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공지마 May 05. 2022

[한자썰52] 星, 천문의 역사

이성과 감성, 그리고 별

星(별 성): 日(해 일) + 生(날 생)


星(별 성)의 갑골문은 태양(日)이나 탄생(生)과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갑골문은 어두운 밤하늘 멀리서 빛나는 별들(표 1-1)이거나, 나무 둘레 흩어져 있거나 가지 사이로 반짝이는 작은 별들(표 2-1, 2)이다. 전자는 <어린 왕자> 같은 허다한 동화에 영감이 되고, 후자는 역법(曆法)과 천문학(天文學)의 효시(嚆矢)다. 주 1)


[표 1] 별을 감상하다.

별의 물리적 실체를 직접 목격한 사람은 없다. 그저 별이 발하는 빛을 통해서 상상만 할 뿐이다. 그 상상 속 별이 갑골문에서 두 가지 방식으로 표현된다.


그 하나는 동그라미(O)를 여러 개로 그려 놓고 별이라 한다.(표 1-1) 갑골문은 태양도 똑같이 동그라미(O)다. 그러니, 별을 구별해서 나타낼 방법으로 꾀를 부린 게 여러 개를 그린다. 태양은 중천에 하나가 뜨겁고, 별은 밤하늘에 무리지어 빛나니, 그런 식의 묘사가 소박하지만 자연스럽다.


그런데, 실제로 눈으로 보는 둘의 모양은 확실히 다르다. 서양인들은 태양은 원, 별은 오각이나 육각, 아니면 보다 복잡한 각양의 방사 모양으로 그린다. 서양인에게 별은 별이고 태양은 태양으로 서로가 다르다. 그러나, 중국 고대인은 그렇지가 않다. 시각적으로 보이는 모양을 상관하지 않고, 그들에게 별과 태양은 같은 실상의 천체(天體)였으며, 별은 단지 눈으로 보기에 개수가 많을 뿐이었다. 실체로서의 별과 태양을 강조하기 위해서 가운데 찍은 점도 똑같다. 주 2)


현대 과학은 별이 좀(?) 멀리 떨어져 있는 또 다른 태양임을 밝히고, 항성(恒星)이라는 동일한 이름을 붙인다. 만일 누군가가 어떤 별에 근접만 할 수 있다면 그 별이 그에게는 태양처럼 보이게 될 것이다. 다만,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별, 프록시마 켄타우리까지의 거리조차 4광년이다. 아직까지 별이 태양처럼 보일 정도로 별에 가까이 접근해 본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4, 5천 년 전에부터 태양과 별을 똑같은 모양으로 그린 중국 고대인들은, 그런 고도의 과학적 사실을 이미 깨치고 있었다는 말일까? 은하수에 흐르는 그 수많은 별의 무리들이 또 다른 태양들의 집단이라는 것을 알았더라면, 그들은 틀림없이 그 별들 가까이에 운행하는 존재들에 대해서도 무언가를 상상하고 사유했을 것이다. 그런 기록들이 거북이 등, 소뼈 갑골문 어디엔가 남아 있지는 않을까? 알아보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


그런 첨단 지혜를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일단의 낭만파 선인들에게 별은 밤하늘에 흩뿌려진 휘황한 빛이었다. 그들은 그저 별을 감상했고, 시인과 화가의 조상이 된다. 그들에게 별의 실용성 따위는 관심의 영역에 들지 않는다. 결국, 원래는 별이었던 정(晶)은, 별로서 계속 살아 남지 못하고 그 감상적 이미지인 ‘밝다’ 혹은 ‘맑다’로 그 의미가 전화(轉化)되어 버린다. 마침내는 별이라는 뜻을 가진 두 번째 방식, 성(星)에게 도태를 당해 버리니. 정(晶)은 낭만주의 패퇴의 상징이다.

[표 2] 별을 관측하다.

다른 하나는 그 동그라미들 사이로 나무 한 그루가 등장한다.(표 2-1, 2) 지구의 자전은 별을 뜨고 지게 하고, 공전은 천공(天空)에 달린 별의 위치를 이동시킨다. 기울어진 지구의 축은 그 이동을 가속시킨다. 계절이 바뀌면 보이는 별자리가 달라지는 이유다.

