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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공지마 Apr 09. 2022

[한자썰46] 息, 소식을 몰랐다.

호흡 하나에서 만상을 담다.

息(쉴 식): 自(스스로 자) + 心(마음 심)


息(쉴 식)은 갑골문이나 금문을 보면 코가 숨을 쉬고 있는 모습이다. 콧구멍으로 숨이 점이나 선으로 뿜어 나오는 모양이 제법 생생하다.(1, 2, 3) 춘추전국을 지나면서 아래 부분 ‘숨’은 心이 되고, 윗부분에 코는 직선으로 차츰 간화가 되어가면서 예서(隸書)에 이르러 지금의 自 모양이 된다.(5~9)


세월이 흘러 ‘코’가 ‘스스로’로 변한 게 아니다. 自는 이미 갑골문에서부터 '코'이기도 하면서 일인칭 대명사인 '자신' 또는 '자기'를 가리켰기 때문이다. 自가 점점 대명사로 많이 쓰이자, 코를 따로 가리키기 위해서 鼻(코 비)가 새로 만들어진다. 鼻 자에 왜 自 자가 올라가 앉았는지 그 이유를 이제야 알게 된다.


고대인들은 심장이 사유 기관이라고 믿었다. 생각이나 감정이 심장에서 만들어진다고 여긴 것이다. 생각이나 감정에 변화가 있을 때, 심장의 움직임에 연동이 일어나는 것을 몸으로 느꼈을 테니 충분히 그랬을 법도 하다. 그 심장박동의 완급이 다시 호흡으로 나타나게 되니, 고대인들은 '사유-심장-호흡-코'를 하나의 일관(一貫)된 과정처럼 인식했을 것이다.


자신이라는 존재는 인식을 통해서 감지가 된다. 그리고 그 인식이 사유를 통해서 작동한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사유는 자신과 연결이 된다. 그 연결은 심장에서 출발해서 그 연쇄 고리의 말단에 놓여 있는 신체 부위인 코에 닿으니, 코는 자신이라는 존재의 상징물이 된다. 自가 '코'이면서 동시에 '스스로'의 뜻으로도 쓰이게 된 사연이 아마도 그랬을 것이다. 주)


지금도 사람들은 자신을 가리킬 때 손가락으로 자기 코를 가리킬 때가 있다. 특히 어린아이일수록 더 그러는데, 머리 부위에 붙은 신체 부위 중에서 눈에 보이는 유일한 기관이 코이기 때문이다. 누워만 지내는 갓난쟁이들이 태어나서 가장 먼저 보게 되는 신체 부위는 코다. 실험해 보면 알 수 있다. 두 눈으로 보면 상이 겹쳐 잘 안 보이지만, 한 눈으로 보면 선명하게 잘 보인다. 그러니, 갑골문 시대에 '코'가 '자기(=스스로)'를 가리킨 것은 원초적이지만 지극히 사실적이다.


이야기가 自로 샜는데, 그 自에 心을 더해서 息(쉴 식)이다. 춘추전국은 제자백가의 시대다. 세상에  보이는 온갖 현상들을 일정한 관(觀)을 통해서 내부를 들여다 보고 그 본질을 밝히려는 노력이 범람하던 시절이다. 숨 쉬는 것조차 그런 식으로 해석하니, 현상으로서의 콧바람은 날아가 버리고 내면 구조로서의 심장이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된다. 그러므로, 息은 인간의 인지가 직관에서 사유로 발전하는 전환기를 설명해 준다.


息(쉴 식)이 심장(心)을 달자, 그 뜻이 단순한 호흡에 머무르지 않고 사유의 범주로 확장된다. 쉬다(安息, 休息), 살다(生息), 생존하다(서식(棲息)), 번식(蕃息)하다, 자라다(消息), 그치다(息災), 망하다, 짧은 시간(瞬息間), 자식(子息), 이자(利息)…! 달랑 글자 하나일 뿐인 息자가 온갖 만상(萬狀)을 가득히 담고 있다.


호흡은 인간 생존의 필수 조건이다. 이어지면 살고 끊어지면 죽는다. 그래서, 息의 새김말에 생존과 망함이 공존한다. 숨을 이어 생을 지키는 존재는 멈춰 있지 않고 변하고 자란다. 모든 존재는 그 종말에 새로운 자기 순환을 만드니 인간에게는 자식이 생기고 돈에는 이자가 붙는다. 이와 같이 꼬리의 꼬리를 무는 사유의 연쇄가 息자의 새김말들에 엮여 있다. 그 복잡함과 애매함을 하나씩 풀어 보는 재미가 한자를 공부하는 즐거움 중 하나다.


사람이 끊임없이 호흡하지만 의도하지 않으면 그 호흡을 인식하기 어렵다. 그래서, '숨 쉴 틈도 없이 바쁘다', '한 숨에 달려왔다', '이제 겨우 숨 쉴 만해!'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사실 이 말들은 굳이 거짓말이라 놀릴 필요는 없지만 따지고 보면 다 거짓말이다. 어떻게 호흡 없이 일하고 달리고 삶을 지켜 왔다는 것인가? 오히려 그럴 때 호흡은 더 가빠지고 깊어진다.


호흡을 인식하는 때는 휴식을 취할 때이다. 힘든 운동과 바쁜 생각을 멈출 때라야 사람은 그제야 겨우 자신의 호흡을 느낀다. 그래서, 息은 숨을 쉬다(Breath)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쉼(Rest)이기도 하다. 어쩌면 우리말 '쉬다(Rest)'도 '쉬다(Breath)'에서 그대로 빌려 온 말일 수도 있겠다 싶다.


들숨과 날숨을 오래도록 지속해서 느끼는 것은 명상의 한 방법이 되기도 한다. 명상은 마음에 쉼을 준다.


사족, '소식 좀 전해 줘!'에 소식이 왜 消息인지 생각해 본 적이 없다. 消息의 ‘消와 息’은 '사라짐'과 '자라남'이다. 생(生)과 사(死)이고 음(陰)과 양(陽)이다. 그래서, 消息을 사전에서 찾아 보면, '천지의 시운(時運)이 끊임없이 변화하고 순환하는 일'이다. 이 뜻을 사람에게 적용하면 동정(動靜), 상황(狀況), 또는 사정(事情)이 된다. 우리가 소식을, 그저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의 사정(事情)을 알리는 말이나 글'이라는 정도로 알고 쓰지만, 소식은 원래 우주의 운행 원리를 담고 있는 심오한 말이다.


그 의미를 알고 나니, 멀리 있어 자주 못 보는 친구들 소식이 새삼 궁금하고 소중해진다. 다행한 것은 그 친구들이 저 멀리 우주 밖에 살지는 않는다. 哈哈。


주) 상대방 얼굴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보이는 부위가 코이기 때문에 사람을 지칭하는 대명사로 코를 인용했다는 설명도 있다. 그런데, 그렇게 해석하면 코(自)가 이인칭이나 삼인칭이 아니고 왜 일인칭에 쓰였는 지를 설명하지 못한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 해석을 마구 해 본 것이다. 뇌피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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