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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공지마 Feb 18. 2022

이것도 추억이 되어 남을까?!

연극이 끝나고 나면.

근 삼십 년 만에 본 연극, 국립정동극장에서 상연한 <가족(家族)이란 이름의 부족(部族)>


대사가  들리지 않는다. 대략 30% 제대로  알아들은  같다. 전후 맥락과 대화를 끼워 맞춰서 15% 겨우 복구했지만, 나머지 15% 무대 위에서 부질없이 휘발해 버렸다. 청력이 내구연한에 가까워진 탓도 있겠고, 온갖 매체에 넘쳐나는 자막에 너무 익숙해져서 청취력이 약해졌을 가능성도 적지 않다. 나는 넷플릭스에서 한국 드라마  때도 자막을 띄워한다.

이 연극은 소통에 대한 이야기다. 등장인물 중 두 명이 청각장애자다. 남자는 선천성인데 독화(讀話)가 가능하고 무척 어눌하지만 말은 할 수 있다. 여자는 후천성으로 청각을 잃어 가는 중이다. 말을 조금밖에 알아듣지 못하지만, 대신에 수화(手話)를 아주 잘하고, 말하기도 정확하고 조리 있다.


 극에서 청각장애는 소통 단절의 다양한 양식을 극단적으로 상징한다. 그러나, 정작 심각한 것은 나머지 가족들의 소통장애다. 장애를 일으키는 스타일도 가지각색으로 다르다. 자기 식의 자기 말만 하고, 자기 식으로만 듣고, 말만 하면 비난하고 헐뜯 말다툼으로 이어진다.  가족의 갈등을 파국으로 치닫게  트리거는 청각장애자  사람이지만, 근본적인 갈등의 화근은 정작 모든 가족들, 그들 안에 있다. 그래서, 그들은 가족이라고 이름만 붙은 부족(部族) 되어 버린 거다.


청각장애인 두 명이 이야기할 때에는 대사를 무대 뒤 벽에다 이곳저곳 겹겹이 쏘아 준다. 이 때문에 비장애인인 다른 가족들보다 그들의 대화를 훨씬 더 잘 알아듣고, 잘 알아볼 수가 있다. 단순히 관객의 청취를 돕기 위한 목적이 아니다. 소통 단절의 아이러니고 그것에 대한 비아냥이다.


연극이 끝나고 커튼콜마저 마쳤는데, 관객들이 일어날 생각을 않는다. 그리고는 하나씩 둘씩 휴대폰을 꺼내 들기 시작한다. 세상에나! 스페셜 커튼콜이라 부른다는데, 영화에서 엔딩 크레디트에 함께 흘려보내는 쿠키 영상(이하 '쿠키 연희(演戲)') 같은 것이 연극에도 있다니! 전체 극 중에 막 하나를 통째로 떼어내서 다시 연기했다. 쿠키 연희가 시작되기가 무섭게 관객들이 휴대폰 사진을 찍는 소리가 극장 안을 온통 가득 채운다. 주)


   세상에나! 쿠키 연희를 상연하는 이유에 경악했다.   상연 중에는 일체의 촬영이 엄격히 금지된다. 그래서, 연극을 관람한 인증사진을 SNS 띄울 수가 없다. 쿠키 연희목적이 거기에 있다 한다 .


영화나 드라마에서 처럼, 짤막한 에필로그, 비하인드, NG 연희 따위를 잔뜩 기대했다. '잔뜩'이란 말은, 영화도 아닌 연극에서 그런 것들을 도대체 어떻게 재연하는지 상상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나는, 쿠키 연희를 아주 공들여 봐야 했지만,  막과  일도 차이없연희속절없이 실망했다.

 

요즘 청춘들은 밥을 먹어도, 커피를 마셔도, 산에 올라도, 골프를 쳐도, 책을 읽어도, 찍고, 찍고, 그리고 또 찍고 허다한 일상의 다반사를 순간순간 부지런히 온라인에 올린다. 오죽하면 아내는 아이들이 오늘 하고 다닌 일을 다 꽤 찬다. 심지어 그 아이들 여친, 남친들 일상까지 그렇다. 극예술에선들 그 풍속과 시류에 맞추어 적응하지 않고 배겨 낼 방도가 없었겠다.


듣자 하니 인스타그램 '내 스토리'는 24시간이 지나면 지워진다. 우리 청춘들에게 일상의 기억 수명이 그저 하루 짜리인 셈이다. 기억을 이렇게 자꾸 기계에게 맡겨 놓으면, 기억의 낭만 버전인 추억은 먼 훗날까지 세월을 어떻게 이겨내 살아남을까?! 명백한 꼰대 발언이지만 하여튼 내 생각은 그렇다.


연극의 마지막 장면은, 갈등의 정점에 선 두 배우가 서로 껴안으면서, 사랑을 이야기하고 화해로 끝이 난다. 연극은 그럭저럭 해피엔딩 했지만 내 속은 그리 편치가 않다. 아내와 딸과 함께 한 연극 관람이 근 삼십 년만이다.


<가족이란 이름의 부족>은 소통의 단절 때문에 해체되어 부족(部族)이 되어버린 가족이 다시 가족으로 돌아가는 과정에 대한 이야기다. 소통의 부재, 몰이해와 갈등, 분리와 단절, 연민과 그리움, 추억, 화해, 가족 그리고 사랑! 아주 오랜 미래에 대한 영화, <인터스텔라>에서도 진부하지만 답은 사랑이었다.


나도 그 사진을 이 글 대문에 걸었다.

) '쿠키 연희'라는 말은 없다. 쿠키 영상 빌려 필자가 억지로 지은 말이다. 정식 명칭은 스페셜 커튼콜지만,   너무 일반적인 의미라서 별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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