사람들이 마을 입구 성황당 앞 나무 가지에 별들이 걸리는 위치가 철마다 때마다 달라지는 것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 변화에 일정한 주기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된다. 1만 2천 년 전 신석기시대 유적, 괴베클리 테베(Gobekli Tepe, 터키)에서 별자리를 새긴 것으로 추정되는 정교한 석조물들이 출토된 연유를 星은 설명해 준다. 경주에 첨성대를 쌓고, 소백산 연화봉에 천문대를 세운 것도 마찬가지다.


갑골문에서 나무 둘레와 가지 사이에 있던 별들이 금문과 소전에서 가지 끝에 달린다. 별의 운동을 보다 정교하게 체계적으로 살피기 시작했음을 나타낸다. 별과 태양이 같은 종이라는 지식이 굳어지자 굳이 귀찮게 여러 개를 그리지도 않게 된다. 曐이 星으로 변한 것은 단순히 간화(簡化) 때문만이 아니다. 역법과 천문학이 발전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표2)


별을 감상한 사람들은 정(晶)이라 썼고, 관측한 사람들은 성(星)이라 썼다. 전자는 감성을 풍부히 품은 사람들이고 후자는 이성을 맹렬히 쫓는 사람들이다. 성(星)은 감성과 이성의 끊임없는 긴장과 협력이라는 인간 본질에 대한 기록이다.


사족, 결정(結晶)이라는 말은, 여러 개의 전자, 원소, 분자 등의 (소)립자들이 일정한 질서에 따라 강하게 응집된 것을 가리킨다. 소립자의 세계는 우주만큼 광활하고 그러면서 질서가 꽉 잡혀 있다. 별이 모여 우주가 되듯, 소립자들도 그들의 소우주를 형성한다. 우리가 우주의 피상적인 현상에 만족하듯, 소립자의 세계도 그것과 다르지 않다. 아마도 가장 과학적인 말들 중에 하나일 것 같은 '결정(結晶)'이라는 단어에, '맑다', '깨끗하다', '밝다'로만 쓰이는 정(晶)을 굳이 사용한 것은 왜일까? 그것은 원래부터 정(晶)이 저 먼 우주를 채운 별을 가리켰기 때문이리라! 소립자들의 세계, 그 소우주 안에서 입자들은 별이다. 감성이 이성에게 결코 밀려나지 않았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사족 하나 더, 별과 함께 있던 나무는 왜 생(生)이 되었을까? 지구 상에 모든 물질은 우주로부터 온 것들이다. 그 물질들은 별들이 만들었다. 인간은 그 물질로 육신을 입었다. 그러니, 인간은 日 + 生 = 星,별에서 태어난 존재들이다. 우리는 '별에서 온 그대'이다. 星이 가르쳐 준 인간의 본질! 하나하나 우주만큼 위대하고 귀중하다. 그리고 동시에 허무하다. 呵呵。


주) 1. 효시(嚆矢) : 무슨 일의 맨 처음 시작을 가리키는 비유어다. 효시는 빈 대롱을 단 화살이다. 날아가면서 휘슬처럼 소리를 내는데, 일제히 활을 쏘라는 신호로 맨 첫 번째에 날리는 화살이다.

2. 日자 가운데 선이나 점(갑골문)에 대해서는 설이 많다. 흑점이라고도 하고 광채를 표현한 것이라고도 한다. 한자는 웬만해서는 동그라미를 피한다. 그래서, 입도, 태양도, 별도 다 사각으로 변해서 같아져 버린다. 그래서, 口와 구분하기 위해서 첨가했다고도 한다. 태양이나 별이 빛이 아닌 실체가 있는 존재라는 것을 표시하기 위해서 그렇게 했다는 설도 있다. 마지막 설은 정말 신기하지 않은가! 중국 고대인들은 빛의 입자설과 파동설을 이미 어렴풋하게나마 깨닫고 있었다는 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자썰51] 花, 변화와 사라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