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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공지마 Apr 03. 2022

[한자썰44] 規, 꼰대 잔소리

게 맛, 니들은 여전히 모른다.

規(법 규): 夫(사내 부) + 見(볼 견)


規(법 규) 자는 직역하면 '남성 어른(夫)의 견해(見)'이다. 그 새김말이 법이므로, 規는 남성 어른의 견해에 따라서 만들어진 것이 법이라는 의미가 된다. 전통사회의 가부장적 지배체제를 반영한 것인데, 요샛말로 친다면 规는 ‘꼰대 잔소리’쯤이라 할 수 있겠다. 주 1)


法(법 법)은 그 옛날 글자를 금석문에서 보면 灋(법 법)이다.(1, 2, 3) 灋이 좀 복잡해 보이지만 두 글자 간에 차이는 우상단에 廌(해태 치)가 있고 없고 일 뿐이다. 廌는 무슨 역할을 한 것이고, 또 왜 홀연히 사라져 버린 것일까?


법은 그 강제성, 때로는 폭력성 때문에 정당성을 어떤 방식이든 확보해야만 한다. 특히나 고대에 法은 그 골간을 형법이 차지하기 때문에, 가혹한 인신형을 죄인들에게 수용시키려면 법의 정당성이 더욱 중요해진다.


정치와 사법 체제가 미성숙한 고대사회는 불가피하게 미신과 전설에 의존한다. 전설 속 짐승, 해태(=廌,海駝)가 법(灋)자 속에 등장한 이유다. 해태는 사람의 선악(善恶)과 시비(是非)를 가려내는 신비한 능력을 가진 영험한 짐승이니, 법(灋)에 따른 판결에 감히 이의를 제기하지 말라는 뜻을 廌를 통해서 심어 놓은 것이다. 이런 악의적이고 권위적인 해석과 다른 한편으로, 법을 제정하거나 운영할 때에는 해태(=廌)처럼 정의로워야 한다는 경계를 담은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선의적이고 민주적이다.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는 없다. 다만 두 가지 모두 법은 정의(正義)를 따라야만 한다는 기본 생각에서는 일치하니 악의이든 선의이든 그나마 다행이다 싶다.

(출처) 百度百科, www.baidu.com

그렇다면, (해태 /) 어쩌다 사라진 것일까?  소전(小篆) 시대, 통일 진제국은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중국 최초의 중앙집권적 정치체계를 이룩한다. 진왕은 전설의 성군 삼황오제(三皇五帝) 모두 합쳐서 황제라는 전대미문의 칭호를 만들고, 스스로를 역사상 최고의 지위에 오르게 한다. 그 강력한 왕권은 전설의 시대가 막을 내리게 하고 법은  이상 해태 따위에 정당성을  필요가 없어진다. 법은 해태눈치를 더는 살피지 않은 , 지배층 또는 권력자의 힘에 순응해 간다.  2)


진시황은 廌(해태 치/태)의 유폐만으로는 그 망령이 일으키는 불안을 지워버릴 수가 없다. 그래서 规(법 규)라는 글자까지 새로이 만들어 불안감을 달랜다. 법(法)은 모든 가부장들의 최고 가부장인 황제의 재량으로 만들어 질 뿐임을 선언한 것이다. 하지만, 중국 최초의 통일제국 진(BC 221∼BC 206)은 고작 십오 년 만에 망해 버리고 만다. 혹여, 해태의 저주 때문은 아니었을까?!


사족, 법규(法規)라는 말에서, () 운영원리다. 법은,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이치에 맞아야 하고,  물은 널리 고르게 퍼져 나가니  적용에 예외가 없고 일관성을 지켜야 한다. 그리고 아무리 이치에 맞고 일관성을 유지한다 하더라도,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로운 객관적인 제삼자의 판정이 담보되어야 한다.  모든 원리를 (, ) 하나가 담고 있으니  대단한 글자가 아닐  없다. 해태가 맡았던 역할은 오늘날 법을 제정하는 국회의원이나 법을 집행하는 판사가 하는 일의 모델이다.


한편, 규(規)는 거버넌스(Governance)다. 법을 누가 어떤 입장에서 통제해야 하는가에 대한 표현이기 때문이다. 글자대로 보면 고대 중국에서는 '어른 남성 사람'이 법 체계의 governor였다. 다 지나간 옛날 일이니 가부장 중심의 권위주의 사회상을 반영한 시대적 한계라 치부하고, 나도 진시황의 폼을 잡고서 규(規) 자에 현대적인 재해석을 내려 본다.


+ 또는 +見이 어떨까?! 사람() 또는 국민() 통제하는 법이라는 뜻이다. 일단 글자라도 바꿔 놓으면 세상이  글자에 맞춰가는 가능성이 높아지지 않겠나! 그런데, 부수가 아닌 글자들을 억지로 붙여 놓고 보니  모양이  예쁘지가 않다.  조합이 매우 비현실적이라는 것을 글자 스스로도 알고 있는 듯하다. 신구 선생님만 아시는  맛을 아무나 함부로 알기는 어렵다. 씁쓸하다. 啧啧。  3)


주) 1. 夫(부)는 양팔을 벌리고 서있는 사람(大)이 상투를 틀어 관을 씌우거나 비녀를 꽂은 모습(十)인데 성년 남성 또는 기혼 남성을 가리킨다.

2. 規자는 진의 전문(篆文)에서 비로소 발견되니, 그럴 듯한 상상이다.(표 참조)

3. 俔(현)이 적절해 보이기는 한데, 이미 '염탐하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어서 아쉽다.


p.s. 다음 한자썰은 犬(개 견)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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