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웃고 떠들었어요.
들쑥날쑥한 식습관이 드디어 사고를 쳤다. 더 큰 사고를 막기 위해 난 역류성 식도염과 비염 약을 먹기 시작했다. 퇴직 2년 만에 세끼 밥과 복용해야 하는 약의 양이 비슷해졌다.
부엌 창으로 드나드는 바람에 식탁 위 약 봉투가 떨고 있다. 난 봉투 밖으로 고개를 빼죽 내민 약들을 바라봤다. 눈꼬리가 처지며 한숨이 나온다. 나이 들면 약으로 배를 채운다더니 내가 벌써.
천둥번개를 치며 곧 소나기가 내릴 것 같은 먹구름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난 신난 음악을 들으며 기분 전환을 하려 핸드폰을 열었다. 위쪽에 흐릿하게 금이 간 액정이 눈에 거슬렸다. 마음이 더 깊은 곳으로 빠져들려고 한다. 이럴 땐 쏭알쏭알 싸리잎 같은 수다가 최고인데. 전화를 하자니 액정에 금이 간 핸드폰이 거슬려 만지기 싫고. 커피숍이라도 갈까 했지만, 목이 쓰리고.
이것저것 생각하지 말고 그냥 낮잠이나 잘까 하다 달력과 눈이 마주쳤다. 빨간 동그라미를 그려놓은 날짜가 보였다.
'아! 맞다. 내일 와인 톡톡 쓰리녀 모임이지. 내일 실컷 웃고 놀아야겠다.'
난 두 친구와 직장에서 30대에 만났다. 초등학교 동창인 둘은 대학 졸업 후 첫 직장에서 다시 만났다고 한다. 또래인 우리 셋은 처음엔 동지애로 뭉쳤다. 복도를 오고 가며. 쉬는 시간 급하게 달려가던 화장실에서. 4교시 후 밥 달라고 소리 지르는 위장을 달래러 간 급식실에서. 우리들을 쑤셔대는 온갖 스트레스를 틈틈이 주고받는 눈빛과 수다로 풀었다.
하루 이틀 우리를 힘들게 하는 스트레스로 탑을 쌓다 보니 벌써 30년이 됐다. 그 탑 맞은편엔 즐겁고 행복했던 순간들이 모인 성(城)도 있다. 우린 긴 시간을 함께 하며 어제의 동지에서 오늘의 친구가 되었다. 1년에 두세 번 정도 국내 여행을 다니기도 했다. 셋 다 와인을 즐겼다.(맥주파인 난 맥주로 마무리를 했다.) 마치 여고생처럼 낙엽이 굴러가는 것만 봐도 배를 잡고 웃는 것도 닮았다. 그래서 우린 '와인 톡톡'이라고 모임명을 정했다. 엄격한 규칙이나 구속이 없는 자유로운 영혼들의 만남은 바람 가득 찬 바퀴처럼 잘 굴러갔다.
흐린 수요일 오전 10시 30분. 셋이서 하동 화개 장터에 차를 두고 쌍계사까지 걷기로 했다. 천변 주차장을 올라오니 모퉁이에 '학교급식 옥수수빵'집이 보였다. 구수한 빵 냄새가 자석인 듯 나를 끌어당겼다.(빵순이인 난 식도염 약을 먹는 중이라는 걸 잊었다.) 난 친구 둘을 제치고 뛰었다. 이런 내 모습을 뒤에서 바라보며 둘은 그저 웃기만 했다. 그러든지 말든지. 난 빵집 문을 급하게 열었다. 초등학교 때 먹던 그 냄새 그대로인 빵이 날 반겼다. 빵에 이끌린 건 나였지만, 계산대 앞에 나선 건 둘 중 한 명이었다.
오븐에서 이제 막 나온 따뜻한 빵을 사들고 길을 따라 걸었다. 길 양옆은 벚나무들이 든든하게 지키고 있다.
우리가 그곳에 도착하기 전 벚꽃들은 올해 할 일을 마쳤는지 이미 떠나고 없었다. 그들 자리를 우리 셋과 초록 이파리들이 채웠다. 교사라는 이름으로 아이들과 웃고 울었던 퇴직자들이 꽃이 되어 길을 걸었다. 바람과 함께 이파리들이 춤을 추며 빵 냄새를 풍겼다. 어쩜 내 손에 들고 있던 빵 냄새였을지도. 평일 오전이라 간간이 지나가는 자동차만 있었다. 우린 길 주인인 양 느릿느릿 팔자걸음으로 걸었다. 가방을 둘러멘 셋에게서 풍기는 기세에 놀란 길고양이가 수풀 속으로 숨었다. 혹시 두 친구에게서 일본어와 음악 소리가 들려 놀랐을까?
