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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공지마 Mar 22. 2022

[한자썰38] 家, 반려저라 해야 한다.

돼지, 가족의 탄생

家(집 가): 宀(집 면) + 豕(돼지 시) 주 1)


家(집 가)는 집(宀)에서 돼지(豕)를 키운다는 뜻이다. 글자의 결구가 갑골자 이후로 하나도 바뀌지 않은 채로 지금에까지 이른다. 변화할 필요가 없는 완전한 글자라는 뜻이다. 고대에 돼지는 가장 중요한 재산 중 하나다. 그러니 밖에 내어 두었다가는 도난당할 게 뻔하다. 할 수 없이 사람들은 집안에 자신들이 기거하는 공간보다 낮게 바닥을 파서 우리를 만들고 그 안에 돼지를 가두어 길렀다. 집을 비울 때는 순번을 두어 돼지를 지켜야 하고, 여물 주기에 온 가족이 신경을 쓰게 된다.


돼지가 가족들 관심의 중심을 차지하게 된 것이다. 반려견이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사랑받는 것과 동일하다. 게다가 돼지는 개보다 더 영리하고, 청결한 환경을 좋아한다. 사랑받지 못할 이유가 없다. 고대에 가족은 한 집에 동거함과 함께 키우는 돼지를 통해서 일체감을 강화한다. 돼지가 가족의 탄생을 도운 셈이다. 그것을 기리기 위해서 집을 家(집 가)라 한 것은 아닐까! 주 2)


家(집 가) 말고도 집을 가리키는 한자가 꽤나 많다. 의식주는 인간생활의 최소한의 기본 요소다. 생활을 문화로 바꾸기 달인인 인간들이 집인들 가만히 두었을 리 만무하다. 우선 宀(집 면) 자를 부수로 가진 글자들부터 살펴보자.


宇(집 우)는 于(어조사 우)의 모양을 빌어 원래는 집에 얹힌 지붕과 처마를 가리켰다가 차차로 집이 되었다. 지붕이나 처마가 그 생긴 게 널찍하니, '크다', '넓히다'라는 의미가 파생한다. 宙(집 주)도 由(말미암을 요)의 모양을 빌어 기둥과 들보(동량(棟梁)) 그리고 마룻대, 즉 집의 뼈대를 가리켰었다. 집을 떠 받치고 있으니, '천지 사이', '하늘'이라는 의미가 파생한다. 이 宙(집 주)는 다른 집 宇와 어울려 宇宙(우주)라는 말을 만든다.


宇宙(우주)는 그러니 종과 횡으로 넓게 펼쳐진 공간이라는 뜻이 된다. 어마어마하게 크고 넓은 집이라! 그 광활한 우주가 그저 집일 뿐이다라고 생각하니 왠지 그 우주가 가까워진 느낌이다. 그 집 안에 살고 있는, 인간, 개, 돼지, 딱정벌레, 뱀, 개구리, 고등어, 그리고 나무와 풀, 꽃들까지 그 모든 것들이 사실은 하나의 가족일 수가 있다. 아니다. 우족(宇族)이나 주족(宙族)이라 불러야 맞을까 싶다. 실제로 지구 상의 모든 생명체를 구성하는 물질들은 혜성에 실려 별에서 날아온 것들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모든 살아 있는 생명들은 “별에서 온 그대”들이다.

 

宅(집 택, 댁 댁, 터질 탁)은 乇(풀잎 탁)의 모양을 빌어 그 풀들이 자라나는 '터전'이라는 뜻을 갖는다. 宅은 건물이나 공간으로서의 집이라기보다는 그 건물이나 공간이 들어서서 자리를 잡을 수 있는 평면적인 터 또는 기반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주택(住宅)이나 택지(宅地), 묘택(墓宅)이라 할 때, 宅(택)이 그런 의미다.


옛날 시골에서는 동네 사람들끼리 할머니나 아주머니들을 영동댁, 충주댁, 안동댁이라 불렀다. 그 '댁'이라고 발음한 글자가 바로 宅이다. 한 집을 지키는 터전 역할을 하는 안주인을 높여서 부른 말인데, 필자의 할머니이신 '영동댁'은 멀리 강릉에서 경상도 산골로 시집을 오신, 동네 끝 개울 초입 징검다리 건너에 있는, 마당에 잘생긴 감나무 심긴 초가집 안주인(터전)이라는 뜻이 된다.


