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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공지마 Apr 05. 2022

[한자썰45] 犬, 들판과 숲을 달렸다.

그리고, 아이고 우리 강아지!

犬(개 견,=), 狗(개 구)


犬(개 견)은 갑골문을 보면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이 개다. 긴 꼬리가 끝이 말려 올라갔고 귀가 쫑긋하다.(1, 2, 3) 선으로 간화(簡化)된 소전(小篆)에 이르면 그 선명했던 모습이 흐릿해 지지만, 갑골과 금문의 전승(傳承)이 여전히 남아있다. 해서(楷書)에서는 귀가 점 하나로 떨어져 나가고 몸체는 大(큰 대)로 변해 버린다. 글자 모양으로는 그것이 개라는 것을 알아챌 방도가 없다. 주 1)


狗(개 구)도 개다. 지금은 구별 없이 둘 다 상용하지만, 먼 옛날에는 犬(견)은 큰 개, 狗(개 구)는 작은 개를 가리켰다 한다. 끈 또는 연결을 뜻하는 句(구)가 어미개와의 연관성을 상징한다고 해석해서 狗(개 구)가 새끼개를 지칭다는 의견에서 비롯된 설명이다. 주 2)


다른 의견으로는, 狗(개 구)가 개(犭(=犬))를 말뚝에 끈(句)으로 묶어 놓은 모습이라 하는데, 묶어 놓고 집안에서 키우는 개이니 아마도 그 크기가 작았을 것이다. 사냥개로 쓰기에 적합하지 않은 작은 개들이 잡종변이로 태어났을 텐데, 키우던 정든 개가 낳은 새끼를 쓸모가 없다 해서 차마 버리지 못한 채 집에서 기르지 않았겠나! 가까이 두어 살피다 보니 더 예뻐 보이고 어미개에 이어 기른 정이 더 깊어진다. 개도 주인 손에 길이 들어 시도 때도 없이 꼬리를 말고 흔들며 재롱을 떤다. 애완견이 생겨난 것이다. 주 3)

후자가 더 타당해 보인다. 그 정황 증거로 狗자은 금문에서부터 발견이 되기 때문이다. 새끼개가 갑골시대에는 없다가 금문시대에 갑자기 튀어나왔을 리도 없거니와,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개의 변종과 용도가 점차 다양해졌을 것이라는 추론은 매우 자연스럽다. 갑골과 금문 사이만 해도 최소한 일이천 년 세월의 간극이 있다. 주 4)


사족, 犬(=犭) 자가 함께 쓰인 글자들을 살펴보면, 중국인들이 개에 대해서 어떤 인식을 가지고 있는지를 가늠해 볼 수가 있다.


[猷(꾀 유)] 원래는 원숭이과의 짐승을 가리키다가 꾀, 모략, 책략으로 그 뜻이 바뀐다. 개의 영리함을 반영한다.


[獸(짐승 수)] 사냥도구(좌변)와 개(우변)의 합성자인데, 원래는 사냥을 가리켰다. 나중에 사냥감 즉 짐승으로 변한다. 개의 가장 원시적인 용도였을 사냥개의 흔적이다.


[獻(드릴 헌)] 호랑이 문양이 그려진 신성한 솥에 개를 담아 제사를 드리는 장면이다. 개고기가 제사에 희생양, 아니 희생견으로 쓰였다. 개가 신성한 대접을 받기도 했다.


[獨(홀로 독)] 개는 모이기만 하면 싸우고 물어뜯기 때문에 홀로 있기를 좋아한다 해서 만들어진 글자다. <설문(说文)>의 설명이 이렇다. "개는 서로 싸우니, 양은 무리를 지우나 개는 홀로 지낸다. 그것이 獨이다." 그러므로, 혹여 주변에 외로움을 호소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호전성을 잘 살펴서 만날 일이다. 외로움은 환경이 아니라 스스로 키울 때가 많다.


[猿(원숭이 원)、猩(성성이(오랑우탄) 성)、猴(원숭이 후)] 대체로 영장류를 가리킬 때 개(=犭)를 붙인다. 여러 가축들 중에서 비교적 지능이 높았다는 의미다.