벚꽃이 환하게 웃고 있을 땐 사람들로 북적였을 십리벚꽃길 옆으로 화개천이 있다. 할 일 다 하고 늘그막(아직은 아니라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고 싶지만, 이미 할머니가 된 친구가 있어서. ㅎㅎ)에 꽃이 된 우리 셋처럼 화개천도 한가로움에 젖어 소리를 크게 지르며 흘렀다. 이틀 동안 내린 비 덕분이다. 우린 용감한 투사처럼 흐르는 물을 찾아 내려갔다. 시원하게 흐르는 물과 큰 나무들의 푸른 잎들. 그리고 흐르는 물소리를 이기려고 더 크게 웃는 우리 셋. 너럭바위 위로 올라앉은 우린 고소한 옥수수 향이 넘실대는 빵을 뜯었다. 입안으로 달콤함이 들어오자 빵 봉투를 날려 나를 행복하게 했던 제자가 생각났다.
일주일에 2~3번씩 빵 선물을 받은 적이 있다. 주로 보건실 창문으로 날아들었다. 학교 매점에서 샀을 빵 2~3개와 노트 귀퉁이를 찢어 만든 메모가 함께였다.
'이거 드시고 더 많이 웃으세요.', '쌤! 오늘 종례 빨리해 주실 거죠.', '음악쌤, 일어쌤과 드세요', '쌤^^빗소리 들으며 커피랑 드세요.'…
2학년 담임으로 교실 문을 열던 첫날. 내가 교실 문을 열자마자 열렬히 환영하더니. 그때부터 난 그 녀석과 빵을 던지면 받아먹는 사이가 되었다. 출근하다 만나면 내 가방을 무조건 뺏어 들고 달리던 녀석은 2년 동안 나와 함께 했다. 조회, 종례시간에 했던 사소한 이야기도 놓치지 않던 녀석은 졸업할 때까지 나를 '우리들의 여왕마마'라고 불렀다.
지금은 30대 청년이 된 녀석은 나를 '여왕마마'가 아닌 '쌤'이라고 부른다.
어느 화가가 그림을 그린 듯 이렇게 정겹겠는가. 이건 사람 속에 사람이 있으니 가능한 사랑 그 자체였다.
걷다가 만난 새들에게 나는 손을 흔들었다. 이름 모르는 들꽃들이 밟힐까 봐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기다 보니 어느새 십리벚꽃길 끝에 있는 쌍계사에 도착했다. 그곳엔 산채비빔밥과 막걸리, 도토리묵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입맛을 다시면서 지금까지 걷던 속도에 전기 모터를 부착시켜 절을 후다닥 둘러봤다. 빨리 달라고 보채는 목구멍을 달래기 위해 우린 꽉 찬 식탁 위에서 숟가락 젓가락 행진곡을 불렀다.
두둥실 보름달처럼 솟아난 배를 애써 감췄다. 두 걸음 걷고 한번 쉬는 속도로 우린 화개 장터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오후 4시 50분. 오전엔 숨었던 해가 구름 사이를 비집고 나왔다. 왕복 13KM 정도를 걸었지만 피곤하지 않았다. 다만 둥글둥글한 배만 조금 무거웠을 뿐. 다리도 가뿐했다. 우린 몸을 비틀며 스트레칭 비슷한 것을 했다. 서로의 모습을 바라보다 배꼽이 배를 떠나도록 웃었다. 손발을 다 턴 후 또 보자며 손을 흔들었다.
할 일 다한 벚꽃은 어디론가 떠났지만, 우린 퇴근할 시간이라며 각자의 집으로 갔다.
웃고 떠들며 놀 때는 재채기도 콧물도 목구멍 쓰라림도 나를 아는척하지 않았다. 그 증상들은 집으로 돌아온 나에게 빛 보다 빠르게 달려와 안겼다. 어떻게 다가오는 것들을 내치겠는가. 난 힘들었지만 다시 그 증상들을 안았다. 저녁 약을 입에 터는데 전화가 왔다.
"강원도 여행을 떠나기 전 이틀 동안 훈련이 있으니, 내일 4시 40분까지 등산화 신고 업동 저수지로 오세요."
"등산화 라니?"
놀란 난 약을 뿜으며 물었다.
탁구장에서 손을 맞추다 친해진 초등학교 선생님이 기억도 가물가물한 발까지 맞추자는데…
여전히 날 잡고 흔들어대는 증상들을 데리고 어떡하지? 심란하지만 내일이 기다려지는 설렘에 난 벌어진 입을 다물었다. 4월이 서서히 저물어가는 밤하늘엔 별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