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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공지마 Jun 22. 2022

[한자썰59] 朋, 오래, 함께 그리고 무엇을...!

친구여 모습은 어딜 갔나, 그리운 친구여~~

朋(벗 붕) : 月(달 월) + 月(달 월)


朋(벗 붕)에는 月(달 월)이 두 개 나란히 서있다. 그런데, 정작 갑골문 朋을 보면 月은 아무 관련이 없다. 생뚱맞게 조개 셋을 묶은 줄 둘을 무언가에 걸어서 길게 늘어뜨려 놓았을 뿐이다.(표 1, 3) 그 모양이 서로를 소중히 여기며 가까이 어울리는 벗 사이를 닮았다고 해서, 벗을 가리켜 朋이라 썼다. 고대에는 조개가 화폐로 쓰였으니 朋은 벗이 값진 존재라는 의미도 함께 내포한다. 주 1)


중국 고대에 조개를 다섯 개씩 줄에 엮은 꾸러미 두 개를 일붕(一朋)이라 해서 비교적 큰돈을 세는 단위로 썼다. 지금으로 치면 지폐 백장 묶음처럼 흔하게 통용되던 돈다발이 붕(朋)이다. 춘추전국 시대에 들어서 청동 화폐 명도전(明刀錢)이 조개화폐를 대체하면서, 붕(朋)은 돈과 멀어져서 단지 벗으로 그 뜻이 굳어지지만, 어쨌거나 태생적으로 붕(朋)은 돈과 연분이 끈끈하다. 주 2)


‘유붕자원방래 불역락호(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 친구가 있어 멀리서 찾아오니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는 논어 학이편(學而篇)에 나오는 문구다. 혹자는, 朋이 돈과 관련이 있었다는 이유로, 이재(理財)에 밝은 중국 사람들이 사업상 친구를 유독 반긴다는 뜻이라고 폄(貶) 하기도 한다. '평소 가깝게 지내지 않던 어떤 사람이 타방에서 먼길을 찾아와 돈벌이를 함께 궁리하자고 하는데, 어찌 반갑고 즐겁지 않겠는가!'라는 해석이 되는 것이다.


‘벗’에다가 무에 나쁜 의미가 연루되랴 싶겠지만 그런 용례가 있다. 붕당(朋黨)! 권력 쟁취나 반대파 배척을 위해서 결탁한 집단이나 파벌을 가리킨다. 그 자체로 나쁠 것은 없다. 붕당이 비판과 견제를 집단화시켜서 변화의 추진력을 높이는 효과를 낳기 때문이다.^^ 붕비(朋比)! 사안의 옳고 그름을 가리고 않고 자기네 편만을 옹호하는 폐해를 가리킨다. 붕당을 짓다 보면 여지없이 붕비 하게 되고, 일단 붕비 하기 시작하면 건강한 비판과 견제는 사라져 버린다. ㅠㅠ


붕당에 붕비 하면, 공통의 지향(指向)과 의의(意義), 교류(交流), 화합(和合) 따위는 망각되고 자기들 눈앞에 이해관계만을 급급해 쫓는 천박한 난장이 벌어진다. 누가 누구를 책망할 수도 없는 내로남불이 넘쳐 나니 부끄러워할 염치조차 차릴 겨를이 없다. 그 자체로야 별 문제랄 것이 없는 붕당이 급기야 나라를 어지럽히고 망조(亡兆)가 들게 하기도 한다. 朋(벗 붕) 자를 만든 '돈다발'의 저주다.


그래서, 요즘은 정당(政黨)이라 하지 붕당(朋黨)이라 하지 않는다. 政(정사 정) 자는 잘못(不正)을 바로(正) 잡는(攵(칠 복)) 일을 가리키고, 그런 일에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정당(政黨)을 만든다. 바른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 늘 공부하고 국민의 뜻에 귀 기울여야 한다. 부정을 막고 정을 실천하려면 스스로가 바른 사람이 되기 위해서 자신을 향해 채찍을 들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정당인(政黨人)이다. 안타깝지만 작금의 정치권 현실을 보면, 그냥 붕당(朋黨)이라 해도 족해 보인다. 하도 이 당이나 저 당이나 그게 그거라서, 굳이 왜 정당(政黨)이라는 말을 따로 만들었을까 싶다.


