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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공지마 Oct 28. 2022

[한자썰73] 達, 유유히 걷기

걸음, 천천함, 반복 그리고 사람과 깨달음!

達(통달할 달) : 辵(쉬엄쉬엄 갈 착) + 羍(어린양 달)


갑골문 達(통달할 달)은 사거리를 유유히 걸어서 지나가는 사람이다. 첫 번째 글자 왼쪽에 彳은 行의 생략형으로 사거리를 가리키고, 우측에 직립한 일두사지(一頭四肢)는 사람의 상형이다. 두 번째 글자에 추가된 갑골문 (발의 상형)는 걸음걸이와 관련이 있음을 표시한다. 사람들이 몰리고 볼거리가 많은 사거리를 빠르게 통과하기란 쉽지가 않으니 그 걸음은 늦다. 사거리, 걸음걸이 그리고 사람까지, 이것들을 합한 갑골문 達은, 그래서 '사거리를 유유히 걸어서 지나가는 사람'이다. (【표 1】 7, 8) 주 1)


금문 達에서는 그 갑골문에 양(羊)이 한 마리 들어간다. 양(羊)까지 몰면서 사거리를 통과하는 사람(大=土)의 발걸음은 더더욱 늦어질 수밖에 없다. (【표 1】 1, 2) 주 2)


【표 1】 達의 자형 변천

금문 達에 양(羊)을 넣은 것은, 착(辵)이 뜻하는 걸음의 '천천함'을 강조하기 위함인 듯하다. 되새김 동물인 양은 삼킨 풀을 게워서 씹으면서 걷는다. 따라서, 그 걸음에 속도를 붙이기가 어렵다. 徉(양)을 노닐다, 머뭇거리다로 새기는 이유다. 그러니, 금문 達은 양이 노닐 듯 사거리를 유유히 지나다라는 뜻이 된다.  어쩌면, 達이 达와 徉를 겹쳐서 만들어진 글자 인지도  모를 일이다. 주 3)


도대체 사거리가 무엇이고, 유유한 걸음이 무엇이며, 양(羊)을 동반한다는 것은 또 무엇일까? 보다 간략한 达이 복잡한 達에 밀려서 쓰이지 않게 된 것은 또 왜일까? 보통 이런 경우 복잡한 글자가 훨씬 뜻을 잘 보존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양(羊)의 존재가 무언가 중요하다는 뜻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세수를 한다. 출근을 앞두고 있으니 대개는 조급하다. 천천히 한다 해도 길어 봐야 5분이나 더 걸릴까?! 그런데도 항상 서둘러 바삐 씻는다. 수도꼭지에서 분출하는 물이 내는 쐐 한 내음도, 하얀 비누 거품이 비벼내는 매끈한 부드러움도, 얼굴살에 손바닥이 닿는 뽀득임도 그 어느 하나 기억에 남기질 못한다.


겨를이 없다. 출근하기에 맘이 쏠려 있으니 그런 순간들과 느낌들에 감각과 상념은 끼어들 틈조차도 없다. 버스 정류장으로 서둘러 가는 동안, 가을 아침 공기의 시원함도, 여름 내내 화단에서 찬란했던 나무와 풀들의 생기가 누그러진 것도, 차창 밖으로 달리는 풍경의 생경함도, 사람들의 옷차림이 여며진 것도...! 느낌은 만드는 것이 아니고 생기는 것이다. 따라서, 느낌이 생길 수 있도록 내 상태을 열어 두고 예민함을 잃지 않으면 느낌은 절로 느껴진다. 억지로 만든 것은 느낌이 아니라 의지다.


사족, 達과 达는 그것을 표현한 것이다. 번다한 사거리 군중 속을 걸어도 유유한 걷고, 그중에 접하는 하나하나가 내 내면에서 느낌을 만들 수 있도록 나의 몸과 마음 상태를 천천히 평정하고 그러면서도 예민하게 유지하는 것, 즉 통달의 경지다. 達은 达보다 경지가 높다. 천방지축 어린양을 보살피면서도 그런 상태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자형 변천에서 達이 생기면서 达이 사라진 이유다.


금문 達에 도태된 갑골문 達은 이천여 년 세월이 지난 현대에 이르러 達의 간체자 达로 다시 부활했다. 양 따위에 의존할 필요없이, 천천히 걸어가는 사람, 그 천천함과 그리고 그 사람에 집중해야 삶의 의미를 통달하게 되기 때문이다.


주) 1. 行(다닐 행)의 길 두 개가 교차하는 사거리의 상형이다. 그래서, 원래 뜻은 '길', '도로'였다가 그 위에서 일어나는 행위인 '가다'로 뜻이 확대된다. 더 나아가 '가능하다(可以)'가 되는데, 사거리가 교통(交通), 상봉(相逢), 소통(疏通) 그리고 교환(交换) 등을 원활하게 만들어 주기 때문인 것 같다.

2. 達을 辵과 羍(어린 양 달)의 합자로 보기도 한다. 羍은 가까이에서 사람이 돌봐야 하는 양이라서 어린 양이라 했을 것이다.

3.《설문(說文)》은 彳+止, 辵을 ‘가다 서다 반복하다(走走停停)’라 푼다. '가다 서다 한다'는 것은, 천천히, 쉬엄쉬엄, 또는 유유히 걷는다는 말이다. 이것까지 보태서 풀이하면, 达(達)은, '사거리에서 (양을 몰면서) 유유히 거니는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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