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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공지마 Feb 26. 2022

[한자썰21] 醵, 술값은 갹주로...

그리고, 진짜 술꾼의 미덕

醵(추렴할 갹/거): 酉(술/닭 유) + 豦(큰돼지 거)

豦(

醵(추렴할 갹/거), 돈을 형편대로 나누어 내서 술을 함께 사 마신다는 글자이다. 요새야 흔한 게 술이지만, 옛날에는 술이 일종의 사치품이었다. 술을 만드는 데에는 많은 곡식이나 과일이 들어가고, 마실 물 구하기도 어려운 시절인데 쓰이는 물도 그 양이 만만치가 않으니 그랬다. 한편으로, 豦(큰돼지 저)는 호랑이만큼 커다란 돼지(虍(호피무늬 호) + 豕(돼지 시)를 가리킨다. 주)


주당들이 오랜만에 크고 기름진 돼지 한 마리 잡아서 귀한 술을 한 번 진탕 하게 마시려 하는데, 그 돈을 감당해 내기가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렇다고, 벌어진 술판을 마다할 꾼들이 아니다. 그러니, 추렴(出斂)할 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 醵(추렴할 갹/거) 자는 그런 연유로 생겼다.


요즘은 더치페이가 많이 일반화되어 있지만, 지금도 술값을 갹출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술값 서로 낸다고 카운터 앞에서 실랑이 한두 번 안 해 본 사람이 없을 것이다. 상사라서, 선배라서, 합격해서, 취직해서, 결혼해서, 아이가 생겨서, 승진해서, 회사 잘려서, 아버님 잘 보내 드려서, 이런저런 이유 없으면 그냥 기분이 좋아서…! 술 마실 이유만큼이나 술값 치를 이유도 허다하다.


그러니, 醵의 태생지가 술판이라니 참으로 기이하다.    생각해보면 그렇게 돌고 다 보면 누구나  내게 되니 그게 醵이 아니겠나 싶기는 하다. 길게 보면 술판이나 인생이나 醵이다.  가지 제안, 앞으로 술값을 나눠낼 때는 더치페이라 하지 말고 갹주(醵酒) 불러 봄이 어떨지?!


무언가 공동의 목적을 위해서 서로 비용을 분담하는 일에는 눈치꾼들이 꼭 끼게 마련이다. 주머니 형편이라는 게 각자가 다르고 목적에 동의하는 정도도 마음 따라 같지가 않으니 어찌 보면 자연스럽기도 하다. 사실, 한두 사람 빠져도 표가 잘 나지를 않는다. 그러니, 슬쩍 빠지는 못된 무임승차가 늘 생긴다.


그렇다고 한들, 구두끈 슬쩍 풀어 두는 이들을 한 두 번은 애교로 봐 주시라! 그래야 진짜 술꾼이고 그게 술꾼의 미덕이다.


주) 豦이 원숭이라거나 멧돼지라 하는 설도 있다.


p.s. 다음 썰은 配(나눌/짝 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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