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공지마 Mar 14. 2022

[한자썰32] 害, 얼토당토않은 해석

풀고, 찾고, 힘을 합치다.

害(해할 해): 宀(집 면)+丯(산란할 개)+口(입 구)


害(해할 해)는 집 안에 이런저런 말들이 많은 상황을 나타낸다. 가운데 글자 모양이 丯(산란할 개)인지, 丰(무성/풍부할 풍)인지 해석이 분명치 않지만, 어는 쪽이든 말이 많다는 뜻으로는 차이가 없다. 전자는 사선을 그어 풀이 어지럽게 난 모습을, 후자는 겹겹이 자란 풀이 가득해진 모습을 나타내니 어기(語氣)가 조금 다르기는 해도 ‘모자람 없이 넘친다’라는 의미로 쓰이기에 별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害(해할 해) 자는 소싯적 어른들이 ‘집구석에 말이 많아서는 못 쓴다’라고 하신 말씀과 일통이다. 주 1, 2, 3)


신라는 992년, 고려는 474년, 조선은 518년, 세 나라 모두 그 유구한 연조(年祚)를 자랑한다. 이들 나라가 있던 비슷한 시기인, 한나라 이후 중국 왕조들 중에는 고작해서 300년을 넘긴 나라도 없다. 전한(前漢, 209년), 당(唐, 289년), 요(遼, 209년), 명(明, 276년), 그리고 청(清, 296년) 정도가 그나마 길다 할 뿐이다. 주 4)


그 이유야 허다히 많겠지만, 필자는 우리가 '말이 많은 민족'인 것도 한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좁고 척박한 땅에 많은 인구가 오밀조밀 모여 살다 보니, 내 것과 남 것을 가르는 것에 첨예하고, 그 가른 후에도 내 것 아닌 남의 것에 신경 쓰기를 게을리하지 않는다. 그러니, 남의 말하기를 즐기고, 남을 이겨내기 위한 논리와 명분에 밝다. 한편으로, 대륙과 해양세력의 빈번한 침략에 맞서 살아남으려니 여차하면 내부적인 화해와 협력도 빠르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파오고, 이웃사촌이라는 신조어(?)를 나올 정도로 이웃들과 사촌 맺기에 능수능란한 데에는 다 그런 연고가 있다.


안으로는 그렇고 밖으로는 막강 외세와의 타협에도 재발라서, 수백 년을 하대(下待)하던 오랑캐를 역발상 사대(事大) 한 적이 역사적으로 비일비재다. 지금 용어로는 이것을 탄력외교라고 할 만 한데, 말이 많은 사람들이 대체로 외교 수완도 좋다. 가끔 잘 난 척을 부리기도 했지만, 그러다 세게 치면 빠지고, 누르면 굽히니 천수를 누릴만 하지 않은가! 일제강점기를 제외하면 이 땅에서는 외침으로 나라가 망한 적이 없다. 모두가 내부 합병이거나 전복이었다.


이 말 많은 민족은, 조선시대에 내도록 왕권과 신권이 긴장관계를 놓지 않았고, 신권은 자기들끼리 파벌을 지어 붕당정치에 몰두했다. 유불선은 민중의 삶과 정신을 골고루 지배했다. 고려시대에는 호족과 왕족이 호혜 간에 견제했고, 문무 간 세력다툼에 치열했으며, 외세를 업은 자와 그렇지 않은 자들이 서로 알력 했다. 신라는 삼한과 삼국의 유민들을 아울러야 했고, 귀족들은 그 혈통을 따라 권력을 나누고 다투었다.


한반도에 거대 문명은 고인돌이 전부다. 고인돌이 많고 거대하기로는 한반도가 세계적으로 으뜸이다. 그런데, 허무하게도 그게 끝이다. 만리장성이나 피라미드, 아즈텍이나 잉카, 콜로세움 같은 거대한 건축물이 이 땅에 서지 못한 것은 우리가 '말이 많은 민족'이라서 그런 거다. 사촌이 사들인 땅 한 뙈기에도 이러쿵저러쿵하는데 그런 게 가당할 리가 없다.


이런 우스개가 있다. "가장 자본주의할 것 같은 중국이 사회주의하고 있고, 가장 사회주의할 것 같은 한국이 자본주의하고 있다." 한국과 중국이 정치와 경제 체계가 실제로 역전되었다는 뜻은 아니다. 한국 정치가 더 사회주의적이라던가, 중국 경제가 더 자본주의적이라는 의미가 아니라는 거다.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렇다는 것이다. 중국 사람들은 자기 주머니에 돈을 세지만, 우리는 남의 주머니 속을 더 궁금해한다.


