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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공지마 Feb 27. 2022

[한자썰22] 配, 술이 맺어준 짝쟁이

 부부, 술 익듯 살다.

配(나눌/짝 배): 酉(닭/술 유) + 己(몸 기)


配(나눌/짝 배), 갑골자를 보면 발효 증기가 퍼져 올라오는 술항아리(酉, 점 세 개) 옆에서 무릎을 굽혀 가며 신중하게 항아리 안을 들여다보는 사람(人)이 그려져 있다.(1) 술이 익는 과정을 술독 가까이서 세심하게 지켜보는 순간이다. 술은 익는 때를 자칫 놓치면 신 초가 되어버려 낭패가 난다. 주 1)


(출처) 百度百科, www.baidu.com

그러니, 술독마다 담근 일자별로 나란히 줄을 세워서 날짜의 지남을 꼼꼼히 챙겨야 하고, 술 익기가 기온과 습도에 민감하니 일일이 향과 맛을 봐가면서 술 꺼낼 기일을 조정해야 한다. 차례에 따라 잘 나누어 적절히 배열하고, 시와 절에 따라 세심히 살피는 그런 일련의 모든 과정이 配(나눌/짝 배)이다.


배분(配分), 배열(配列), 배치(配置), 지배(支配), 배달(配逹), 배려(配慮), 배필(配匹), 배합(配合), 유배(流配)... 따위의 그 숱한 단어들이 요하는 것들이 정확, 정밀 그리고 세심일진데, 정작 그 말의 태생이 술독 안에 있었다 하니 참말 우습기도 하다.


人(사람 인) 자가 己(몸 기) 자로 전국시대와 소전을 거치면서 에 바뀐 것은 모양의 와전으로 보인다. 쓰다 보니 그렇게 된다는 것인데, 특별한 이유가 없고, 己(몸 기)라 해서 의미가 보충될 것도 없으니 맞을 것 같다.

술독 안에 줄이 두 개에서 하나로 줄어든 것이 조금 아쉽기는 하다. 막걸리를 흔들어 섞기 전에 미세한 쌀알 가루들이 가라앉으면, 술병 속에 빈 공간, 술 그리고 쌀알 가루로 경계가 생기는데, 이게 딱 선명한 두 줄이다. 줄 하나 더 긋기가 어려울 것도 없었을 텐데, 왜 없앴는지는 알 수가 없다.


혼자 상상이지만, 술에 대한 관념이 생산에서 소비로 넘어간 이유이겠다 싶다. 숙성을  마쳐서 술상 위에 올려진 술이 발효로 끓어오를 리가 없다. 상류층이 즐기는, 찌끼를  걸러낸 맑은 (清酒)  하나를  만들지도 못한다.  글자  자의 변천에도 경제와 계급의 흔적이 남아 있다. 뜬금없기는 하지만, 언뜻 자본주의 경제의 요체가, 생산에서 소비로, 비용에서 가격으로, 변화한 것과 제법 비슷해 보인다.


걸맞은 재료를 고르고, 잘 섞어서 나누어 차례를 짓고, 그 순서에 따라 익는 과정을 세심히 살펴야 하는, 술 빚는 일이 평생을 같이 하는 짝쟁이와 많이 닮았다. 처음에 잘 골라야 하고, 일단 골랐으면 살아가는 동안 잘 살펴야 한다. 그래서, 配의 새김말이 '나누다'에 더해서 '짝', '짝짓다', '걸맞다'가 추가된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평생 짝쟁이를 배자(配者)라고는 하지 않고 배우자(配偶者)라 쓴다. 偶(짝 우)는 허수아비 즉 사람과 닮음꼴이라는 뜻인데, 부부가 오래 함께 살다 보면 말과 행동뿐만이 아니라 심지어는 생김새까지도 닮아 간다. 그러니, 偶는 配가 오래되면 얻어지는 그 결과다. 이 둘을 합해 놓으니, 부부가 어떤 사이여야 하는지, 그리고 그렇게 살다 보면 어떻게 되어가는지를 깨닫게 해 주는 말, 배우자(配偶者)가 만들어진다.


사족, 그리고 보니 배우자(配偶者)가 '배우자!'다. 아내와 남편의 삶에서 배우고, 함께 살아가면서 내가 변화 해가는 과정에서 또 배우고..., 그래서 '배우자!'인가 싶기도 하다. 嘿嘿。


주) 1. 술독 옆에 사람이 여자라는 해석도 있으나 굳이 그럴 필요 없어 보인다. 짝에 어디 성이 있던가!

2.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偶(짝/허수아비 우) 자를 나무나 흙으로 빚은 조각상이라 풀이하고 있다. 이것이 어떻게 배필을 뜻하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네이버 한자사전)


p.s. 다음 한자썰은 酬(갚을 수)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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