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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공지마 Mar 09. 2022

[한자썰30] 辱, 연탄재 아닙니다

새로운 정부에 바람!

辱(욕될 욕): 辰(별 진) + 寸(마디 촌)


辱(욕될 욕)은 갑골자에서 보면 풀을 베는 농기구(辰)와 손(寸)을 모은 글자다. 그래서 원래는 ‘풀을 베다’, ‘일을 하다’라는 뜻이었고, 어떤 이는 農(농사 농) 자의 본자(本字)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두 글자의 갑골자를 보면 그 주장이 충분히 타당하다. 농사일은 자칫 때를 놓치면 망치기가 쉽다. 그래서, 씨 뿌리고, 물 대고, 김매고, 거두는 때를 제대로 맞추지 못하면 고대에는 그 죄를 엄중히 물었다. 목을 자르기(刹頭)까지 했을 정도다. 그러다 보니 辱은 점차 ‘욕되다’, ‘더럽히다’, ‘치욕’, ‘수치’라는 뜻으로 변해 간다.


갑골자 辱는 풀 베는 상황을 생동하듯 그린다. 큼지막한 날에 썰려 나가는 풀들이 허공으로 튀어 날리고(세 개의 점), 깊게 결이진 굵고 긴 자루는 그 걸 쥐고 휘두르는 일꾼이 얼마나 고될지를 저절로 상상하게 만든다. 갑골자까지 쫓아 올라가면서 한자를 번거로이 공부하는 재미가 이런 데에 있다.


아무리 날이 잘 서고 튼튼한 도구를 썼다 한들, 원시사회의 생산력은 저급하다. 그러니, 남녀노소를 가릴 것 없이 누구나 밭을 갈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소출이 줄어 사람들이 굶주려 병들게 되고, 길어지면 끼니를 차지하기 위한 내분이 초래된다. 호시탐탐 노리던 이웃 부족이 침노하기 딱 좋은 때가 그 때다. 가족은 살해되거나 노예로 끌려가고 부족은 해체된다. 생산력이 한계 수준을 넘지 못한 원시사회에서 개인의 생존과 공동체의 유지는 공동 노동과 직결된다.

(농사 ) 갑골자에서는 (욕될 ) 자와 형태와 요소에 거의 차이가 없다. 다만, 작업을 하는 대상이 표시된다. 행위나 도구보다 목적물에  관심을  것인데, 생산력의 증대가 엿보인다. 노동의 결과가 배부를 만큼 소출을 내는 상황에 이르자, 이제 상황을 인식하는 중심 이미지가 행위에서  대상으로 바뀐 것이다. 그렇게 해서 農자의 변천 과정에서 새롭게 출현한 것들이, ()이고(1, 2), 나무()이고(10~14), ()이다(2~9, 11, 12). 그리고 협력(3~8)으로 이어진다. 서주(西周) 시대부터  위치가 하단에서 상단으로 올라가고 개수가 단수에서 복수로 바뀐 것이  실마리다.(3~8)  2)


우리가 지금 고 있는 (농사 )자에도 공동 노동의 흔적이 여전히 남아있다.(9) 상단에 曲은 굽을  자가 아닌, ++手를 흉내  모양자이다. 손들이 사라진 게 아니다. 글자만으로도 동네 사람들이      가리고 서로 돌아가며 함께 힘을 모아 모내기하는 모습이 상상된다. 우리 농촌에 '두레' 바로 그런 것인데,  천년 전에 만들어진  자에는 이미 두레의 뜻이 담겨 있다.


사족, 辱과 農은 갑골시대에 '일 하다'를 가리키기 위한 글자 간에 경쟁을 벌인다. 생산 환경의 변화에 적응한 農은 적자로 생존하고 辱은 도태된다. 대신 辱은 그 뜻이 바뀐다. 패자의 운명인가! 노동의 땀과 보람은 속절없이 지워지고 그 노역과 고통만이 부끄러운 낙인처럼 남았다.


1.욕되다(辱--), 수치스럽다(羞恥---)

2.더럽히다, 욕(辱)되게 하다

3.모욕(侮辱)을 당하다(當--)

4.욕보이다(辱---)

5.무덥다

6.황공하다(惶恐--)

7.거스르다

8.치욕(恥辱), 수치(羞恥) / 네이버 한자 사전


참혹하고 부당하다. '농업의 발전'이 엉뚱하게도 원시에 대표적인 노동형태인 농업 노동을 치욕과 수치로 추락시켜 버렸다. 고대에는 글자와 그 글자의 뜻을 정하는 것이 지배층의 전유물이다. 그들의 시각과 입맛(Appetite), 이해(利害)에 따라 지어지고 바뀌며, 때로는 왜곡된다 . 그러니, 辱은 욕이라 일컫는다 해서, 노동하지 않는 자들이 거리껴할 것은 없다. 어차피 노동하는 자들은 문맹이니 그들 마저도 거리껴할 것이 없다.


근로자(勤勞者) 또는 노무자(勞務者)라는 말이 있다.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 '일을 의무로 아는 자'라는 뜻이다. 대학교 1학년 때, 경제원론에서 생산요소가 노동(Labor, L)과 자본(Capital, K)이라고 배우면서 혼란스러웠던 기억이 있다. '왜, 근로나 노무가 아니지? 그것도 교과서에서..!' 물론, 이 두 말은 과학적이지 않다. 주관이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일을 보수보다 부지런히 하기를 바라거나 의무로 알아서 스스로를 강제해 주기를 바라는 이들의 이해관계가 들어가 있다.


그렇다면, 경영자는 근영자(勤營者), 영무자(營務者)라고 불러야 마땅하다. 글과 말로 의식을 지배하면 그 기울어진 운동장을 느끼지 못한다. 무서운 일이다. 우리에게는 辱을 욕으로 부르는 사회적 DNA가 여전히 잠재해 있다.


그런데, 참 흥미롭다. 勞(일할 노)와 營(지을 영)의 상단이, 火+火(불 화)+冖(덮을 멱)으로 완벽하게 일치한다. 결국 그들은 공동의 목적으로 만난 사람들이다. 경영자는 기둥(呂(등뼈 려))을 설계하고, 노동자는 힘(力)을 보태서, 서로서로 등불(火+火)을 맞잡아 켜 놓고 함께 지붕(冖)을 덮어야 한다. 길을 찾고 화합해야 한다. 노사(勞使)가 아니라 노영(勞營)이라 해보는 것도 좋겠다.

 

다만, 한 때 신성했었던 노동, 辱을 욕이라 하지는 말자! 그래서, 욕에 辱자는 이제 폐하고 새로운 욕자를 제안한다. 입에 낫을 물었으니 그게 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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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에게 묻는다/안도현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 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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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베이어 벨트에 감겨 들어가고, 토사에 쓸려 묻히고, 콘크리트 더미에 깔려 갇히고, 도로포장 롤러에 눌려 찢어지는, 그 노동을 진정으로 귀하고 고맙게 여기는 세상을, 새로 들어설 정부에 간절히 바란다. 그게 보수이든 진보이든...!


주) 상단에 木(나무 목)이 올라간 글자는 지금은 쓰이지 않는다. 하지만, 농업생산성의 향상은 새로운 땅을 개간할 유인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니, 木자를 올린 농자는 산지 또는 고랭지 농사를 구분해서 가리키는 글로 써봄직 하다.


p.s. 다음 한자썰은 耐(견딜 내)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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