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공지마 Mar 18. 2022

[한자썰35] 藝, Starry starry night

사실주의에서 추상주의까지…

藝(재주 예) : 艸(풀 초)+坴(언덕 륙)+丸(둥글 환)+云(구름 운)


藝(재주 예)는 갑골자에서 보면 나무 심는 사람(1,2,3)이다. 묘목을 손에 든 채 무릎을 꿇고 우러르기까지 하는 모양이, 마치 무슨 기도라도 하는 듯 나무 심기에 정성을 쏟는다. 그 갑골자가 서체 변화에 따라서 埶(1~8)로 변하고, 거기에 풀(艹)과 구름(云)이 더해져 藝(9, 10)가 된다. 두 글자는 새김이나 발음이 ‘재주 예’, ‘심을 예’로 똑같아 서로 동자(同字)간인데, 埶 자는 도태되어 지금은 쓰이지 않는다.藝 자의 뛰어난 예술성 때문이다.


고대에 나무를 심고 가꾸는 기술, 즉 종수(種樹)는 지금보다 훨씬 더 전문적인 일이다. 작물도 아닌 나무를 일부러 심고 키울 리가 없으니 그 기술에 관심을 두거나 지식을 쌓을 사람이 드물고, 참고할 자료가 있을리 만무하다. 나무는 산이나 들에서 그저 자연 상태로 저절로 생육번성할 뿐이고, 사람들은 목재나 땔감으로 베어서 쓰면 그만이다.


그런 나무를 궁궐이나 저택 뜰 안으로 억지로 들여서 심고 키우려 하니,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허구많은 재주들 중에 굳이 그 특별한 재주를 구별해 예(埶)라 별도로 칭하는 이유다.


금문에서부터는 土(흙 토)가 더해지면서, 藝는 ‘나무 가꾸기’에서 ‘정원 가꾸기’로 그 의미가 확장된다.(4, 5) 더 나아가 소전에 이르면, 나무가 잎을 열고 가지가 뻗고 땅 속으로 뿌리(圥)를 내린다. 손을 보다 세밀하게 묘사한 것은 원예기술의 발달을 나타낸 듯하다.(5, 6, 7) 주 1)


드디어, 예서(隸書)에 이르면, 정원은 구름(云)이 내려앉을 정도로 주변 풍광과 조화를 이루게 되고(9), 온갖 아름다운 꽃들과 싱그러운 풀(艹)들이 자라나니(10), 그제서야 마침내 비로소 완전체 예(藝)가 그 모양을 갖춘다.

이때부터 예(藝)는, 정원 가꾸기에 더 이상 머물지 않고, 아름다움과 완전함을 추구하는 모든 창작활동을 대표하는 글자가 된다. 음악, 미술, 문학, 서예, 연극, 무용, 영화…! 그 분야와 종류, 그리고 거기에서 생겨난 숱한 변형까지 무궁무진하다.


예(藝)의 간체자는 예(艺)다. 원 글자의 이력과 기풍, 그리고 품격과 미학을 깡그리 망쳐 버렸지만, 널리 일상에서 편하게 쓰기에 예(藝)는 너무 복잡하고 번거로워 이해는 한다. 그러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단 일 획짜리 乙(새 을)이라니…! 그러나, 그렇게 간단하게 볼 일이 아니다. 乙는 수평선과 사선, 직선과 곡선 그리고 삐침, 균형과 불균형에 이르기까지 한자의 많은 구성요소를 단 한 획이 다 가지고 있다. 藝자의 예술성을 적절히 추상화했다 싶다. 이런 걸 모더니즘이라 하는가 보다. 그저 발음이 같아서 휙 빌려 쓴 건 아닌 것 같다. 주 2)


사족, 藝의 자형 변천에서 살피다 보니 필자의 눈에는 서양미술의 사조 변천이 번뜩 읽힌다. 물론, 뇌피셜이니 너무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갑골자 1, 2, 3 : 사실주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묘사 또는 재현. 밀레의 <이삭 줍기>와 <만종>

금문과 소전 4~6, 11, 12 : 낭만주의, 꿈이나 공상 세계를 동경하고 감상적인 정서를 중시. 들라쿠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

예서 7, 8 : 인상주의, 고유한 색이나 형태를 부정하고 순간의 색채와 주관적 인식을 포착. 르누아르의 <전원의 무도회>,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에>

고문 13, 14 : 야수주의, 강렬한 원색의 물감 덩어리와 거친 선이 난무하는 충격적인 회화. 마티스의 <모자 쓴 여인>

예서 9, 10, 해서: 표현주의, 객관적인 사실보다 사물이나 사건에 의해 야기되는 주관적인 감정과 반응 표현에 중점. 뭉크의 <절규> 주 3)

간체 : 추상미술, 물체의 선이나 면을 추상적으로 승화시키거나 색채의 어울림을 추구한 조형적인 작품, 칸딘스키의 <인상>, <즉흥>, <몇 개의 원들>


문화 사조의 흐름이 이렇게 동서양 간에 일정 정도 동조(synchro)하는 것은 서로 간에 교류 때문일까, 아니면 각자가 원래 그렇게 흘러가게 되어 있는 것일까?


우리가 청춘에 좋아했던 돈 맥클린의 <빈센트>가 봄비가 되어 함께 흐른다. Starry starry night!


주) 1.圥(록)은 버섯 또는 두꺼비를 뜻하는 글자이지만, 그것들과는 상관이 없이 藝에서는 잎과 가지 그리고 뿌리가 나 있는 그 모양만을 빌어 쓴다.

2. 을(乙)의 중국 발음은 이(Yi)인데, 藝와 중국 발음, 이(Yi)와 동일해서 간체에 빌어 쓴 게다.

3. 설마 구름이 뜰에 내려왔겠는가! 정원에 심긴 나무 사이로 하늘을 봤을 것이다. 땅에 누워서 보니 아름다운 꽃들과 풀들이 햇빛에 반짝였을 것이다. 실제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고 싶은 것들이 藝에 들어 있으니, 그래서 표현주의라 할 만하다.


p.s. 다음 한자썰은 好(좋을 호)입니다. #@!

매거진의 이전글 [한자썰34] 改, 내 손에 잡은 몽둥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