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살자고 창 겨누지 말기!
我(나 아): 手(손 수) + 戈(창 과)
我(나 아)는 손(手(=扌))에 창(戈)을 잡은 모습이라고도 해석도 하지만, 날이 셋으로 나뉜 갈고리 모양 창(갑골문 A,B,C)이 자형변화(소전 D, 예서 E)를 거쳐 지금(해서 F)처럼 된 것이다. 그러니, 我는 그냥 창일뿐이다.
철기 사용이 확대되는 춘추전국시대에 들어 다양한 무기들이 출현하면서 이 구식 무기는 자연스럽게 도태되어 사라지지만, 이미 은상(殷商) 때부터 '나'의 뜻을 함께 가졌던 덕으로 글자 我는 살아 남아 지금까지도 인기리에 회자된다.
고대에는 전쟁이 빈번하고 정규군은 없었으니 모든 장정이 군인이다. 그래서, 그들이 소지하거나 보관해둔 병장기들은 군인의 임무와 지위를 나타내고, 장기나 무공을 설명해 준다. 즉, 개인의 사회적 정체성을 대변한 것이다. 이것이 은상시대 대표적인 무기인 我가, 이미 그 당시부터 '나'의 의미를 동시에 갖게 된 이유일 게다. 굳이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의 무기만으로도 그 사람을 지칭하게 되는 그 지점, 거기에서 我가 '내'가 된 것이다. 여의봉하면 손오공, 심지창하면 저팔계, 항요장하면 사오정이 아니던가! ^^ 하물며, 극형과 도살에 쓰이던 무시무시한 그 창이 역사 속으로 사라졌음에랴...
본래는 ‘나’와 관련이 없으나, ‘나’가 된 글자들은 我 말고 몇이 더 있다.
余(나 여)는 나무 위에 지은 오두막이다. 범람하는 강물과 맹수의 공격을 피해 나무 위에 집을 짓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수렵채집기에 있었겠다. 자연의 고난을 피하기 위해서 또 그 자연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처량한 원시의 신세, 그게 사람이다 싶었나 보다. ‘余’는 ‘수상(树上) 오두막’을 버리고 ‘내’가 되었다.(專門家, 大家처럼 집(家)이 사람이 된 사례와 비슷하다)
予(나 여)는 피륙을 짜는 직기의 북이다. 씨줄을 꼬리에 달고, 엇갈려 늘어진 빽빽한 날줄 사이를 끊임없이 왔다 갔다 하는 그 북이, 공수래공수거 이리저리 흔들려 사는 사람들의 인생을 닮았다 해서였을까? 予가 ‘북’을 버리고 ‘내’가 되었다.
吾(나 오)는 ‘글 읽는 소리’ 또는 ‘말씀’이다. 앞에 세 글자와 달리, 사물이 아니라 행위가 그 사람을 대표하게 된다. 말은 그 사람의 사람됨을 알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吾는 ‘말’을 버리고 ‘내’가 되었다.吾가 '말'을 잃어 벙어리가 될까 봐, 言이 붙어 만들어진 글자가 語(말씀 어)다.
인간의 최대 관심사는 뭐니 뭐니 해도 '나'다. 수천 년 동안 '나는 무엇인가?'를 고민한 인간들의 사유 흔적이 '나'라는 그 글자들에 남아 있다.
사족, '나'에 순서를 내리먹여 보라 하면, 나는 余, 我, 予, 吾의 순이다. 수렵과 채취, 그리고 초기 농경사회를 지나서, 잉여생산과 자연재해로 인한 부족과 계급 간 재분배 투쟁, 직기를 이용한 피륙 생산의 증대, 그리고 풍부해진 언어와 계층의 분화…. 이 글자들은 ‘나’에 대한 일종의 문명사적 페르소나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 여러 ‘나’들을 다 제치고 유독 我가 가장 번창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기는 이 험한 세상에서 ‘나’를 지켜 내며 살아가는 게 ‘투쟁’ 아니면 도대체 무엇이겠나! 세상 아무리 그래도, 우리끼리 서로 창을 겨누지는 맙시다요. 哈哈。주)
주) 余, 予, 吾 등은 고문에 주로 남아 있고, 현대에는 문어 상에 매우 제한적으로 쓰인다.
p.s. 다음 한자썰은 世(인간 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