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썰37] 女, 상징으로 쓸만 하다.
한자의 여성 잔혹사...
女(여자 녀)
女(여자 녀)를 갑골문이나 금문에서 보면, 양손을 가슴 앞에서 모은 채 다소곳이 무릎을 꿇고 단아하게 앉아 있는 여성의 모습이다.(1~4) 女가 원래는 사람(人)을 가리켰다는 주장이 있기는 한데, 머리 부분에 장식이 꽂힌 것을 보면 여성으로 국한해서 보는 것이 보다 타당하다.(2, 4, 5) 母(어미 모)의 갑골문이 女의 갑골문 가슴 부분 양쪽 빈 곳에 점을 한 개씩 찍어서, 수유하는 여성을 표현한 것을 봐도 女의 옛 글자들이 여성을 표현한 것은 확실해 보인다.
(출처) 百度百科, www.baidu.com네*버 사전에서 女가 포함된 한자를 검색해보면 무려 2,000여 개가 나온다. 가히 어마어마한 량이라 하겠다. 우리가 사는 세상사에서 여성이 영향을 미치거나, 차지하는 일들이 얼마나 막대한지를 알려 주는 정황 중에 하나다. 그 한자들 중에서 상용이 되는 대표적인 글자들을 그 용도에 따라 다음과 같이 분류해 보았다. 주 1)
1. 친속 관계：妻(처 처), 婦（며느리 부), 姑(시어미 고)、姊(윗누이 자), 妹(누이동생 매)
친속 관계 글자에 女가 들어간 경우가 엄청나게 많은 반면에, 男이나 子가 들어 간 경우는 겨우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뿐이다. 마치, 우리가 여사원, 여사장, 여군, 여공이라 부르면서, 남사원, 남사장, 남군, 남공이라 부르기가 어색한 것과 유사하다. 여성은 친속들 간에서도 잘 드러나지 않고 관계형성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는 존재였다. 주류가 아니었다는 뜻이다. 여성은 친속들 사이에서도 일상에서 친지들과 자주 접하지를 못한다. 이 때문에 그 사람을 특정해서 지칭하기 위한 말이 자꾸 필요하게 된다. 女자가 들어가 친속 관계 글자가 허다해진 이유다.
妻(처 처)는 처녀시절 예쁘게 길렀던 머리카락을 위로 감아올리고 거기에 장식을 달아 꾸민, 결혼한 여성이다. 그 머리 위에 올린 손의 주인은 남자다. 婦(며느리 부)는 빗자루를 들고 마당을 쓸고 있는 여성이다. 집안일을 도맡아 했음을 뜻한다. 결혼하면 남편 잘 모시고 외조에 힘쓰고 집안일 알뜰살뜰 잘하는 게 여성의 본분이다.
2. 지위, 직업：奴(종 노), 婢(여종 비), 妾(첩 첩), 妓(기생 기), 娼(창녀 창), 妃(왕비 비), 媒(중매 매)
종, 첩, 창기... 하나같이 처참하다. 직업이나 지위로 버젓한 것이 없다. 妃(왕비 비)은 왕을 돕는 여성이라고 점잖게 해석하기도 하지만, 갑골자를 보면 그저 '왕의 아이 갖기를 바라는 여성'이라는 뜻이다. 媒(중매 매)는 중간에서 거간을 잘한다는 뜻이다. 여성은 성격이 부드럽고 세심하여 양쪽의 의견을 꼼꼼히 들어 잘 전달하니 거래를 잘 성사시켜 주는 사람이 여성이다. 중매쟁이는 대부분 여성이다. 그러나, 여기서도 여성은 주체가 아니다. 흥정을 성사시키기 위해 이용되는 사람일 뿐이다. 늘 주변인이었다. 세상의 중심에 서지 못했고, 때로는 착취와 희롱의 대상이었다.
3. 성씨：姜(생강/강할 강), 姬(아름다운 여자 희), 姚(예쁠 요) 嬴(가득할 영)
성씨로 쓰인 글자들은 부정적인 의미가 없는 것은 당연하다. 나쁜 뜻이 담긴 글자를 성으로 쓸 사람은 없다. 대신에 일상적으로 잘 쓰이지 않는다.
4. 혼인, 임신: 嫁(시집갈 가), 娶(장가들 취), 婚(결혼할 혼), 妊(임신할 임)
혼인과 임신 관련 글자에서는 그 의미가 대부분 수동적이다. 嫁(시집갈 가)는 여성을 거두어들이다 또는 떠넘긴다는 뜻이다. 娶(장가들 취)는 남성이 여성을 취한다는 뜻이고, 婚(결혼할 혼)은 여성을 어두울 때 데려 온다는 뜻이다. 婚의 갑골자는 여성이 귀를 쫑긋 열고 있는 모습이다. 고대에는 결혼식이 밤(昏)에 열렸는데, 어둠 속에서 낭군님이 오시기를 기다리는 신부가 설레는 마음을 안고 문밖을 향해서 귀를 바짝 기울였다는 게다. 모든 글자들이 여성은 결혼을 하는 자가 아니라 당하는 자라는 속뜻을 가진다.
