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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공지마 May 10. 2022

[한자썰53] 赤, 붉음의 기원

적(赤)처럼 뜨겁게…!

赤(붉을 적) : 土(흙 토)+八(여덟 팔)+八(여덟 팔)


赤(붉을 적)을 자전에서는, 상부에 土(흙 토)와 하부에 八(여덟 팔) 자 두 개를 겹친 것이라 설명한다. 하지만, 그렇게 단순 분해를 해서는 赤(붉을 적) 자의 유래를 가늠할 도리가 없다. 갑골문이나 금문을 보면, 赤(붉을 적)은 大(큰 대)와 火(불 화)를 합해서 '큰 불' 또는 '센 불'을 표현한다. 그 이후의 모든 자형 변천은, 서체 변화에 따른 단순한 모양의 변화일 뿐, 그 구성이 달라진 게 없다.(1~4) 주 1)


불은 어떤 물질이 산소와 결합하면서 방출하는 방사선이다. 이때 열을 동반하게 되는데 그 온도가 500도 이상이면 그때부터 불은 색을 띠기 시작한다. 불의 색은 온도, 연소되는 물질, 주변 환경에 따라서 달라진다. 고대인들이 가장 많이 목격했을 나무가 활활 타오르는 1000도 주변에서 내는 빛이 붉은색이다. 赤, 즉 '센 불'은 지극히 경험적이고 실질적이다.

갓난아기를 뜻하는 벌거숭이는 ‘벌겋다 ‘-숭이’(-생이(初生), -송이) 합쳐진 순우리말이다.  태어난 영아(嬰兒) 피부가 붉은 것은 것을 가리킨 때문인데, 중국사람들도 똑같이 적자(赤子)라고 부른다. 벌거숭이가 중국말의 번역인지 아니면 류의 공통인식인지는  수는 없다. 다만,  중에 무엇이든, 예나 지금이나 외래어에 사족(四足)  쓰는 우리에게, '적자(赤子)' 사라지고 '벌거숭이' 살아남았다는 것은 조금 특이하다.


그 갓난아기의 알몸을 연상한 탓인지, 赤는 '벗다', ‘비다’, 더 나아가 '무소유(無所有)'로까지 그 의미가 확장한다. 적나라(赤裸裸), 적수(赤手), 적신(赤身) 같은 말들이 그것이다. '인생, 공수래공수거(空手来空手去)'라 하는데, '적수래적수거(赤手来赤手去)'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노동운동, 혁명, 사회/공산주의의 상징색은 붉은색이다. 순수함, 열정, 진심, 충심 그리고 반항을 상징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 무리의 집회나 시위, 투쟁 현장에서는 적기(赤旗)  펄럭인다. 그런데, 유래를 쫓아가면 적기를 먼저 사용한 쪽은 진보가 아닌 보수 또는 수구다.


프랑스혁명(1798) 중에, 정부 측이 법령까지 만들어서 계엄령의 상징으로 적기(赤旗) 사용했기 때문이다. 정부군의 무자비한 학살을 참다못한 민중들이, ‘왕가에 대한 계엄 역으로 선포하고 적기를 들었던 것이, 적기가 반항의 상징이  기원이다. 태생으로만 본다면, 적기는 본래 반항이 아닌 압제의 상징이었다. 아이러니가 아닐  없다. 그러므로 적기(赤旗), 민중의 반항이 지배자의 압제와 폭력에서 연유한 정당방위임을 역설(力說)하는 가엾은 민중들의 손짓이다. 상대방이 적기를 흔들고 있다면 그것은  자신의 올바름을 돌아보라는 신호다. 자신을 돌아 보라!