害(해할 해) 이야기를 하다가 삼천포로 빠져버렸다. 害가 '해한다'라는 부정적인 의미를 갖게 된 것은 봉건적인 가부장의 관점에서 현상을 이해한 때문이다. 아무리 집안일일지라도 할 말은 하는 것을 권장하고, 서로 논리와 실질을 살피고 궁리해서, 보다 좋은 결정을 이르도록 해야 한다는 뜻으로 害에 대해 얼토당토않은 현대적 해석을 붙여 본다. 현대적으로 보면 害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본모습을 설명해 주는 지혜가 담긴 글자다. 새로운 害는 '해할 해'가 아니라 '풀 해', '찾을 해', '힘 합칠 해'로 하면 좋지 않을까 한다.


사족, 아편전쟁 이야기! 영국 의회에서 아편전쟁 수행을 위한 예산안을 의결한 결과는, 271대 262로 고작 9표 차이였다. 중국이 아편의 폐해로부터 자국민을 보호하기 위해서 영국 상인과 거류민들에게 가한 부당한 제재에 대응해서 무력 동원을 한 것이 아편전쟁이다. '자국민 보호를 위한 주권국가인 중국의 정당한 해위에 대한 의롭지 못한 조치'와 '국가 간 조약을 일방적으로 위반한 불법행위에 대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양 의견의 대립은 팽팽했지만 결국 전쟁을 결정한다. 그러나 사실은, 아편전쟁을 일으키기 위해 내세운 빌미는 겉포장이였을 뿐이고, 아편무역을 보호하지 못하면 이후의 모든 교역에서 영국의 이익이 줄어 들 수 있다는 가능성이 커진다는 것이 진짜 속내였다.


영국은 전쟁에서 승리했고 그 배상으로 홍콩을 99년간 조차지로 빼앗아 지배한다. 그 외에도 많은 이권들을 챙긴다. 전쟁이 끝나자 중국의 아편 수입은 그전보다 더 폭증했고 숱한 중국 민중들이 더욱더 아편에 중독되어 병들고 죽어 갔다. 아편전쟁은 도덕적으로 가장 추악한 전쟁 중에 하나였다. “그러나 아무리 이득이 크더라도 그로 인해 우리 국왕 폐하와 대영제국이 입을 명예, 위신, 존엄성의 손실은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반대파 연설의 한 대목이다. 이 전쟁을 대영제국의 치욕으로 기억하는 영국인들이 적지 않다. 害(해할 해)라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다.


또 사족, 민주주의는 공동체가 공존하고 상생하기 위한 정치 시스템이다. 사람들의 의견은 항상 상이하고 대립이 불가피하니, 싸우다 공멸하지 않기 위해서 투표를 통해 공동체의 의견을 하나로 정하게 된다. 일단, 의견이 정해지면 반대의견을 가진 사람들은 따르는 것이 원칙이다. 다만, 결정된 의견이 과도하게 잘못된 방향으로 나갈 수가 있으니, 이를 지켜보는 발달한 자유언론과 토의를 위한 대의기관, 양식 있는 위정자 그리고 이것들을 원활히 움직이게 하는 잘 짜인 시스템을 통해서, 지속적으로 조정을 해 나가야 한다.


선거에 이겼다고 해서 반대 의견자에게 멸시와 조롱을 던지고 심지어 멸절시켜야 한다는 일부 무지몽매한 분자들이 있. 선거 결과로 자기들이 옳은 것이 판명 났으니 상대 편은 쓰레기이고 제거해 버려야 한다엄혹한 말들이 댓글과 SNS 난무한다. 이런 행동이 바로 (해할 )이다. <킹스맨 : 시크릿 에이전트>에서 악당 발렌타인이 멀지 않아 멸망할 인류를 구한다는 선한(?) 목적을 내세워 저지르려 했던 잔학 무도한 악행과 다를 바가 없다. 민주주의는 공동체 전체를 위한 것임을 망각한 자는 민주주의자가 아니다.   역시 조롱이 되니 필자도 역시 내로남불이다!


주) 1. 대문사진은 영국 의회의 토론 장면이다.

2. ‘해하다’라는 훈으로 볼 때, 丯(산란할 개)가 더 어울린다. 무질서하게 자라 갈 길을 가로막는 풀이라는 부정적인 의미가 丯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로 쓰는 데는 둘 간에 구분이 없다.

3. 갑골자(1)와 금문(2,3)에서는 하단부(표 B)가 口(입 구) 보다는 言(말씀 언)에 더 가깝다. 이 두 글자도 害자에서 쓰이는 의미로 봐서는 무차별하다.

4. 전한과 후한을 합하면 404년이나 중간에 왕망의 신(新)나라로 단절이 있었고, 상(商)나라 456년에 달하지만 상고시대라서 정비된 정치체계로 보기가 어렵고 기록의 신빙성도 낮다.


p.s. 다음 한자썰은 教(가르칠 교)입니다. #@!

매거진의 이전글 [한자썰31] 耐, 인내에 숨긴 속사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