5. 용모: 姣(아리따울 교), 媚(예쁠 미), 婉(순할 완), 媛(미인 원), 妙(묘할 묘)
대부분 여성의 미모나 자태를 표현하는데, 예쁘다, 조용하다, 부드럽다는 뜻도 있지만 그 동일한 글자가 요사스럽다, 교만하다. 음란하다, 묘하다, 아첨하다 등의 부정적인 뜻을 거의 대부분 동시에 갖는다. 남성의 이율배반을 반영한 것인데, 자기가 취하면 예쁜 것이고, 취하지 못하면 요사한 것이다.
6. 덕행(대부분 폄하): 妒(시새울 투), 妨(방해할 방), 妄(망령될 망), 嫌(싫어할 염), 姦(간음할 간), 悽(처참할 처), 奸(간사할 간), 妬(샘낼 투), 婪(탐할 람), 姹(자랑할 차), 恕(용서할 서)
덕행은 그야말로 최악이다. 어느 하나 예외 없이 여성을 폄하한다. 남의 일 시샘하고, 남자 갈 길 방해하고, 하는 짓이 망령되고, 짜증스럽고, 간음을 조장하고, 처참하고, 간사하고....!
그중에서 悽(처참할 처)는, 바람피우고 술 마시고 밖으로 도는 지아비 때문에 독수공방 하는 처(妻)의 썩는 속마음(忄)이 그렇다는 거다. 恕(용서할 서) 자가 제일 막장이다. 如(같을 여)가 '여성처럼 남자가 하는 말(口)을 잘 듣고 따른다'는 뜻이다. 그러니, 恕(용서할 서)는 남자 말을 마음속으로 동감해서 남자와 같은 심적 상태에 이르렀다는 의미가 된다. 막장 드라마들에서 말도 안 되는 이유인데도 남편의 외도를 용서하는 아내들의 마음이 恕(용서할 서)다.
7. 기타: 安(편안할 안), 妥(온당할 타), 要(요긴할 요), 如(말이을 여), 好(좋을 호), 宴(잔치 연), 妆(단장할 장), 嬛(산뜻할 현), 姈(슬기로운 영), 始(비로소 시), 委(맡길 위)
그나마 중립적이거나 긍정적으로 쓰인 글자들을 모아 봤다. 그런데, 이것들도 따져보면 역시 부정적인 의미와 연루되어 있다. 妥(온당할 타)는 남자가 여성을 머리(女)를 잡는 것(爫)은 거부할 수 없는 온당한 처사라는 의미다. 여성에 대한 남성의 지배를 합리화하는 글자다. 安(편안할 안)은 여성이 집안에 있어야 편안하다는 뜻인데, '암탉이 울면 망한다'라는 속담과 맥락이 같다. 要(요긴할 요)는 원래 허리를 가리켰는데, 여성의 잘록한 허리를 표현한 글자다. 허리가 신체 부분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뜻에서 만들어진 글자다. 다분히 성적이 요소가 있다. 宴(잔치 연)은 잔치 자리에는 음식을 차리든 시중을 들든 여성을 동반해야 흥이 나고 편안하다는 뜻이다.
이쯤 읽었으면 아마도 여성 분들께서는 이 글자들은 만든 인간들의 집요한 차별함에 화가 단단히 나셨을 수도 있다. 수천년 걸려 만들어진 그 많은 글자들을 새롭게 다시 만들자 할 수도 없다. 중국 공산당이 한자를 간체화 하면서 이 작업을 왜 하지 않았는지는 상당히 의아한 면이 있다. 呜呜。주 2)
그래서 다는 사족, 女자는 춘추금문(春秋金文)(7, 8)에서, 그리고 예서(隷書)(16)에서 한 번씩 큰 변화를 겪는다. 전자에서는 무릎 꿇은 모습이 사라지고 꼿꼿이 선 자세가 된다. 후자에서는 상단부가 과감하게 간략해져서 횡선 하나로 씩씩하고 굳세 진다. 해서(楷書) 女에서는 다소곳이 맞잡은 손도, 꿇은 무릎도 모두 사라졌다. 양팔은 당당히 벌리고 머리를 우뚝하고 삐딱하게 높이 들었다. 이 불공정한 여성차별 세상을 향해 금방이라도 대들겠다는 태세다. 가만히 보니 女(여성 여) 자는 페미니즘의 상징으로 충분히 써볼만 하다.
대문사진에 걸어 둔, 중국 역사상 유일무이한 여성황제 측천무후(則天武后)의 엄중한 자태가 女자를 꼭 닮았다. 女가 무수히 많은 참혹한 글자들 속에 지금도 남아있지만, 역사적으로 여성의 지위는 끊임없이 발전해 왔다.
소시적에 女를 ‘계집 녀’로 배웠지만 사전을 보면 지금은 ‘여자 녀’로 바뀌었다. 어린나이에도 여자를 낮춰 부르는 계집이라는 말을 왜 교과서에서 쓰는 걸까하고 생각은 했다. 하지만, 옛날 사람들이 그렇게 불렀으니 그렇게 쓰는 것도 멋스럽고 좋네하면서 이내 넘어갔다.
이제 그런 어물쩡한 타협을 버려야 한다. 많이 바뀌었고 지금도 바뀌어 가고 있다. 아직 갈 길이 많이 남았지만, 길 가는 자가 길을 바꾸지는 못한다. 길이 난 대로 나아가는 것이다. 그게 역사다.
주) 1. 분류는 百度百科 인용 또는 일부 첨삭. 해설은 필자가 함
2. 呜呜: 엉엉의 의성어다. 중국 발음은 우우(wuwu)로 읽는다.
p.s. 다음 한자썰은 家(집 가)입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