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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공지마 May 17. 2022

[한자썰54] 青, 선명하고 밝으려면...

다양성, 애매함 그리고 포용하는 추상의 색!

青(푸를 청): 모양자 龶(-) + 月(달 월)


青(푸를 청)은 금문(金文)을 보면 땅 위에 솟은 초목과 광물을 캐기 위에 판 구덩이, 광정(鑛井)이다.(1~7) 그 둘이 각각 生과 丹을 거쳐서 龶(-)과 月(달 월)로 변해서 지금의 青이 된다.(8~17)


青(푸를 청) 자를 구성하는 초목과 청금석(青金石)은 그 색이 녹색과 짙푸른색으로 분명히 다르다. 그럼에도 하나의 글자에 묶은 것은 '푸르다'의 다양성과 애매함을 반영한다. 青은 '푸르다' 이외에, 어리다, 젊다, 고요하다, 봄, 동쪽 등 다양한 뜻을 파생하는데, 그 유래가 금문 青자에 담긴 포용과 모호함에 있다. 여러 색을 품고 어느 색도 아니다. 주 1, 2)


중국 고대 3천 년 전 선인들이 지목하여 글자까지 만들어 붙인 青이라는 색의 정체는 도대체 무엇일까? 맑고 높은 하늘, 드넓고 깊은 바다, 차갑고 투명한 보석, 실록으로 가득한 산…. 그 모든 것들이 青 또는 ‘푸르다’라는 말로 수식을 받지만 사실 그 어느 하나도 실제 색깔이 동일하지는 않다. 青의 정체를 밝히는 것이 생각처럼 그리 쉽지가 않다.


청출어람(青出於藍)의 원문은 ‘青取之於藍,青於藍(청취지어람, 청어람)’이다. 즉, '쪽에서 뽑아낸 푸른색이 쪽 보다 훨씬 더 푸르다'이다. 그런데, 쪽은 평범한 보통의 풀이라서 그 색 역시 특별할 것 없는 그냥 녹색이다. 그러니, 후반 결구 '청어람(青於藍)'은, 쪽의 녹색이 청색만큼은 못 하지만 그 역시도 푸르다(青)라고 말한 셈이 된다. 그리고 또 青(앞)을 青(뒤)이라 한 것도 의아하다. 이 문장을 제대로 풀려면, 앞에 青은 푸른색을, 뒤에 青은 '푸르다'는 추상적인 느낌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출처] 네이버 색채용어사전/색상환표

‘青(푸르다)’는 색 그 자체라기보다는, 일정한 부류의 색들 - 연두색에서 남색까지 - 로부터 느껴지는 추상적인 감상이라 해석해야 더 맞다. 우리가 ‘青(푸르다)’을 넣어 사용하는 말들의 쓰임을 잘 살펴보면 그렇다. 신기하게도 금문 青에는 그 의미가 명확하게 담겨 있다. 이미 고대 중국인들의 머릿속에서는 현대의 색상환표가 이미 그려져 있었던 듯싶다. 


그래서, 실제로 青은 청록(青綠), 암청(暗青)에서 처럼 다른 색과 어울려 쓰이지 단독으로 색을 가리키는 경우가 별로 없다. 특정한 색을 가리키기에는 그 추상성이 방해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파란 산이 있을 리 만무하지만 청산(青山)이라 한다. 사전을 찾아봐도, '푸르다(青)'는 '밝고 선명하다'로 설명되고 있어서 색 그 자체가 아니다.


결국, 青은 색깔이나 어떤 상황 또는 상태의 밝고 선명함을 나타내는 글자이지 색 그 자체가 아니다. 이와 같은 青(푸르다)의 추상성은 영어 단어에도 나타나 있다. 푸른색, ‘Blue’는 우울하다는 뜻으로도 쓰인다. 어쩌면 색에서 감상이 나온 것이 아니라 역으로 감상에서 색이 나왔을 수 있다. 우울(Blue)할 때 인간을 더 슬픔에 젖게 하는 색들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인간들이 그 색에 '우울(Blue)'이라고 이름 붙였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연두색과 남색 사이 색깔들이 내는 주파수는 사람을 우울하게 만드는 작용을 한다.