室(집 실)은 至(이를 지) 자에 있는 ‘화살이 날아가 닿는 곳’이라는 뜻을 빌어서 집안 가장 안 쪽에 있어 집주인이 휴식을 취하는 안락한 공간이다. 전통적인 중국의 가택 구조를 사합원(四合院)이라고 부르는데, 장방형으로 담을 쳐서 내부를 들여다볼 수 없게 만들고, 그 안에 내실과 외실로 방과 마루를 용도에 따라 나누어 내고서 가운데 빈 공간에 정원을 배치하는 전형적인 전통주택 방식이다. 그 구조에서 가장 안쪽에 깊숙이 있는 방이 室이다. 지금도 집 실이라 새기기는 하지마는 室은 주로 방(Room)의 의미로만 쓰인다.


宮(집 궁)는 呂(등뼈 려) 자를 빌어서 앞에서 설명한 장방형의 사합원(四合院)이 여러 개라는 것을 표현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기거할 수 있는 큰 집을 나타낸다. 처음에는 이나저나 세력가들이 지은 큰 집들을 宮(집 궁)이라 했겠지만, 왕권 통치가 확립이 되면서 왕이 사는 훨씬 큰 집 만을 宮(집 궁)이라 칭하게 되었을 것이다.


아직도 '집'이 많이 남았다. 다음 편에 이어 가도록 하겠다.


사족, 인류를 생존의 위험에 빠트리는 중요 전염병들은 숙주가 가축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우리 몸속에 기생하는 세균, 곰팡이, 바이러스 등 미생물들이 가축의 몸속에 들어가서 변종이 만들고 이것이 인간에게 다시 옮아오면 그게 바로 전염병이다. 인간이 기왕에 만들어 가지고 있던 면역력은 이 변종에게는 무용지물이 되어 버린다. 가축은 인간을 위해 마련해 준 자연의 선물만은 아니다.


14세기 중세 유럽은 흑사병으로 인구의 30~50%가 몰살을 당해 버린다. 몽고의 유럽 침공을 따라 병균이 전파되었다는 설이 있는데, 그 발원지가 중앙아시아 킵차크 칸국이다. 흑사병은 들쥐 같은 야생 설치류에 기생하는 벼룩을 통해서 전파되는데, 그 들쥐가 어디 중앙아시아에만 있었겠나! 설치류-가축-인간, 이 연쇄 고리를 설명하는 이항 방정식에서 한 항에 흑사 병균을 넣으니, 그 해가 家(집 가)로 나올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전염병에서 살아남는 사람은, 멀리 떠나 있다가 병에 걸린 사람들이 모두 멸절한 후에 마을로 돌아왔거나, 태생적으로 우수한 면역력을 보유해서 변종과 싸우면서 항체를 스스로 만들어 냈거나, 병원균을 퇴치할  있는 치료법을 알고 있거나,  중에 하나다. 인구가 적고 지식이 깨치지 못한 고대 원시 사회에서는  번째 경우만이 유력하다.


그러니 전염병에 살아남은 가족이 얼마나 애틋하고 뜨거웠겠는가! 포스트 코로나에는, 병마를 함께 이겨낸 이웃 간에 동지애와 상처 입은 이웃들에 대한 배려심으로 더욱 따뜻해지는 세상이 열릴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주) 1. 반려저(伴侶猪) : 반려견에서 빌린 말. 猪는 돼지 저. 반려돈(豚)이라 하는 분들이 좀 있으시던데, 큰 일날 말이다. 돈(豚)은 식용으로서의 돼지를 가리키는 글자다. 잡아 먹기 위한 반려동물이 되니, 필히 사용 금지다.

2. 중국사람들의 돼지고기 사랑은 참 지극하다. 肉(고기 육)은 칼집을 낸 살코기를 나타내는 일반적인 고기를 뜻하지만, 중국사람들에게 肉은 그냥 돼지고기로 쓸 때가 많다. 우리가 잘 먹는 짜장면에 소고기 들어 간 거 못 봤다. 이것도 家 때문인가?!


p.s. 다음 한자썰은 계속 堂(집 당)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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