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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공지마 May 21. 2022

[한자썰55] 黄, 빛나고 시들고...!

귀한 것 바르게 지키기

黄(누를 황): 모양자 龷(-) + 由(말미암을 유) + 八(여덟 팔)


黄(누를 황)은 갑골문에서 패옥(佩玉)을 두르고 당당하게 서있는 사람이다. 패옥은 왕과 왕비, 문무백관 같은 고위 지배층이 그들의 존비를 드러내는 치장인데, 자신의 무기나 상서로운 형상을 한 옥(玉)을 달아서 허리에 둘러(佩) 늘어뜨렸다. 그래서 패옥(佩玉)이다.(1, 2, 3)


그 비슷한 유적이 신석기까지 거슬러 올라가 발견이 된다 하니, 인간의 계급의식과 가진 자의 과시 그리고 사치는 가히 본능이라 하겠다.


본능은 한번 동(動)하면 제어하기 어렵다. 서주(西周) 시대에 이르면 상단부가 '廿(스물 입)'으로 변한다. 패옥으로는 만족하지 못하여 그 귀하신 머리 위에 관(冠)이나 모(帽)를 더 얹은 것이다. 주(周) 나라가 봉건제를 기반으로 하는 왕권 중심의 지배체제를 형성해 가는 정황으로 읽힌다. 드디어 黄은, 황제(皇帝)를 줄여 부르는 간칭(簡稱)이 되고, 오방위(동서남북 및 중앙)에서 중앙을 상징하고, 한나라 이후에 황제의 복식과 장식들을 꾸미는 색으로 쓰인다. 주 1)


중국사람들은 黄(누를 황)은 땅의 색이라 한다. <천자문>의 첫 사언(四言), 천지현황(天地玄黃), '하늘은 아득하고 땅은 누렇다'에서 가르치는 내용이다. 중국 고대인들 눈에 햇빛이 비치는 땅의 색이 노랗게 보였고, 그 땅색이 노란색의 기준이 된 것이다. 주 2)


초기 중국인들이 모여 살던 황하 중류 하변(河邊)에 흘러와 쌓인, 철분이 적고 양분이 많은 충적토들이 햇빛에 쬐어 마르면, 그 색이 누렇게 보였을 테니 충분히 그럴만 하다. 이 때문에 黄을 田(밭 전)과 光(빛 광)을 겹쳐 그린 글자라는 주장도 있다.


黃에는 ‘말라 시들다’, ‘익다’라는 뜻도 있다. 나뭇잎이나 풀잎이 시들거나 곡식이 익으면 황색으로 변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인생이나 권력의 황금기(黃金期)라는 말에 붙인 황은, 지나면 스러질 운명을 예견해서 붙인 말일지도 모른다. 힘 있다 돈 있다 배웠다고 함부로 나대면 낭패당할 날이 꼭 온다.


黃은 또 어린아이를 가리키면서 동시에 늙은이를 가리킨다. 빛나고 값진 황금을 상징하지만 열병(熱病)이나 병들고 지친 모습을 나타내기도 한다. 젊음은 아무리 푸르러도 한 세대를 이기지 못하고, 재부(財富)는 끝없는 욕망을 채우지 못한다. 黃으로 배운다.


사족, 횡령(橫領)은 공금이나 남의 재물을 불법으로 취한 것을 가리키는 말이다. 橫(가로 횡)은 원래 대문의 빗장을 뜻했다. 빗장은 좌우 가로로 작동하니 차차로 빗장의 의미는 없어지고 지금은 가로로 쓰인다. 중국사람들은 세로에 비해 가로를 불경하다 여긴다. 그래서, 橫에는, 비정상이다, 제멋대로다, 거스르다, 방자하다, 사납다라는 부정적인 의미로 잘 쓰인다. 횡령(橫領) 또는 전횡(專橫)의 橫이 바로 그 橫이다.

그렇게 쓰이게 된 연유를 글자 橫을 나누어 木+黄으로 보면 금세 알아챌 수가 있다. 황제가 사는 황궁(黃)의 문을 여닫는 일을 맡은 자가 빗장(木)을 풀어 줄 때면 얼마나 거들먹거렸겠는가?! 황제는 또 그 자의 사나움을 책하기는 커녕 자기 맡은 소임을 충실히 한다 여겨 어여삐 여겼을 것이다.


그 자가 못되게 전횡(專橫)을 부리다 보면 그 위세로 금전엔들 손을 대지 않았을 리가 없다. 그 짓이 오죽이나 지독했으면 중국사람들은 '가로'라는 말 하나를 두고도 그렇게 진저리를 부려 놓는다. 어디 황궁만이랴...! 장안에 힘 좀 쓰는 웬만한 대갓집들도 다 그 흉내를 내었을 것이다. 그런 사유로 애꿎은 대문 빗장만 오만 부끄러운 소리를 다 듣게 된 것이다. 귀한 것에는 사심 있는 자를 두면 늘 사달이 나게 마련이다.


직(職), 즉 소임(所任)을 힘으로 알면 橫이 된다. 그게 잘못인 줄도 모르고 계속 가다가는 말짱 荒(거칠 황)되기 십상이다. 荒은 멸망시키다, 버리다, 어리석다라는 뜻이다. 噗哧。  


주) 1. 음양오행사상은, 동-청, 서-백, 남-적, 북-흑, 중앙-황으로 방위와 색을 짝짓는다. 그중에서 만물의 중앙인 땅을 상징하는 황색을 가장 중요한 색으로 본다.

2. 천지현황(天地玄黃)에서 현(玄)을 '검다'로 새기면 '하늘이 검다'가 된다. 날이면 날마다 먹구름이 가득한 하늘은 없으니 적절치 않다. 玄에는 '아득하다'는 뜻이 있으니, '하늘은 아득하게 멀다'라 푸는 것이 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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