중국 국기 오성홍기(五星红旗)  적기(赤旗, Red flag) 아닌 걸까? 중국 공산당이 소비에트와는 노선이 다른 공산주의를 표방했기 때문이다. 소비에트에 대비한 중국 공산당의 차별성과 우월성을 과시하기 위해서 赤보다 맑고 선명한  쓴게 되었다는 것이다. 중국의  말리는 자존심은 사회주의 중주국인 소련도 어찌하지 못한다. 오성홍기 반포(1948) 5 만에, 1953 스탈린 사망을 기화로 양국은 사회주의 동맹관계를 정리하고 줄곧 첨예하게 대립한다. 적기가 아닌 홍기는 그 결별의 복선인 셈이다.


赤(적), 红(홍), 丹(단), 朱(주), 네 글자 모두 붉은색이다. 그런데, 이들은 색의 근본이 모두 다르다. 赤(적)는 불에서, 红(홍)은 옷감을 염색하는 염료를 얻은 풀에서, 丹(단)은 주사(硃砂)라 불리는 수은이 함유된 광석물에서, 朱(주)는 속이 붉은 나무에서 생겼다. 그렇게 태생이 각기 다르니 모두 붉다는 뜻이지만 쓰임새 역시 각기 조금씩 다르다.  赤(적)은 뜨겁고 진한 것에, 红(홍)은 주로 예쁘고 밝은 것에, 丹(단)은 결의에 차고 단단한 것에, 朱(주)는 부드럽고 고은 것에 많이 쓰인다.


적도(赤道) 땅을 홍도(紅道) 땅이라 하면 찌는 더위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   같다. 다홍(多紅)치마를 다단(多丹)치마라 하면  치마가 어디 바람에 나풀거리겠는가! 일편단심(一片丹心) 일편주심(一片朱心)이라 하면 결연함을 버리고 딴마음을 먹은  같다. 절세미녀 주순호치(朱脣皓齒) 적순호치(赤脣皓齒) 하면 아무리 어여쁜 미녀의 입술일지라도 훔칠 마음이 사그러진다. 제대로 맞추어 쓰지 않으면  글자의 어기(語氣) 막혀 리니 그런 혼란들이 생긴다.


색으로는, 赤(적)은 어둡게 붉고, 红(홍)은 밝게 붉고, 丹(단)은 검게 붉고, 朱(주)는 노랗게 붉은 색깔에 어울려 사용한다. 적(赤)처럼 뜨겁게, 홍(紅)처럼 빛나게, 단(丹)처럼 묵직하게, 주(朱)처럼 온화하게, 그렇게 살고 싶다. 돌아 보니 지나간 인생이 참 허허롭다.


사족, 大가 사람을 가리켰기 때문에 죄인을 화형 시키는 장면이라는 설명이 있다.  때문에 赤이 '멸하다', '몰살시키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는 건데...! 그래서인 , 붉은   글자 중에서 赤에는 유독이 부정적인 의미가 많다. ‘베다’, ‘없다’, ‘염탐하다’, ‘벌거벗다’…! 반면에, 나머지  글자는 긍정적으로만 쓰인다. 무엇보다도 () 피를 연상하게 만들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중국 사람들이 () 보다 () 선호하는 이유들일 것 같다.  2)


한편, 일본은 () 선호한다. 중국은 홍십자(红十字) 하는데, 그들은 적십자(赤十字) 한다. 우리가 적십자(赤十字) 하는 것은 일제의 잔재다. 하긴, 홍십자(红十字) 해도 2000 신민국의 잔재라  테니 다를 바는 없다. 심지어 레드 크로스(Red Cross) 한들 그게 그거다. 미국의 종속국이라 하지 않겠나!


주) 1. 大가 土로 바뀐 것은 서체 변화 과정에서 생긴 와전으로 단순한 모양의 변화로 보인다. 흙과 연관시킨 일부 해석은 무리로 보인다.(표 10~12, 해서(楷书))

2. 大는 이미 갑골문 시대부터 '사람'이 아닌 '크다'의 뜻으로 쓰였고, 사람(人)을 가리키는 일반적인 글자가 따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이 해석도 타당하지가 않다. 다만, 불이 잘못 다루면 재난으로 이어지는 것에서 유래했다고 봐야 맞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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