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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공지마 Mar 28. 2022

[한자썰42] 讓, 생산적 공감, 그리고 실천

파종, 싹 틔우고 뿌리내리도록...

讓(사양할 양): 言(말씀 언) + 襄(도울 양)


讓(사양할 양)은 말(言)로써 남에게 도움(襄)을 준다는 뜻이다. 우변에 襄(도울 양)은, 춘추금문(春秋金文)을 보면 소 두마리가 끄는 쟁기를 써서 마르고 굳어진 땅을 갈아엎는 광경을 표현한다.(1, A) 습기와 양분을 간직한 속흙을 뒤집어 겨우내 메말라 버린 겉흙과 잘 섞어서 땅을 부드럽게 만들어 주면, 씨가 움트고 자라는데 도움을 준다. 그 작업을 襄(도울 양)이라 가리키니, 차차로 새김말에 '돕는다'가 추가된다. 주 1)


(출처) 百度百科, www.baidu.com

그래서, 讓(사양할 양)은 ‘도움을 주는 말’이 된다. 그런데, 그 말은 말만 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양보(讓步)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나의 주장과 의견을 굽혀서 남을 쫓거나, 길이나 자리, 물건을 남에게 내어 주는 것이다. 그러니까, 나의 이익을 포기하는 적극적인 행동이 실질적으로 수반되어야 讓이다. 실천과 희생이 없이 말만 번지르르하게 굴면 그것은 讓이 아니다.


讓(사양할 양) 자는 양보의 진정한 태도를 잘 설명해 준다. 겉흙과 속흙이 섞이듯이 상대와 공감해야 한다. 그리고 파종한 씨를 품듯이, 상대와 나에게 함께 이롭고 새로운 무언가를 만들어 낼 기대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일방적으로 주고 없어지는, 给(줄 급), 授(줄 수), 付(줄 부), 赠(줄 증)과는 사뭇 다르다. 그러니, 힘 있고 강한 자가 원하는 것을 주는 것은 讓이라 할 수가 없다. 그런데, 그 자들은 꼭 그걸 讓이라 우기길 좋아한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부조리 중 하나다. 강도가 칼을 써서 빼앗아 가고서는 讓했다 떠든다면 참 우스꽝스러운 꼴이다.

영어로 양보가 Yield인데, 신기하게도 ‘생산하다’, ‘수확하다’라는 의미를 동시에 갖는다. 놀랍지 않은가! 讓 자에 담긴, 파종을 위해 땅을 갈고 매는 생산활동으로서의 의미요소와 완벽하게 일치한다.


讓이든 Yield이든, 수확한 것은 남을 돕는 데 써야 한다는 뜻이다. 또는 남을 돕는 것은 생산적인 활동이라는 뜻이다. 전자는 당위고 후자는 실존일 뿐이지, 같은 얘기다. 이거든 저거든 양보는 얻어지는 것이 많으니 눈 딱 감고 일단 해 보는 게 옳다는 글자가 讓(=Yield)이다.


사족, 讓에 대한 로맨틱한 해석 하나가 더 있다. 襄이, 상복(喪服)을 걸친 채 슬픔에 젖어 망연자실한 상주를 나타낸다는 설이다. 襄이 상(喪) 자를 닮기도 했거니와, 눈물이 그렁그렁한 슬픈 눈망울처럼 보이도록 'ㅁㅁ'에다가 감정이입까지 하니 정말 그럴듯한 해석처럼 느껴진다. 가운데 共자 위부분 모양은 흐르는 눈물이다. 불현듯 襄 자가 잔뜩 슬퍼 보인다. 그러니, 讓은 슬픈 일을 당한 사람을 위로해주는 따스한 한마디 말이다. 주 2)


이 해석은, 讓이 상대가 처한 슬픔과 곤궁에 대한 공감을 바탕으로 해야 함을 깨닫게 한다. 꽉 막힌 도로를 다급히 달리는 앰뷸런스에 내 차를 치워 길을 열어 주는 마음이 바로 그런 마음이다.


게다가 손해 날 것이 없지 않은가! 베풀어 편해진 내 마음에도 이익이고, 응급 환자에게도 이익이고, 언젠가 다음에 그 차를 타게 될지 모를 나에게도 이익이고...! 어차피 막히는 도로인데 말이다. Yield가 Produce가 되는 이유다.


봄이다. 겨우내 메마르고 딱딱하진 땅을 갈아 헐고 따뜻하고 기름진 아래 흙을 잘 섞어서 부드럽게 만들 때다. 파종한 씨들이 잘 싹트고 잘 뿌리내리도록... 그리하여 온 땅이 푸르러 가득한 열매 맺도록...!


주) 1. 경종(耕种)이라고 하는데, 중국에서는 경송(耕松)이라고도 한다. 송(松)에는 헐겁다, 느슨하다, 풀다는 뜻이 있다.

2. 共(함께/받들 공)을 상주가 받들고 있는 신주 또는 제수품이라 해석하기도 한다.


p.s. 다음 한자썰은 憂(근심 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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