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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공지마 Oct 26. 2022

[한자썰72] 冬, 새끼의 계절

冬(겨울 동) : 夂(뒤쳐져 올 치) + ⺀(얼음 빙)


갑골문 혹은 금문 冬(겨울 동)(이하 '옛글 冬')은 양 끝에 매듭을 지은 줄이 어딘가에 걸려 있다. 옛날에는 볏짚이나 풀줄기를 꼬으면서 길게 이은 새끼줄을 흔하게 썼다. 그리고, 그 새끼줄 꼬기는 꼭 매듭을 지어 마무리한다.(【표 1】 1, 2, 3)


새끼줄은 각 가닥의 작은 꼬임과 그 가닥들 간의 큰 꼬임이 서로 역방향이다. 이 때문에 두 꼬임이 풀어지려는 힘이 반대로 작용한다. 여기서 장력이 자연스럽게 생기는데 재료의 이음매를 끊어지지 않게 하고 줄의 강도를 높인다. 주 1)


그런데, 그 엇갈린 꼬임들이 자리를 탄탄하게 잡는 데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초기에 필요하다. 그때까지 꼬임이 풀어지는 것을 방지하고 버텨주는 역할을 매듭이 한다. 옛글 冬은 바로 그 모양의 상형이다.


【표 1】冬의 자형 변천

옛글 冬은, 매듭을 지어 줄 꼬기를 마치는 것을 빌어서, 원래는 '(잘) 마치다' 또는 '(잘) 마무리하다'를 가리켰다. 이것은 终(마칠 종)의 갑골문이 갑골문 冬과 동일한 것을 통해서 알 수가 있다. 우리말에서 '매듭짓다'를 '마치다'의 은유로 쓰는 것과도 생각이 닿아 있다. 그런데, 무슨 이유에서인가 일찌감치 고대 중국에서는 옛글 冬이 사계절의 마지막, 한 해가 넘어가는 계절인 겨울을 가리키도록  그 의미가 가차(假借)된다.


《설문(说文)》은, 춘추(春秋) 혹은 고문(古文) 冬에서 줄에 둘러 싸인 점 찍힌 원을 두고서, 해가 겨울 철에 남쪽으로 멀리 기울어져서 갇혀 있는 모양이라 설명을 한다. 일사각이 겨울 철에 낮아지는 현상을 연상한 듯하고, 그래서 겨울을 가리킨 것이란다. 그러나, 줄과는 전연 연관이 없는 해를 돌연 등장시키고, '멀어짐'을 '갇힘'에 연결시키는 것은 맥락 상으로 무리가 있어 보인다.(【표 1】 4, 6 )

그래서 필자는 선인들과는 조금 다르게 해석을 해 본다. 새끼를 길게 꼬고 나면 보통 타래나 사리를 지어서 겨우내 보관해 두게 된다. 그 보관 장소는 창고나 방안에 만든 시렁 같은 곳이다. 새끼는 너무 마르면 부스러지고 너무 습하면 썩어 버리기 때문에 볕이 들지 않고 통풍은 잘 되면서도 습도가 적당히 맞아야만 오랫동안 품질을 유지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춘추(春秋) 또는 고문(古文) 冬이 딱 그 장면이다. 긴 새끼를 둥글게 말아서 사리를 만들어 햇빛이 차단된 창고나 방 시렁에 올려 두거나 걸어 둔 모양이다. 전국(战国) 冬은 아래 부분이 원 모양이 아닌데 타래를 지어 무언 가에 걸어 둔 모양이다. 결국, 冬의 고대 자형들은 새끼의 특징과 그 제조법, 보관법 등, 일관되게 새끼에 대한 이야기들을 표현하고 있다.

