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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공지마 Mar 11. 2022

[한자썰31] 耐, 인내에 숨긴 속사정

비겁한 변명 하지 마십시오!

耐(견딜 내):  而(말 이을 이) + 寸(마디 촌)


耐(견딜 내)는, 구레나룻 수염을 그린 而(말 이을 이), 오른 손목에 맥이 짚이는 곳에 점을 찍은 寸(마디 촌), 이렇게 두 모양자의 결합이다. 而(이)는 귀에서 턱까지 길게 이어서 난 수염의 상형인데, 그래서 '말을 잇다'라는 뜻이 되었고 그 어기(語氣)를 빌어서 '그러고', '그러나' 같은 접속사로도 쓰인다. 寸(촌)은 손끝에서 손목까지의 길이를 가리키는데, 한 치, 두 치라고 할 때 치의 길이가 바로 寸(촌)이다. 寸이 '길이의 기준'이 되다 보니 '법도'나 '규칙'을 가리키는 용도로 쓰이기도 한다.


"인내(忍耐)는 쓰다, 그러나 그 열매는 달다.", 루소의 말씀이다. "참을 인자 셋이면 살인도 면한다.", 이 건 불상자의 말씀인데, 참으라 참으라 그리고 또 참으라 그러면 능하리니! 그렇게 인내는 예찬을 받아왔다.


그런데, 그렇게 각광을 받아온 인내라는 말 중에 뒷글자인 내(耐) 자는 그 의미라는 게 도대체가 비겁하다. 내(耐)는 원래 형벌의 한 종류인데, 수염을 기르지 못한 채 2년 동안 살게 했다 한다. 요샛말로 하자면 그저 경범죄 처벌 정도였다는 말이다. 주)


그러니, 인내(忍耐)는 ‘뭐 그리 대단하지 않으니 그냥 참아 준다’는 뜻인 거다. 결코 대단한 일이 아니라는 거다. 죄를 지어 요행히 내형(耐刑)에 처해졌다면, 괜히 토 달아서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고, 냉큼 감사합니다 하고 넙죽 받으라는 말이 인내이다. 숨은 뜻을 알고 보니 정말이지 비루하다.


요즘 젊은 친구들에게 '아프니까 청춘이다'라고 말해 주면 싫어 한다. 기성세대인 자기네들이 세상 판을 이 따위로 엉망을 만들어 놓고서, '청춘은 원래 힘든 거야. 그게 지나면 다 보약 된다'라고 하니 그 말이 곧이 곧대로 들리지 않는 거다.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하는 위로는 변명으로 들릴 가능성이 높다. '인내하자!'의 속뜻이 기실은 '별것도 아니니까 너무 엄살 부리지 말고 잘 좀 참으면서 살아 봐!'라는 뜻이니 결코 함부로 쓸 말이 아니다.


그렇다면, 그것 보다 더 심한 형벌들은 어쩌라는 건가! 볼기를 회초리나 곤장으로 치는 태(笞)나 장(杖), 일정기간 중노동으로 고역해야 하는 도(徒), 목을 졸라 죽이는 교(絞), 목이나 허리를 잘라 죽이는 참(斬) 따위에, 인(忍) 자를 붙여 쓰는 경우는 볼 수가 없다. 그런 류들은 참아 내겠다고 함부로 허언 할 일이 도저히 아닌 게다. 아마도, 누군가에게 인참(忍斬)하라 했다가는 바로 뺨 한 대 맞을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그러므로, 인내(忍耐)는 역설적으로 '아무거나 참으면 안 된다!'는 의미인 셈이다. 참을 만한 것만 잘 가려서 참고 그렇지 않은 것은 과감히 피하거나 싸워서 이겨내야 한다는 뜻인 거다. 인내(忍耐) 예찬에 깜빡 속아서 모든 걸 무모하게 참아 내는 미련을 떨지는 마시라!  


사족, 참는다는 것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어떤 일을 하다 보면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에 포기하지 말고, 몇 번의 실패를 좀 겪더라도, 해보고 해보고 해보라는 의미다. 그러다 보면 처음에 안 보이던 새로운 해법이 찾아 지기도 하고, 우연히 운이 맞아떨어지기도 한다. 줄기찬 노력에 감동한 귀인이 불현듯 나타나 결정적인 도움을 주기도 한다.


다른 하나는, 외부로부터 받는 압박과 시련을 참고 참고 참아보라는 것인데, 이건 별로 바람직한 태도가 아닌 것 같다. 참아 봐야 이익이 생길 게 없다. 견딜 내(耐)가 아니고 벨 참(斬)이겠다 싶은 느낌이 들면 더 이상 참지 말고 미련 없이 삼십육계 줄행랑을 놓아도 된다. 창피할 게 무에냐! 그런 만용 따위에 금쪽같은 청춘을 허비할 필요는 없다. 적극적으로 해야 할 것 또는 하고 싶은 것을 해내는 것과, 수동적으로 당하는 것을 견뎌내는 것은 서로 다른 차원이다.


기억을 더듬어 보니 고3 반훈이 인내(忍耐)였다. 인내가 인내(忍内)가 아님을 그때 알았다. 그런데, 고3은 과연 인내할 일인가?! 哈哈。


주) 체면이 중시한 고대인들, 특히 상류층에게 수염을 강제로 깎고 살아야 하는 것이 결코 만만한 형벌은 아니였으리라! 다만, 쉽게 회복이 가능하다는 점에서는 가벼운 형벌임에 틀림이 없다. 어느 고고한 선비가 내(耐) 대신에 내 목을 치라했을 수도 있는데,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하지 말라는 뜻이 인내(忍耐)다.


p.s. 다음 한자썰은 害(해할 해)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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