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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공지마 Mar 23. 2022

[한자썰39] 堂, 빛과 기운이 나들다.

집에 어울리는 자격을 좀 갖추시라!

堂(집 당): 尚(오히려 상) + 土(흙 토)


堂(집 당)은 탄탄하게 다져진 토대(土) 위에 멋스럽게 잘 지어진 집(尚)을 가리킨다. 尚(오히려 상)은 다양하게 해석되는데, 대체로 창호(窗户)와 관련이 있다. 하부의 向의 갑골문이 창호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한편, 상부의 거꾸로 된 八는 그 창을 통해서 퍼져 나오는 기운 또는 비쳐 들어오는 햇빛을 의미한다. 합하여 尚(오히려 상)은 훤한 창을 밖으로 낸 방이 된다. 그 방을 잘 다진 토대에 올린 집이 堂(집 당)이다.


堂(집 당)은 개방되어 있고 남들에게 자랑할 만한 곳이니, 찾아온 손님을 대접하고 식객들이 드나들고 묵는다. 주인이 머무는 안채를 지칭하는 室(집 실)이 폐쇄적이고 은밀한 것과 대비가 된다. 밀실(密室)이라 하지, 왜 밀당(密堂)이라 하지 않는지 이해가 된다. 우리가 흔히 쓰는 사랑채(舍廊채)는 바로 이 堂을 가리킨다. 사랑채에 모여서 역모를 모의하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은 틀림없이 바보다.


이 사람 저 사람이 모이고 드나드는 堂(집 당)은 이제 더 이상 기거를 목적으로 하는 집에 머물 수가 없다. 더군다나 尚(오히려 상) 자가 上(위 상)와 혼용하게 되어, '높다', '숭고하다'는 의미까지 가지고 있다. 이로써, 堂(집 당)은 단순한 주거를 넘어선 고차원의 공간과 상징 개념으로 승화되어 간다.


묘당(廟堂)은 조선시대 최고 정치기구로 고위공무원들 모여 정책을 의논하던 곳이다. 강당(講堂)은 여러 사람이 모여서 공동 활동을 하도록 만들어진 넓은 방이다. 전당(殿堂)은 높고 크고 화려한 건물인데, 예술, 학문, 과학이 펼쳐지는 장소에 상징적으로 쓰이기도 한다. 서당(書堂)은 학생들이 글공부를 하는 곳이다. 사당(祠堂)은 신주를 모신 곳으로 귀신들이 심심하면 들르는 곳이다. 천당(天堂)은 선한 영혼들이 자기들끼리 모여서 영생하는 곳이다.


성당(聖堂), 법당(法堂), 경로당(敬老堂), 납골당(納骨堂), 국회의사당(國會議事堂)... 등등 허다하다. 공통점은 여러 사람이 모이고, 따라서 개방되어 있고, 대체로 면적이 넓고 천장이 높으며 밝고 쾌적하다. 말들이 많아 시끄럽기도 한데, 국회(國會)가 그중에 대표 격이고 귀신이 말이 많은 사당(祠堂)이나 납골당(納骨堂)은 제외다.

사람을 가리키기도 한다. 소시 적에 "잔네 자당께서는 평안하신가?"라는 동네 어른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다. 그 당이 堂(집 당)인데 남의 어머니를 높여 부를 때 쓴다. 그 말에 자(慈(사랑 자))까지 더했으니 얼마나 고결하고 존중스러운 말인가! 어머니란 그런 분이다. 물론, 요새 이런 말 했다가는 '라떼 x 10'이라 눈총을 받을 테니 혹여라도 시도조차 하지 마시기 바란다.


신사임당(申師任堂)에도 堂이 붙는다. 사임당(師任堂)은 당호(堂號)인데, 이렇게 훌륭하신 분을 기리기 위해서 높여 부를 때에도 당(堂)을 즐겨 쓴다. 堂에 깃든 '넓은 터'와, '높다', '숭고하다'라는 의미 때문이다. 그러니, 대한민국 화폐 최고액 권면에 그 초상이 올라간 거다. 주 1, 2)


놀랍게도 귀신을 섬기고 주술과 점으로 길흉을 알리고 다스리는 신들린 여성을 가리키는 무당(巫堂)에도 이 堂이 쓰인다. 고대에는 무당이 지금으로 치면 신부나 목사의 역할을 했을 테니라고 생각해 보면 뭐 그리 이상할 것은 없다. 그러나, 요즘은 무당이라고 하지 않고 무속인이라는 말을 더 자주 듣는다. 무당이 낮춤말이 라서가 아니라, 堂자가 어울리지 않는다 생각했나 보다. 글자도 역사도 지금의 눈으로 해석하면 앞뒤가 안 맞는 이상한 것들이 많다.


사족, 堂이라는 공간이 왜 시끄러운 곳이 되었을까 생각해 본다. 이리저리 찾아보니 向(향할 향) 자에 답이 있다.


向(향할 향)은 북쪽으로 나 있는 창문을 그린 것인데 옛날 집에 창문은 대부분 북쪽으로 나있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向(향할 향)이 방향이라는 뜻으로 쓰인다. 그런데, 예서(隸書) 초기에 이 向자를 宀(집 면)과 口(입 구)가 결합한 글자(A)로 나타낸 적이 있다. 서체의 미관에 맞지 않아 (7) 모양으로 곧 바뀌지만, 바로 이 글자에 실마리가 있다. 이 글자는 입을 크게 벌려 내뱉는 말소리가 집안에 메아리치는 장면을 나타낸다. 堂이 바로 그런 장면이 벌어지는 공간이다. 주 3)


그래서인지, 여의도 의사당(議事堂) 말싸움으로 시끄럽지 않은 날이 없다. 진저리가  정도다.  堂에 있는  양쪽  삐침 획이, 안으로는 민의를 넓고 바르게 반영하고, 밖으로는 올바른 정치 기운과 좋은 정책을 발산하겠다는 국민과의 약속임을 위정자들께서  새기기를 간절하게 본다. 마침, 글대문에 걸어둔 사진에 의사당 지붕 모양이 절묘하게  닮았다. 허니, 거기 계신 분들,  堂이라는 크고 멋진 집에 어울리는 자격들을  갖추시라!


주) 1. 잔네 : 자네의 경상도 사투리

2. 당호(堂號): 훌륭한 사람을 기리기 위한 별칭

3. 문을 남쪽으로 내니 창은 북쪽으로 내는 경우가 많다. 북쪽으로 낸 창은 보통 크지 않다. 통풍이나 감시를 위한 목적이 아니었을까 싶다. 일종의 사각지대 CCTV다.

 

p.s. 다음 한자썰은 아직 정하지 못했습니다. 혹, 추천 주시면 준명(遵命)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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