【표 2】终의 자형 변천

옛글 冬이 겨울로 가차가 되자 '마치다(=마무리하다)'의 뜻으로는 따로 만들어진 글자가 終(마칠 종)이다. 좌변 糸(실 사)는 終이 줄과 관련이 깊음을 표시한다. '마치다'와 '겨울'로 혼용되던 옛글 冬은, 終이 파생하는 전서(篆書) 무렵부터 비로소 겨울만을 오로지 가리키게 된다. (【표 1】 7, 8, 9)


그렇다면, 그 새끼가 겨울이 된 이유는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사족, 기록 상으로 고삭(藁索)으로 불리던 새끼는 조선 중기 대동법 시행 전까지 중요한 공물(贡物) 품목 중 하나이기도 했다. 그만큼 새끼는 일상에서 널리 쓰이는 생활필수품이었다. 사냥용 그물을 엮고, 곡식을 채운 섬을 운반하기 좋게 둘러 묶고, 이엉을 초가지붕에 고정시키고, 짚신을 삼고, 각종 공사에 중요한 자재가 되었다. 자연스럽게 겨울 철 농한기를 지내야 하는 가난한 농촌에서 새끼 꼬기는 중요한 경제활동이기도 했다. 농경사회에서 새끼와 겨울은 떼려야 뗄 수가 없는 밀접한 관계였다.


굳이 새끼 매듭짓기가  마치다의 비유이고, 사계절의 끝이 겨울이니, 새끼 매듭짓기가  겨울이 되었다는 어설픈 삼단 논법식의 기존 해석은 그다지 필요해 보이지 않는다. 새끼는 당연히 매듭을 지어야만 하는 것이고, 겨울철이면 농촌에서는 보통의 농가들이 다른 일을 멈추고 모두 새끼를 꼬게 되니, 겨울 하면 새끼꼬기를 연상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새끼와  매듭을 그린 갑골문 冬이  자체로 그냥 겨울이  것이다. 대중의 생활과 경제가 농경에 묶여 있던 고대사회에서는 충분히 그러했을 것이다.


밤을 맞아야 날이 저물듯이, 한 해는 겨울을 지나야 넘어간다. "어후, 추워라~! 간밤에 내린 함박눈이 마당 가득 수북이 쌓였네. 올해도 이제는 '새끼 매듭'이네!." 비유나 상징으로 둘러서 말하면 그냥 똑바로 말하기보다 심심치가 않아 좋다. 어쩌다 그 상징이 유행을 타면 자주 입에 오르내리고 널리 퍼진다. 그러다가 비유와 상징이 오히려 그 대상 자체를 직접 가리키게 되기도 한다.


그런 식으로 '새끼 매듭'은 차츰 '겨울'을 가리키게 된다. 천지 간에 눈 내리고 추녀 끝에 고드름 길어진 추운 밤에, 화롯불 피워 매캐한 곁방에 쭈그리고 앉아서 열심히 새끼줄 꼬는 농자의 거친 손바닥 굳은살! 거기에 틀리고 비벼져서, 매듭 지은 줄은 슬쩍 겨울이 되었다.


어쨌든, 새끼를 겨울이라 하는 이들에 대한 불만이 컸던가 보다. 급기야 소전(小篆)에서는 해가 사라져서 추위를 몰아 오더니 결빙(仌(얼음 빙))까지 지게 만든다. 冬(동)은, '새끼 매듭'으로 시작했으나 점점 겨울다워지더니, 소전에 이르러서 비로소 지금의 모양을 갖추어 비로소 어엿한 겨울이 되었다. 주 2)


예서(隸書)는 그 서체에 맞추느라 줄 모양을 닮은 夂(뒤쳐져 올 치)을 빌어 온다. 仌(얼음 빙)은 二을 거쳐서 冫으로 간화 된다. 이로써 드디어 오늘날의 冬(겨울 동)이 만들어지지만, 그 모양으로는 자형의 유래를 가늠하기는 어려워졌다.


다가올 겨우내 새끼 꼬느라 난리부릴 어느 조그만 농촌 마을 사람들 생각으로....!


주) 1. 새끼는 그 자체가 줄을 가리키는 말이니 새끼줄은 일종의 겹말이다. 다만, 짚 같은 천연 재료를 꼬아서 만든 줄이라는 한정된 뜻으로 굳어져 있다. 나일론이나 비닐, 철사를 꼬아 만든 줄을 새끼줄이라 하지는 않는다.

2. 冬의 아랫부분이 仌(얼음 빙)이라는 것도 별로 탐탁지가 않다. 예서에서 二로 간화 된 것에 어울리지가 않는다. 새끼를 보관해 두던 시렁이나 창고의 상징이 아니었을까 싶다. 일관 되게 새끼였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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