[猛(사나울 맹)] 개의 우두머리(우변)라는 뜻이다. 개 무리 중에 우두머리는 유독 사납고 용맹스러웠나 보다. 떼 지어 다니는 개의 맨 앞에 개는 함부로 건드리지 않는 게 좋다. 사람도 비슷하다. 살면서 이러저러하게 경험하거나 전해 들은 CEO의 8할은 猛에 가깝다.


[狂(미칠 광)] 인간과 가까이 동거하는 동물이 미쳐 날뛰니 다른 야생 동물이 미친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무섭고 피해가 컸을 것이다. 그런데, 狂의 갑골문은 어지러운 초목을 헤치고 목표물을 향해 내달리는 사냥개다. 주인이 잡은 사냥감을 가져오기 위해서 온 힘을 다해 달려가고 있는 개의 모습을 미친 짓으로 봤다는 말인데, 인간의 사고 방식을 참 이해하기 어렵다. 자신을 위해 최선을 다해서 봉사하는 개에게서 광기를 느꼈다니, 그 개의 입장은 정말 미칠 노릇이었을 게다. 그래서 미칠 광인가 보다. 토사구팽(兔死狗烹)과 맥락이 같다.(王은 㞷(무성할 황)의 생략자)


[伏(엎드릴 복)] 사람에게 바짝 엎드려 복종하는 개의 모습이다. 인간에게 개만큼 친밀하고 충성스러운 동물은 없다. 삼복(三伏)은 개 잡아먹는 날이 아니라, 뜨거운 삼복더위에 밖으로 싸돌아 다니지 말고, 집안에서 개처럼 납작 엎드려 휴식하라는 뜻이다.


[吠(짖을 폐), 狺(으르렁거릴 은)] 개가 짖거나 으르렁 거리는 것은 개가 말(口, 言)을 하는 것이다. 무작정 성대 수술시켜 주지 말고,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잘 살펴보시라! 정히 모르겠다면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시라!


[(사냥할 )] 개가 주인이  때까지 사냥감을 포위하거나, 화살 맞은 사냥감을 잃지 않도록 꿋꿋이 지키는 모습이다.


[(사냥할 )]  갈퀴처럼 털을 휘날리며 넓은 들판과 깊은  속을 거침없이 내달리는 사냥개의 모습이다. 犬자가 들어간 많은 글자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 무성한 풀과 덤불 사이를 껑충껑충 휘달리는 씩씩하고 날랜 사냥개의 용감한 질주를 생각하면 가슴이  뛴다. 고구려 무용총 벽에 그린 수렵도를 옮겨 놓은 글자다. 한자를 공부하는 즐거움  하나다.


견자(犬子)는 자기 아들을 남 앞에서 가리키는 겸칭이다. '개의 아들'이면 자신이 개가 되니 그건 아닐테고, '개 같은 아들'이라는 뜻이다. 개는 주인이 시키는 일을 잘하고 충성심이 강하니 깔봐도 되는 존재다. 그 개를 아들에게 붙여, 겸양의 뜻으로 견자(犬子)라 한 것이다. 우리말로 하면 '아들 녀석' 정도라 하겠다. 노인들이 손주 더러 '아이고, 우리 강아지!'하시는 것과도 무관치 않다. 그러나, 개OO와는 그 결이 한참 다르다. 哈哈。


주) 1. 犬(개 견)과 豕(돼지 시)의 갑골문은 그 모양이 비슷해 구별이 쉽지 않다. 다만, 꼬리 끝이 犬은 말렸고 豕는 곧다.

2. 오경(五經) 중에서 예기(禮記)에 나온다.

3. 犬이 부수로 쓰이면 犭(개사슴록 견)이다. 갑골문에서 본 원형에 아주 가깝다.

4. 현대 중국어에서 犬는 문어에서, 狗는 구어에서 주로 쓰인다. 합성어로 쓰일 때는 犬를 쓴다. 군견(軍犬), 반려견(伴侶犬), 애견(愛犬)...등


p.s. 다음 한자썰은 息(쉴 식)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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