청색(青色)은 하늘, 바다, 강 등 자연 상태에서 너무나 흔하게 발견되는 색이다. 하지만, 그것들은 빛의 산란 효과 때문에 그렇게 보이는 것일 뿐 원인 색소가 존재하지 않는다. 대자연 속에 풍부히 넘치는 청색이련만, 옛사람들은 청색(青色) 색소를 쉽게 구할 수가 없었다. 원시 동굴화나 고대 벽화에 색채는, 빨간색, 노란색, 갈색, 흰색, 검은색 등으로 상당히 다채롭지만, 유독 청색이 발견되지 않는 이유다.


서양에서는 이슬람 문화의 영향으로 12세기에 이르러서야 청색을 겨우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다. 교회의 스테인 글라스가 대표적이다. 그전까지 청색은 불길하고 우울한 색으로 치부되었지만, 그 후로 청색은 성스럽고 고귀한 색으로 변한다. 중국 역시, 青자가 갑골문에서는 결여되어 있다가 금문부터 나타나는 것을 보면 청색이 퍼지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린 듯하다. 青자에 광정(鑛井)이 포함된 것을 보면 청색 색소를 광물에서 힘들게 구했다는 것도 알 수가 있다. 아마도, 중국에서 청색이 일반화된 것은 쪽에서 염료를 추출하면서부터였을 것이다. 쪽을 가리키는 람(藍)은 통일 중국 진의 소전(小篆)에서부터 나타나니 이 또한 한참 후이다. 青자가 만들어진 후로도 수백 년이 걸렸다.


사족, 4년 반 주재원 생활을 마치고 귀국할 때, 한 중국 친구가 송별의 뜻으로 한시 한 구절을 알려 주었다. 아마도, '당신 남은 생은 이렇게 좀 살아 보세요!'라는 의미였을 게다. 남송 시절에 원에 대한 구국항쟁에 평생을 바친 충절의 용장이면서 뛰어난 시인이기도 했던 신기질(辛弃疾(南宋, 1140~1207))이, 자신의 굽힘 없는 기개와 넘치는 호방함을 멋지게 읊어낸 시구다.


我见青山多妩媚,

내 보아하니 청산이 얼마나 아름답던지,

料青山见我应如是。

청산이 나를 보고도 응당 그렇다 하리!


퇴직하기 전까지 명함 뒷면에 새겨 한동안 들고 다녔다.


'청산(青山)에 살어리랏다!'는 푸른 산에 안거(安居) 하겠다는 안빈낙도(安貧樂道)의 뜻이 아니다. '밝고 선명한 인생'을 추구하면서 치열하게 살아가겠다는 강렬한 의지와 신념을 표현한 것이다. 틀림없이 800년 전 험난한 시대를 살던 신기질(辛弃疾)의 의중도 그러했을 것이다.


주) 1. 청금석(青金石)을 중국인들은 천람석(天藍石)이라고 부른다. 하늘빛을 닮은 쪽색 나는 돌이라는 뜻인데, 청색을 표현하는 글자는 여기서도 제각각이다.

2. 한자는, 보이지 않는 것 또는 보이지만 그 형상을 정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해서 두 가지 선택을 한다. 하나는 치열하게 추상성을 따져서 만들면 지사자(指事字)가 된다.  다른 하나는, 표현 대상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보이는 것으로 치환하는 타협을 쓰면, 상형자(象形字)나 형성자(形聲字)가 된다. 青(푸를 청)은 '푸르다'의 추상성을 초목의 연두 빛 싹과 부정형의 청색 광물을 캐내는 구덩이로 대체해서 표현한 글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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