의 위치는 황제 또는 왕이 차지하고 있었다.   


사족, 율(律)을 가락 혹은 음률(音律)이라고도 새긴다. 문맹이 대부분인 고대 방(榜)은 누군가가 읽어 주어야 한다. 하급 관원이 동원되거나, 군중 중에 어느 나서기 좋아하는 식자(識者)가 있었을 것인데, 방(榜)은 길이도 길고 내용은 별로 재미가 없다. 할 수 없이 읽는 자가 흥취를 살려야 했을 것이니, 그 읽는 중에 글자마다에 장단에 차이를 두고 음에 높낮이를 달리하니 군중들이 관심을 두게 되고, 그 재미도 없고 길디 긴 방(榜)의 율(律)끝까지 참으면서 들어준다. 그러다 보니율(律)이 가락이 되고, 음률(音律)이 되고, 율시(律詩)가 된다. 


율(律)은 '판소리'와 '랩(rap)'의 원시적 기원이다. 어쩌면 방 읽어 주는 사람들 중에 BTS가 있었을 수도 있다. 방 앞에 서서 목청을 길게 높인 관원처럼 진정으로 국민의 눈높이에 맞춘 공정과 상식을 담은 법률(法律)을 꿈꿔본다. 哈哈。


주) 1. 彳(척)을 두 인 변으로도 새긴다. 사람인변, 亻(=人) 두 개를 겹친 모양을 닮았기 때문이다. 부수로 쓰이면서 '두 사람'이라는 의미를 보충하는 경우는 없다. 彳(척)이 단독으로 쓰이는 아주 드문 경우로, 어정거리며 걷다는 뜻인 척촉(彳(조금 걸을 척)亍(다리 절며 걸을 촉))이 있다.

2. 凡(무릇 범)의 갑골문은 토담틀의 상형이다. 토담을 쌓을 때는 흙이 담 모양으로 굳을 수 있도록 틀을 세우고 거기에 흙을 채우게 된다. 옛날에는 거의 모든 집들이 흙담이었기에, 범(凡)이 '무릇', '모든'이라는 뜻을 갖게 된다.

3. 方(모 방) 자는 소 두 마리가 끄는 끈 달린 쟁기라고도 하고 칼을 뒤집어 쓴 죄인이라고 한다. 필자 생각에는 후자가 더 맞는 듯 하다. 方(모 방)이 방위의 뜻으로 점차 굳어지게 되자, 方(모 방)의 원래 의미는 旁(곁 방), 放(놓을 방)에 남게 된다. 이 두 글자에는 죄인을 멀리 추방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자썰70] 希, 꽃을 피운 두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