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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공지마 Dec 30. 2022

[한자썰75] 雪, 새가 날리는 깃털

사람이 늙어서 낭만이 사라지듯...!

雪(눈 설) : 雨(비 우) +  彐(돼지머리 계)


雪(눈 설)은 비(雨)와 손(彐)이다. 보통은 오른손을 나타내는 彐(돼지머리 계)가 여기서는 彗(빗자루 혜)가 줄어서 된 것이다. 이 때문에, 雪(눈 설)은 비처럼 하늘에서 내리는데 물이 아니라서 흘러가질 않으니 빗자루로 쓸어 내야 하는 물체, 곧 눈이 된다. 주 1)


한편, 갑골문 雪는 비(雨)와 새의 깃(羽)이다. 선인들은 눈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깃털이라고 생각했던가 보다. 전설 속에 나오는 크나큰 새가 까마득히 먼 하늘 위에서 천하사해를 뒤덮는 광대한 날개를 펄럭일 때, 그 깃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온 세상에 흩날려 내리는 털 조각들…! ( 【표1】  1, 2 )


【표1】雪의 자형변천

갑골시대 중국 중원은 지금과 달리 열대기후에 가까웠다. 눈이 내릴 일은 매우 희한(稀罕)하고, 그 양도 아주 미량이다. 따뜻한 기온 때문에 눈은 땅에 닿자마자 아니면 내리는 중에라도 이내 녹아서 사라져 버린다.


사라지는 찰나의 아쉬움과 순백의 정결함은 사람들의 상상을 불러일으키고, 그리하여 그들이 떠올린 것이 전설의 새다. 그 크기가 광대해서 인간의 시야로는 도저히 미칠 수조차 없는 미지의 새...! 전설과 상상 그리고 꿈은, 바람에 섞여 눈발과 함께 흩날린다. 그렇게 羽(깃 우)는 눈(雪)에 몽환 같은 낭만을 실었다,


반전이 있다. 눈의 결정체가 새의 깃, 곧 羽를 닮은 것이 참으로 기묘하다. 자세히 들여다보고 깊이 궁구 하면 진실이 제 절로 모습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과학 하는 자세가 바로 그것이다. 선인들이 전설과 신령, 환상에 얽매였다 하는 것은 교만한 지금 사람들이 선입견으로 하는 말일지도 모른다. 그들이 자세히 들여다본 눈의 정체는 정확히 새의 깃털이었다.

【표2】눈의 결정

갑골문 雪에 있던 羽(깃 우)가 그 후에 사라진 이유는, 기후 변화와 분명 관련이 있다. 중원 땅이 점차 온대화하면서 강설(降雪)이 잦아지고 그 양도 많아지니 사람들에게 쌓이는 눈이 귀찮아지고 치우기에 급급해진다. 이때쯤부터 눈에서 깃털의 낭만이 사라지더니 드디어 세속의 빗자루가 등장한다. 그제야 사람들은 눈과 비가 구름이 무거워지면 생기는, 사실은 같은 것이라는 것을 알아차린다.


자형변천에서 雪(눈 설)은 살별과도 무관치 않다. 화살처럼 빠르게 밤하늘을 날아가는 별이라 해서 살별이라 한다. 그 살별의 잔상, 그러니까 빛꼬리가 빗자루의 깃을 닮았다. 그래서 살별은 다시 빗자루로 은유되어, 혜(彗) 또는 혜성(彗星)으로도 불린다. 빗자루가 살별로 치환되는 순간, 눈은 혜성의 꼬리가 흩어 뿌리는 빛의 조각들로 승화(昇華)된다. 큰 새는 날아가는 별이 되고, 그 깃털은 빛이 되고....! 주 3)



사족, 雪자의 자형변천은 사물에 대한 인간의 인지 단계를 이해하는 데에 작은 실마리를 제공한다. 한자는 그 표현하고자 하는 대상을 인간들이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지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비(雨)도 아니면서 하늘에서 내리는 신기한 물체를 처음 접한 사람들은 그것을 실물 또는 자연 그 자체로 인식한다. 그런데,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으니 익히 보아 오던 새의 깃털을 그 대용물로 생각해 낸다. 그다음 단계는 그 대상과 인간 간에 관계에 주목한다. 눈은 비처럼 흘러 나가지 않으니 쌓이면 길을 막고 집을 춥게 만든다. 그러니, 얼어서 치우기 더 어려워지기 전에 얼른 제거해야 한다. 그럴 때면 쓰는 빗자루가 깃털을 대신한다. 이제 대상을 그 자체가 아니라 인간과의 관계로 인식하는 단계가 된다.


눈이 오는 날이면, 아이들은 신나는 비명을 날리며 설레는 마음으로 썰매를 들고 경쾌히 뛰쳐나간다. 색맹에 근시인 개들은 율동하는 흑백세상에 흥분해서 몸을 뒤틀고 돌며 껑충껑충 뛰어다닌다. 그러나, 이제 나이 들고 보이는 것과 가진 것이 많아지니 다니는 길이 미끄러지고, 얼어붙은 그늘이 추워지고, 녹을 때면 지저분하다 해서 불만뿐이다. 사람이 늙어서 낭만이 사라지듯, 雪자도 다르지가 않다. 嘿嘿。


주) 1. 彐는 돼지머리 계라고도 읽고, 부수로 쓰일 때는 튼가로 왈이라 부른다. 새김과는 상관이 없이 모양을 흉내 내는 데에 주로 사용된다. 聿(붓 율) 또는 彗(비/살별 혜)에서 彐는 오른손을 가리키는 又(또 우)의 변형으로 손 모양을 나타낸다.

2. 갑골문헌들에서 雨(비 우) 자와 달리 雪(눈 설) 자가 거의 발견되지 않는 것은 갑골시대에 중국 중원에 눈이 거의 내리지 않았다는 것을 방증한다.

3. 雪(눈 설)자의 소재들은 하나 같이 하늘을 날아다닌다. 빗자루 역시도 그 생김이 날개를 닮았으니 비행하는 것들과 무관하지가 않다. 서양 전설에서 마녀가 빗자루에 올라타서 날아다니는 것은, 빗자루 彗를 살별에도 함께 쓰는 동양적 상상력과 그 궤가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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