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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공지마 Apr 16. 2022

[한자썰48] 北, 정주민의 한탄

북방, 4000년 세월에도 남다.

北(북녘 북): 丬 (나뭇조각 장)+匕(비수 비)


北(북녘 북)은 갑골문에서 두 사람이 서로 등을 돌려 맞대고 반대 편을 보고 서 있는 모습이다.(A) 丬(나뭇조각 장)과 匕(비수 비)는, 갑골문 北 자에 그려진 등 돌린 두 사람과 그 생김이 비슷해서 빌려 쓴 그저 모양자일뿐이다. '나무 조각'과 '비수'로는 北(북녘 북) 자의 의미를 도무지 알 길이 없다. 주)


갑골문에서 北은 원래 ‘등’, ‘등지다’, 또는 ‘배후(背後)’였다. ‘등’은 수동적이다. 눈과 코, 귀, 팔과 다리, 손과 발처럼 관측과 행위를 하는 능동적인 신체기관들은 하나 같이 앞을 향한다. ‘등’을 보이는 것은 위험하고 비겁한 짓이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쪽이니 적에게 칼을 맞기 십상이고, 그게 아니라면 줄행랑을 놓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北이라는 글자에 뉘앙스가 별로 좋지 않다. 특히, 남과 북으로 분단되어 같은 겨레이면서 오랜 세월 서로 적으로 살아온 우리는 더 그렇다.


중국도 다르지 않다. 北은 배로도 읽는데, 달아나다, 패하다, 분리하다의 뜻으로 쓰일 때다. 그러니, 败北(패배) 패북이라 읽으면 안된다. 그러나, 패북이라 해도 말이 된다. 중국인들은 역사적으로 북방민을 이겨  적이 거의 없다. 북방 오랑캐가 날랜 말을 달려 쳐들어오면 달아났다. 싸워 본들 패했다. 할  수 없어서 벽을 쌓거나 멀리 떨어져 살았다. 만리장성(萬里長城) 그것이다.

흉노, 돌궐, 거란, 여진, 몽고…, 중국인들은 그들을 오랑캐라 놀렸지만 그것은 그저 허세에 불과했다. 가끔씩 토벌하고 몰아내기도 하지만, 타격하고 빠지고, 사라졌다가는 다시 들이닥치는 북방민들을 이겨  도가 없었다. 어르고 달래고 때로는 아부하고 조공까지 바친다. 급기야 황제의 딸을 북방에 시집을 보내기까지 하는데,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전한(前漢) 원제(元帝) 공주라고 속여 흉노에게 시집보낸 궁녀, 절세미녀 왕소군(王昭君) 시구다.


황제는 높게 쌓은 성과 공주를 지켜야 했지만 몽골의 용사는 여차하면 반나절만에 다시 지을 게르와 처자식버리고 도망친다. 그럼에도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비난받지도 않는다. 지킬 것이 많은 정주자들은 모든 것을 버릴  있는 유목민을 이겨낼 도리가 없다.  정주자들의 불운을 한탄하여 만들어진 말이 패배이거나 패북(敗北)이다.


어두운 동굴을 나오거나 위태로운 나무에서 내려온 인간들은 집을 짓기 시작한다. 집은 막을 것을 막아야 하고 동시에 들일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맹수와 도적, 추위와 더위, 바람과 비는 막아야 하지만, 그와 동시에 손님을 맞고 햇빛과 공기를 들여야 하는 공간이다. 그래서, 집이 그 최적의 위치로 택한 방향은 남(南)이다. 그리고, 인간들은 그 반대편 볕이 들지 않는 집의 뒤 쪽을 자신의 '등'처럼 北이라 부르기 시작한다. 그곳은 잘 들르지 않고 음습하고 차가운 곳 피동의 장소다. 집의 숫자가 자꾸 늘어나고 마을은 점점 더 넓어졌다. 마을에 지은 모든 집들은 다 남을 향한다. 그렇게 해서, 北은 ‘등’에서 ‘북쪽’이 되었고, ‘등’을 구분해 부르는 背(등 배)가 새롭게 만들어진다. 몸(肉)에 붙은 등(北)이라 분명하게 표시하니 北과 헷갈릴 일이 없어진다.


사족, 중국의 북방민 관계는 남북한 관계와 비슷하다. 남한은 군사력이나 경제력, 그리고 그 어느 면에서도 북한보다 월등하다. 그렇지만 힘이 있어도 써먹지는 못한다. 잃어서는 안 되는 것들이 많기 때문이다. 북한은 그 반대다. 힘이 없어도 있는 척 허장성세를 밥 먹듯 하면서, 끝내는 핵무기를 보유했다. 하지만, 핵 말고 모든 것을 잃었다.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는 북방민 신세와 다를 바가 없게 되었다. 그들은 처자식도 버리는 몽골 전사가 되었다. 그들에게 인권 따위가 중요하지 않은 이유다.


전쟁을 하면 우리가 북한에 지겠는가? 어떤 목사님의 광인(狂人) 같은 말씀처럼, '한 사람씩 껴안고 논개처럼 함께 죽으면 북한 인민의 씨를 간단히 말릴 수가 있다'. 정말 그럴 수가 있겠는가?! 못 한다. 이미 우리는 정주민의 우(憂)에 깊게 빠져 있기 때문이다. 그걸 아니라 떠든다면 그 또한 허장성세(虛張聲勢)다.


현대 중국은 인구의 92%가 한족(漢族)이다. 민족의 수는 55개다. 한족이 생물학적으로 번성한 것이 아니고 나머지 54개 민족이 멸절한 것도 아니다. 중국인들은 자신의 민족을 스스로 선택할 수가 있다. 아마도 이 정책은 중국 공산당의 정책이 아니고, 중국의 오랜 전통일 것이다. 한족에 동화된 것이다. 남북관계에 해법이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황화 강 주변 중원 땅에 모여 살던 일단의 한족 무리(夏, BC 2070)들이, 중국 인구의 92%를 차지하는데 4000년이 걸렸다. 민족을 따지는 것이 무의미 해졌다. 굳이 한민족이라 불러야 하나! 북한족, 남한족으로 나누어 부른 들 무슨 상관이고, 체제가 서로 다른 들 또한 무슨 상관인가! 통일이 급한 게 아니다.


그래서, 나는 햇볕정책이 남북문제의 유일한 해법이라는 것을 믿는다. 평화와 공존, 그리고 미래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통일이 무의미해지면, 세월은 통일을 가져다준다. 통일이 무의미해질 때 진짜 통일이 온다. 정주민의 전략은 전투가 아니다. 전투에 성공한들 잃은 것들 위에 꽂힌 헤어진 깃발일 뿐이다. 그토록 장구한 세월이 흐른 중국에는 아직도 위구르가 있고, 티벳이 있고, 동북공정이 있다.


주) 北의 자형변천에서 해서(楷書)의 찐 매력을 발견한다.(F) 좌우가 완벽히 일치하는 그전의 자형(A~E)과 달리 균형과 변화를 함께 추구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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