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한다고 걱정이 없어지면...
憂(근심 우): 頁(머리 혈) + 心(마음 심) + 夊(천천히 걸을 쇠)
憂(근심 우)는 얼굴(頁)을 찡그린 채 답답한 마음(心)을 품고 천천히 걸어(夊) 가는 사람이다. 근심에 싸여 있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내면과 외면의 특징들을 은유적으로 아주 잘 표현한 글자다. 늘 그렇듯이 그 갑골문은 적나라하다. 근심 때문에 골치 아픈 머리를 손으로 두드리고 있는가 하면, 로뎅의 <생각하는 사람>을 그대로 옮겨 놓기까지 한다. 무릎을 구부리고 앉아서 손으로 얼굴을 괴고 있는 모습이 딱 그대로다. (2, 3) 주)
憂(근심 우)가 지금 모양처럼 복잡해진 것은 전국시대에 이르러서부터다.(4, 5, 6) 걱정과 근심의 대상 거리들이 인간사에 그만큼 많아졌기 때문이다. 천하에 열국들이 사분오열, 합종연횡(合從連橫)하며 치열하게 경쟁하는 복잡한 시대상이 반영된 것이리라! 그 이후로 憂는 체(體)가 조금씩 바뀌었을 뿐 형(形)에는 달라진 게 거의 없다. 아마도 전국시대와 같은 난세가 중국 역사 상 더이상 없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憂(근심 우)의 간체자는 忧인데, 현대에 새로 만들어진 게 아니고 전국시대부터 이미 있던 글자다. 그 뜻은 심동(心动), 우리 말로는 '설레다', '마음이 내키다'이다. 고서적에만 간간이 남아 있을 뿐 이미 오래전부터 잘 사용되지 않던 글자인데, 마침 그 발음이 憂(근심 우)와 우연히 동일한 이유로 현대에 재발굴되어 그 간체자가 되었다.
두 글자 간에는, 心(마음 심)과 忄(심방변 심) 말고는 연관을 지을 거리가 없다. 다만, 갑골문을 보면 尤(더욱 우)가 '손에 난 사마귀(또는 혹)' 또는 '육손(多指)'을 가리킨다. 그 사마귀와 육손을 파내거나 잘라내고 싶은데, 그 통증을 생각하니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고민하는 마음, 그 마음 상태가 憂와 같다 라고 생각을 해보니, 그런대로 그럴 듯은 하다.
사족, 혈혈단신으로 북경 왕징(望京)에서 4년 반 주재원 생활을 했다. 같이 근무하던 주재원들 중에 나이가 좀 많은 편이라 독거노인이라고 놀림을 받곤 했다. 그 이니셜인, DKNY라는 명품(?) 별명도 덤으로 얻었다. 가족도 없이 낯선 땅에서 혼자 살이로 지내려니 그 일상이 그리 호락호락했을 리가 없다. 힘들고 답답할 때, 그래서 밥심이 필요해지면 가끔 찾던 한국식당, '키친혜원'이 기억난다.
‘키친혜원’은 음식도 먹을만했지만, 사실은 이층 창쪽에 걸어 놓은 네온사인 문구가 훨씬 더 좋았다.
"걱정하지 말고 설레어라!"
아래층에 자리가 비었을 때도, 괜스레 이층으로 올라가 점심을 먹고 치맥을 했다. 왠지 저 문구를 보고 있으면, 걱정이 가벼워지고, 소화가 잘 되고, 맥주 목 넘김이 훨씬 좋아진다.
아마도, 그 식당 젊은 사장님은 憂와 忧, 그 글자 간의 내력을 알고 있으셨던 것 같다. 忧에 숨겨져 있는 비밀의 조언, '야! 이왕 하는 건데 걱정 따위는 좀 제쳐 두고 설레는 마음으로 일단 해보라니까!' 사마귀나 육손을 잘라내는 아픔을 걱정하기 보다는 그 후에 얻을 만족을 상상하라는 뜻이다.
잘 알려진 티베트 속담이 있다. "해결될 문제라면 걱정할 필요가 없고, 해결 안 될 문제라면 걱정해도 소용이 없다." 비슷한 다른 말로는, "걱정한다고 걱정이 없어지면, 세상에 걱정이 없겠네!"
주) 頁(혈)은, 갑골문을 보면 머리를 비이상적으로 커다랗게 그려 강조한 사람, 즉 '얼큰이'의 상형자다.
p.s. 다음 한자썰은 規(법 규)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