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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공지마 Feb 13. 2022

[한자썰13] 棗,사랑이 왜 걸렸나?

대추도 아는 사랑의 고통

棗(대추 조)는, 朿(가시 자) 두 개를 겹쳐서 만든 글자다. 대추나무하면 무엇보다 가시가 먼저 떠올랐다는 것인데, 棗의 자형 변천을 보면 갑골에서 소전까지 일관되게 가시가 강조된다.


그럼에도, 대추나무에 대한 우리의 이미지는, 풍요, 다산, 너그러움, 단맛, 한약재 등속으로 그 글자의 모양과는 너무나 다르다. 그래서일까 대추나무에 가시가 박힌 줄을 아는 사람이 드물다. 도대체 대추 가시는, 무슨 이유로 우리 기억 속에 그렇게 꼭꼭 숨어 있는 걸까? 주)


(출처) 百度百科, www.baidu.com

지금은 종영된 KBS 주말 아침 전원 드라마, ‘대추나무에 사랑 걸렸네!’에 그 대추나무 아니던가? 사랑, 사랑이라 하더니 가시가 도대체 웬 말인가! 실제, 주변에서 물어보면 이상하리 만치 모르는 이들이 많지만 , 분명히 대추나무에는 한자 棗처럼 많은 가시가 돋아 있다. 그것도 독이 바짝 올라서 사선으로 날카롭게 삐쭉 솟아 있는 모양을 보면 섬뜩한 느낌까지 갖게 된다. 보호장갑을 챙기지 않으면 대추 수확이 불가능할 정도다. 탐스러울수록 조심해야 한다는 교훈은 장미의 전유물이 아니다.


중국에 살면서 먹어 본 과일 중에 맛으로 제일을 꼽으라면, 나는 그 하나가 여름 수박이고, 그다음이 가을 대추다. 초가을 제철이면 북경 왕징(望京) 길거리에 대추를 가득히 실은 수레들이 여기저기 흔하다. 어스름 퇴근길에 아무 데서 어느 걸 사 먹어도 맛이 일품이고, 알도 크고 가격은 놀랍도록 싸다. 인민폐로 단돈 10원이면 너덧이 먹어도 족하다.


중국에서 수입한 농산물에 대해서는 저급한 품질과 위생, 가짜 국산의 대표라는 선입견이 뿌리 깊다. 그러나, 중국 살면서 직접 접한 먹을거리들은 그렇지가 않다. 가격은 싸고 품질과 맛도 충분히 좋다. 중국산이 나쁜 게 아니고, 수입한 중국산이 그런 거다.


우리나라 충북 보은은 대추로 유명하다. 그런데, 상품(上品)은 대부분 일본으로 수출이 된단다. ‘국내 출하분은 상품(商品)성이 좀 쳐지는 것들이라 미안하다!’면서 지인들에게 대추를 판매하는, 어떤 보은 분의 이야기를 들었다. 타국의 나쁜 것을 자기 나라 이웃들에게 들여다 팔고, 자국의 좋은 것은 남에 나라에 내다 파는, 이 얄궂은 짓은 도대체 뭐란 말인가! 다 돈, 그 놈의 장난이다.


사족, 棗의 간체자는 枣다. 枣 아래 삐친 획 두 개는, 원래 글자가 朿(가시 자)가 두 개라는 걸까, 아니면 대추나무 가시가 그리 생겼다는 걸까? 실제로 그 가시를 눈으로 확인하고 나니 후자가 훨씬 맞다 싶다. 무성한 잎과 주렁진 열매 아래 삐딱하게 박힌 섬찟한 가시, 삐친 획 두 개와 싱크로율 100%다. 그 글자의 생생함에 취해서 그만, 검지 끝을 글자 枣에 깊게 찔려 선홍 핏방울이 맺혔다. 그런 상상이 들 지경이다. 간체자를 알아 가는 즐거움 중 하나다.


대추나무를 들여올 때, 원래 중국에서 ‘가시가 많다’는 뜻으로 大棗(대조, dà zǎo(따자오))라 불렀다는데, 대추는 그 발음이 변한 말이라 한다.


세상 보는 눈이 너그러우시고, 그래서 평생에 존경하며 뵙는 어느 형님께서 술자리에서 우스개로 그러시더라. “대추나무에 사랑이 왜 걸렸냐 하면, 사랑이 가시처럼 아픈 거라서 그런 거야!” 呵呵!


주) 한국, 중국 인터넷을 열심히 뒤졌지만 대추가시 이미지를 찾기가 쉽지 않다. 이롭기가 한량없는 대추에 그런 흉한 상징을 붙이기가 그만큼 싫다는 뜻일까?


p.s. 다음 한자썰은 옥 옥(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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