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공지마 Jan 16. 2023

[한자썰77] 歲, 참혹함 그리고 낭만...

시간과 그 순환의 경계 그리고 반복!

歲(해 세) : 步(걸음 보) + 戌(개 술)


갑골문 歲(해 세)는 도끼가 양발 사이에 가로질러 놓여 있는데 그 해석이 분분하다. 양발을 도끼로 찍어 절단하는 흉측한 형상이라기도 하고, 제상에 올릴 희생물을 도축하는 장면이라기도 한다. 한편으로는 병장기를 메고 전쟁터를 전전하는 병사라기도 한다. (【 표 】 1, 2)


앞에 둘은 모양 그대로에 설명을 붙인 것이니 그렇다 치고,  번째가  의아하다. 끊임없는 전란의 시대였던 고대에는  세월을 전쟁터로 내몰린 사람들이 허다했다. 그래서, 병장기() 함께 전장을 누빈() 기나긴 세월을 歲라 하게 되었다는 것이  번째 해석이다.  해석에서 일생이나 평생이 파생하고, 그것을 재는 주기인  또는 새해, 나이로까지 歲는  쓰임이 다양해진다. 주)


그러나, 劌(상처입일 귀/궤)가 쪼개다, 가르다인 것을 보면, 歲가 원래 도끼로 발을 자르는 형상이라는 것도 충분히 근거 있는 설명이다. 어떤 글자의 의미가 변하면, 그 원래 의미를 계속 살려서 쓰기 위해서 연관이 있는 다른 글자를 추가해서 새로운 글자를 만드는 사례가 많다. 그런 방식에 따르면, 劌가 歲의 처음 뜻을 유지하기 위해서 새로 만들어진 글자이고, 따라서 歲의 당초 의미는 劌의 새김인 쪼개다, 가르다가 된다.


아마도, 그 양발은 죄수나 포로의 것이었을 것이고, 따라서 歲는 그들에게 집행하는 형벌이 된다. 형벌과 무기(戌)는 지배구조와 관련이 깊다. 지배자는 지배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죄의 기준을 정하고, 그것에 어긋난 자들을 죄인이라 불러서 형벌을 가하는 방식으로 질서를 강제한다. 그런 지배구조들 간의 외적 충돌이 전쟁이고, 내적 결속이 제사다. 그 전쟁에서 삶과 죽음, 일생, 평생, 해, 나이, 그리고 그 제사에서 수확과 결실, 신성과 숭배가 흘러나온다. 굳이 전장을 헤매는 병졸이라 하지 않아도 歲와 관련된 의식의 흐름은 그런 식으로 퍼져 나갔다면, 그에 맞추어 뜻도 그렇게 추가되었을 것이다. 무기, 형벌, 전쟁, 제사, 세월, 일생, 해 그리고 나이....!


사족, 歲의 자형변천을 보면, 해서에 이르기 까지 발과 도끼의 조합이라는 기본 구조가 단 한 번도 바뀐 적이 없다. 단지, 각 시대에 유행하던 서체들의 특징들이 반영되어서 겉보기가 달라 보일 뿐이다.


지금 우리가 쓰는 해서(楷書)만 해도 歲는 步(걸음 보)과 戌(개 술)의 합자이다. 步(걸음 보)를 갑골문이나 금문으로 본 그 원형은 오른발과 왼발이 아래위로 번갈아 있는 모양인데, 걸어가는 사람이 바닥에 남긴 양 발자국을 그 모양 그대로 그린 것이다. 戌(개 술)은 , 戊(창 모), 戌(개 술), 戉(도끼 월) 등과 함께 戈(창 과)을 변형시켜 만든 무기들인데, 이 글자들은 자루에 달린 날 선 쇠뭉치의 모양에 따라 달리 표현된 것들이다. 歲는, 步(걸음 보)과 戌(개 술), 두 글자 각각의 획이 그 어느 하나도 버려지지 않은 채 절묘하게 겹쳐져 있어서 참 특이하다. 보통 쓰이는 합자라는 말로는 모자라고 겹자라고 굳이 따로 불러야만 더 어울릴 것 같다.


歲는 근대 간체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그 자형에 근본적인 변화가 생긴다. 歲의 간체는 岁인데, 두 글자의 구성요소가 완전히 다르다. 岁는 山(메 산)과 夕(저녁 석)인데, 夕(저녁 석)이 저녁 무렵에 뜬 달을 가리키니, 岁는 결국 山과 月이 된다. 해질 무렵 산등성이에 걸린 어슴푸레한 달빛! 전쟁도, 제사도, 형벌도 다 사라져 버린, 시간과 그 순환의 경계 그리고 반복! 岁는 歲 속에 숨겨져 있는 정치적인 투쟁이나 참혹한 살육의 흔적을 깨끗이 털어낸 지극히 간명하고 아름다운 글자다. 자연에 대한 겸손과 낭만 그리고 삶에 대한 허무와 담담함이 어려있다. 귀한 글자다. 哈哈。


) 歲는 고대인들이 가장 우러르던 행성인 목성을 가리키기도 한다. 제례의 신성함과 엄중함을 지키는 무기로 존시()되던 (=) 들어 있기 때문이다. 목성의 공전주기는 지구의 12년이다. 십이간지에서 처럼 12 특별한 숫자다. 달이 차고 기우는 주기가 태양의 공전주기 1년과 비교해서 1/12에 근사하다는 우연으로 안 보인다. 태양계 1등 행성 목성을 ( ) 이름한 것은 무언가 유별난 사연이 있지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자썰76] 年, 집착과 연민, 욕망과 불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