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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공지마 Aug 11. 2022

[한자썰67] 事, 일과 글 그리고 뜻

기억은 기록을 이기지 못한다.

事(일 사)는 뜻(旨)과 붓(肀)을 합한 자다. 旨(뜻 지)는 원래 빈 숟가락을 핥을 정도로 '음식이 맛있다(味道甘美)'는 의미로 만들어졌다가 그 모양이 변한 것인데 뒤에 그 의미도 '뜻'으로  가차 되어 변한다. 교지(教旨), 성지(聖旨), 취지(趣旨), 유지(遺旨) 등으로 격식을 차린 표현에 많이 쓰인다. 肀(붓 사)는 손에 붓을 들고 글을 쓰는 장면을 그린 모양자다.


이 두 자가 합쳐져서, 본시 事(일 사)는 자신이 보고 들은 것을 글로 옮겨 남기는 일 또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을 가리켰다. 나중에는 역사 편찬을 위해 그 초고를 적는 일을 맡은 벼슬아치, 사관(史官)으로 불리게 된다.


【표】 事의 자형 변천(百度출처)

事는 제사를 맡은 관원인 제관(祭官)을 가리키기도 했다. 事의 갑골문이 어떤 물건을 하늘을 향해 높게 치켜들고 있는 모양인데, 그 정체가 주술 도구였기 때문이다.


옛날에 지배자나 제사장들은 정치적 또는 종교적으로 권위와 위엄을 드러내기 위해서 특별한 도구 하나씩을 손에 지니고 다녔다. 그 장면이 갑골문 事다. 무당이 굿을 하거나 점을 칠 때 신령과 교통 하기 위한 매개물로 무당 방울(무령(巫鈴))을 치켜 흔드는 것은 여전히 남아 있는 事의 흔적이다. (【표】 1~6) 주)


문자는 상고시대에 극소수 상류층 사람들의 전유물이다. 갑골문은 특히나 제사장이나 제관이 다른 누구보다 능통하다. 주로 주술과 점에 사용된 글자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제사장이 ‘기록’하는 일을 맡은 것은 매우 자연스럽다.


사관(史官)은 사실(事實)을 취합해서 적은 다음에 그 의미를 잘 정리해서 사실(史實)로 편찬하고 후세에 남기는 일을 소임으로 한다. 따라서 ‘기록’하는 일에 더해서 무엇을 기록할 것인지를 판단하는 ‘지혜’를 사관은 함께 갖추어야 한다. 게다가 갑골문 기록에 주로 쓰인 거북의 등껍질(귀갑(龜甲))이나 짐승의 어깨뼈(수골(獸骨))는 구하기가 흔치 않고 글을 칼로 새기는 데에는 많은 공이 든다. 그러니, 꼭 필요하고 남길만한 가치가 있은 사실들만을 잘 골라서 적어야만 한다. 기록할 것들의 핵심 의미를 찾아서 축약해 내는 ‘지혜’가 한층 절실해진다.


신령에 사로잡힌 상고 사회에서는 -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사실들의 근본적 의미인 - 진실 또는 진리는 주술과 점을 통해서 밝혀지고 공언된다. 주술과 점이 믿고 따를 만한 정책을 공포하는 관보(官報)이고 과학학술지 네이처(NATURE)인 셈이다. 종교를 통해서야 '해야 할 일'이 결정되고, ‘지나간 일’이 해석되고, '벌어질 일'이 예견된다. 갑골 시대에는 인간사에 대한 그런 결정과 해석, 예견을 독점한 이들이 제사장과 제관이었으니, 그들은 기록할 것을 고르는 ‘지혜’에도 역시나 남들보다 월등하다. 아니 보다 정확한 표현은 독점했다.


상고시대에 제관(祭官)과 사관(史官)의 겸직이 불가피했던 연고가 그러하다. 글자 事(일사)는 그런 태곳적 사실(事實)을 전달해주는 화석인 셈이다.


사족, 史(사기 사), 吏(벼슬아치 리), 使(시킬 사)는 事와 그 갑골문이 동일하다. 네 글자 모두가 원래는 단 하나의 글자였다는 뜻이다. 나중에 각자 분화해서, 史는 관리들이 하는 기록을, 吏는 널리 공평해야 한다는 뜻으로 一을 머리에 꽂아서 관리 그 자신을, 使는 직접 행하기보다 계획하고 지시하는, 관리가 하는 일의 방식을, 마지막으로 事는 관리가 소임으로 하는 일, 즉 그의 직분을 가리키게 된다. 같은 글자 하나를 놓고 이렇게 시시콜콜 나누고 구별해 쓰는 것을 보면, 전통사회에서 관리가 가히 주목받는 직업이었음을 여실히 알 수가 있다.


고대에 일반인에 대비해서 관리가 가지는 가장  차별성은 행하는 일에 있어서 '글을 사용한다는 것이다. 글을 사용하니 지식이 사라지지 않고 쌓이고 대량의 소통이 정확하고 일관되며, 인식과 사고가 치밀해진다. 문맹의 시기에  쓰기는 관리의 가장 핵심적인 역량이다. 관리가 하는 일에 있어서,  일을 대하는 철학과 태도' ' 일을 하는 '방식' 표현한  글자, , , 使 그리고 事가 하나 같이  쓰기와 관련이 있는 이유다. 哈哈。

 "기억은 기록을 이기지 못한다"

주) 갑골문 事의 윗부분 물건이 사냥도구(엽구(獵具))라는 설명도 있다. 그러나 사관이나 제관으로 쓰인 事의 용례와 어울리지 않아서 설득력이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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