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진짜 술꾼의 미덕
斂
醵(추렴할 갹/거): 酉(술/닭 유) + 豦(큰돼지 거)
豦(
醵(추렴할 갹/거), 돈을 형편대로 나누어 내서 술을 함께 사 마신다는 글자이다. 요새야 흔한 게 술이지만, 옛날에는 술이 일종의 사치품이었다. 술을 만드는 데에는 많은 곡식이나 과일이 들어가고, 마실 물 구하기도 어려운 시절인데 쓰이는 물도 그 양이 만만치가 않으니 그랬다. 한편으로, 豦(큰돼지 저)는 호랑이만큼 커다란 돼지(虍(호피무늬 호) + 豕(돼지 시)를 가리킨다. 주)
주당들이 오랜만에 크고 기름진 돼지 한 마리 잡아서 귀한 술을 한 번 진탕 하게 마시려 하는데, 그 돈을 감당해 내기가 호락호락하지 않다. 그렇다고, 벌어진 술판을 마다할 꾼들이 아니다. 그러니, 추렴(出斂)할 밖에 달리 도리가 없다. 醵(추렴할 갹/거) 자는 그런 연유로 생겼다.
요즘은 더치페이가 많이 일반화되어 있지만, 지금도 술값을 갹출하는 경우가 별로 없다. 술값 서로 낸다고 카운터 앞에서 실랑이 한두 번 안 해 본 사람이 없을 것이다. 상사라서, 선배라서, 합격해서, 취직해서, 결혼해서, 아이가 생겨서, 승진해서, 회사 잘려서, 아버님 잘 보내 드려서, 이런저런 이유 없으면 그냥 기분이 좋아서…! 술 마실 이유만큼이나 술값 치를 이유도 허다하다.
그러니, 醵의 태생지가 술판이라니 참으로 기이하다. 한 번 더 생각해보면 그렇게 돌고 돌다 보면 누구나 다 내게 되니 그게 醵이 아니겠나 싶기는 하다. 길게 보면 술판이나 인생이나 醵이다. 한 가지 제안, 앞으로 술값을 나눠낼 때는 더치페이라 하지 말고 갹주(醵酒)라 불러 봄이 어떨지?!
무언가 공동의 목적을 위해서 서로 비용을 분담하는 일에는 눈치꾼들이 꼭 끼게 마련이다. 주머니 형편이라는 게 각자가 다르고 목적에 동의하는 정도도 마음 따라 같지가 않으니 어찌 보면 자연스럽기도 하다. 사실, 한두 사람 빠져도 표가 잘 나지를 않는다. 그러니, 슬쩍 빠지는 못된 무임승차가 늘 생긴다.
그렇다고 한들, 구두끈 슬쩍 풀어 두는 이들을 한 두 번은 애교로 봐 주시라! 그래야 진짜 술꾼이고 그게 술꾼의 미덕이다.
주) 豦이 원숭이라거나 멧돼지라 하는 설도 있다.
p.s. 다음 썰은 配(나눌/짝 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