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술 익듯 살다.
配(나눌/짝 배): 酉(닭/술 유) + 己(몸 기)
配(나눌/짝 배), 갑골자를 보면 발효 증기가 퍼져 올라오는 술항아리(酉, 점 세 개) 옆에서 무릎을 굽혀 가며 신중하게 항아리 안을 들여다보는 사람(人)이 그려져 있다.(1) 술이 익는 과정을 술독 가까이서 세심하게 지켜보는 순간이다. 술은 익는 때를 자칫 놓치면 신 초가 되어버려 낭패가 난다. 주 1)
그러니, 술독마다 담근 일자별로 나란히 줄을 세워서 날짜의 지남을 꼼꼼히 챙겨야 하고, 술 익기가 기온과 습도에 민감하니 일일이 향과 맛을 봐가면서 술 꺼낼 기일을 조정해야 한다. 차례에 따라 잘 나누어 적절히 배열하고, 시와 절에 따라 세심히 살피는 그런 일련의 모든 과정이 配(나눌/짝 배)이다.
배분(配分), 배열(配列), 배치(配置), 지배(支配), 배달(配逹), 배려(配慮), 배필(配匹), 배합(配合), 유배(流配)... 따위의 그 숱한 단어들이 요하는 것들이 정확, 정밀 그리고 세심일진데, 정작 그 말의 태생이 술독 안에 있었다 하니 참말 우습기도 하다.
人(사람 인) 자가 己(몸 기) 자로 전국시대와 소전을 거치면서 에 바뀐 것은 모양의 와전으로 보인다. 쓰다 보니 그렇게 된다는 것인데, 특별한 이유가 없고, 己(몸 기)라 해서 의미가 보충될 것도 없으니 맞을 것 같다.
술독 안에 줄이 두 개에서 하나로 줄어든 것이 조금 아쉽기는 하다. 막걸리를 흔들어 섞기 전에 미세한 쌀알 가루들이 가라앉으면, 술병 속에 빈 공간, 술 그리고 쌀알 가루로 경계가 생기는데, 이게 딱 선명한 두 줄이다. 줄 하나 더 긋기가 어려울 것도 없었을 텐데, 왜 없앴는지는 알 수가 없다.
혼자 상상이지만, 술에 대한 관념이 생산에서 소비로 넘어간 이유이겠다 싶다. 숙성을 다 마쳐서 술상 위에 올려진 술이 발효로 끓어오를 리가 없다. 상류층이 즐기는, 찌끼를 잘 걸러낸 맑은 술(清酒)은 줄 하나를 더 만들지도 못한다. 술 글자 한 자의 변천에도 경제와 계급의 흔적이 남아 있다. 뜬금없기는 하지만, 언뜻 자본주의 경제의 요체가, 생산에서 소비로, 비용에서 가격으로, 변화한 것과 제법 비슷해 보인다.
걸맞은 재료를 고르고, 잘 섞어서 나누어 차례를 짓고, 그 순서에 따라 익는 과정을 세심히 살펴야 하는, 술 빚는 일이 평생을 같이 하는 짝쟁이와 많이 닮았다. 처음에 잘 골라야 하고, 일단 골랐으면 살아가는 동안 잘 살펴야 한다. 그래서, 配의 새김말이 '나누다'에 더해서 '짝', '짝짓다', '걸맞다'가 추가된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 평생 짝쟁이를 배자(配者)라고는 하지 않고 배우자(配偶者)라 쓴다. 偶(짝 우)는 허수아비 즉 사람과 닮음꼴이라는 뜻인데, 부부가 오래 함께 살다 보면 말과 행동뿐만이 아니라 심지어는 생김새까지도 닮아 간다. 그러니, 偶는 配가 오래되면 얻어지는 그 결과다. 이 둘을 합해 놓으니, 부부가 어떤 사이여야 하는지, 그리고 그렇게 살다 보면 어떻게 되어가는지를 깨닫게 해 주는 말, 배우자(配偶者)가 만들어진다.
사족, 그리고 보니 배우자(配偶者)가 '배우자!'다. 아내와 남편의 삶에서 배우고, 함께 살아가면서 내가 변화 해가는 과정에서 또 배우고..., 그래서 '배우자!'인가 싶기도 하다. 嘿嘿。
주) 1. 술독 옆에 사람이 여자라는 해석도 있으나 굳이 그럴 필요 없어 보인다. 짝에 어디 성이 있던가!
2. 설문해자(說文解字)에서는 偶(짝/허수아비 우) 자를 나무나 흙으로 빚은 조각상이라 풀이하고 있다. 이것이 어떻게 배필을 뜻하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네이버 한자사전)
p.s. 다음 한자썰은 酬(갚을 수)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