전서(篆書)에서는 갑골문이나 금문 朋이 계속 쓰이지 않게 되고, 그 발음이 동일한 봉(鳳)의 한쪽 날개로 대체된다.(표 4) 통일 중국 진에서 지금의 동전처럼 둥글게 생긴 반량전(半兩錢)이 표준화되어 전역으로 확산하자, 벗과 같은 값진 것에 대한 조개 묶음 朋의 상징성이 더 이상은 어울리지 않게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주 3)


() 모든 새의 으뜸이라서 봉이 날면 다른 모든 새들이 함께 날아오른다. 서로 뜻이 통하는 벗들이 함께 어울려 다니는 것과 닮았다. 전서(篆書) 朋은 죽은 미물 조개껍질 朋이 신성한 봉황 朋으로 화려하게 변신하는 순간이다. 돈으로 속화된 벗의 명예 회복을 위한 한자의 노력이 참으로 가상하다. 이후 자형 변천에서 모든 朋은 전서(篆書)  하부에 봉황의 깃털을 간략화하거나 서체에 변화를  것들이다. 기실(其實) 朋은 조개도 돈도 아니고, 높이 비상하는 () 빛나는 깃털이다. 그러니,  세상에 있을지 없을지   없는 이상향으로서의 친구다. 진정한 친구를 얻기란 ()만큼이나 지난하다. ( 5~10)


사족, 벗을 뜻하는 다른 글씨에( ) 있다. 갑골문에서는 오른손 둘이 앞으로 뻗어 있는데, 무언가를 위해서 힘을 합쳐 일을 하고 있는 장면이다. ( ) 지연, 학연, 혈연 등의 '끼리끼리 ' 한편, ( ) 관리(官吏) 간에 벗을 가리켰었다고 한다. 전자는 서로 간에 속성이 같고 오랜 시간을 같이 보낸 벗이고, 후자는 속성도 다르고 같이 지낸 시간도 짧은데 맡은 일과 뜻이 같은 벗이다. 전자는 연으로 맺은 벗이고, 후자는 직과 역할로 맺은 벗이다. 지금은   차별 없이 벗으로 쓰이지만, 굳이 따지자면 그런 차이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말 벗의 다른 , 친구(親舊) 朋에 가깝다. 친구의 의미가 오랫동안 친하게 사귀어  사람이기 때문이다. 곽경택 감독 2001년작 영화 <친구> 朋의 한계를  보여 준다. 냉정히 말해서 영화 <친구> 소시  몰려다니며  놀던 일진들이 조폭 이야기다. 불안스럽게 맺어진 우정은 배반으로 이어지고 그로 인해 파멸로 치닫는 인생 허무극이다. 바름도 없고 뜻도 없는 '끼리끼리 ' 얼마나 비루한 지를 보여 준다. 리얼리즘과 복고주의적 향수를 제외하면 사람들이  영화에  그리도 열광했는지 개인적으로는 이해가   된다.


지금 만나는 친구들이 ( )인지 ( )인지  한번 따져 봐야 하겠다. 다행히도 요즘은 이러니 저리니 려 쓰느라 불편하지 말라고  둘을 붙인 朋友(붕우) 일반적으로 쓴다. 끼리끼리 지내는 흥취도 챙기고, 자기들 것만 챙기지 않고 의미 있는 무언가를 함께 하며 지내는 그런 친구, 그게 朋友(붕우). 어차피 정당(政黨) 노릇 제대로 못하는데, 붕우당(朋友黨)이라 함은 어떨까 싶다. 제발 싸우지  말고 힘을 합쳐서 뭐라도   내시라고...! 친구여 모습은 어디 갔나, 그리운 친구여~~~~. 哎呦。


주) 1. 묶은 조개의 개수는 세 개다. 고대인에게 있어 셋은 꼭 정확한 셋을 의미하는 게 아닐 때가 있다. 셋 보다 많은 것을 셋이라 표현한다. 그러니 山은 봉우리 셋을 가리킨 게 아니다. 많은 산봉우리들이 모여서 솟아 있는 광경이다.

2. 貝(조개 패) 다섯 개를 系(맬/묶을 계)라 하고, 열 개 즉 系(맬/묶을 계) 두 개를 朋(벗 붕)이라 했다. 전국시대 명도전(明刀錢)이나 통일 진의 반량전(半两錢)에 구멍을 만들어 줄을 꿰게 한 것은 조개화폐의 전통을 이은 것이다.

3. 朋과 鳳은 우리 발음으로는 붕과 봉이고, 중국 발음은 펑(병음 peng), 훵(병음 feng)으로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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