쌤, 우리 소풍 날로 먹어요

소풍이 그리운 날

by 김광희

5월 황금연휴 동안 강원도로 여행을 가자더니 1일 1 등산이란다. 설악산을 위해 이틀 동안 훈련이 있으니 나오라는 전화를 받았다. 내 가슴으로 바위 하나가 큰 소리를 내며 굴러왔다. 난 가슴을 쓰다듬으며 동생 등산화를 빌려 신고 봉화산 아래에 있는 업동호수 주차장으로 갔다.

퇴직 선물로 받은 등산 스틱을 손에 꽉 쥐고 크게 숨을 뱉어냈다. 차에서 내리기 전 등산화 끈도 조였다.


대학 입학으로 딸이 집을 떠난 그 해 4월. 어느 날 퇴근하고 집 현관문을 여는데 집안 공기가 냉동고 같았다. 봄 햇살이 포근하고 따뜻해서 운전대를 잡은 손엔 졸음이 노크를 했었는데. 집안 공기는 정반대였다. 훈기(薰氣)를 찾아 며칠 전부터 갈까 말까 고민하던 탁구장으로 갔다. 주거니 받거니 랠리를 하던 모자(母子)가 두리번거리는 나에게 탁구 라켓을 흔들며 말했다.

"어서 오세요. 저도 며칠 전부터 왔는데 우리 같이 탁구 배워요."

낯선 걸음이던 나는 그녀의 환한 손짓에 홀려 바로 등록을 했다.

초등학교 선생님이던 그녀와 난 관장님께 레슨을 받으며 파트너가 되었다. 한주먹 거리인 공으로 손을 맞췄더니 발도 맞추고 싶어졌다. 우린 당시 큰 인기를 끌었던 제주도 올레길을 찾았다. 거의 20KG이나 되는 배낭을 메고 걷고 또 걸었다. 바닷가를 걸을 땐 정자나 너른 바위가 보이면 겁 없이 대자(大字)로 누워 한낮 햇빛과 싸우기도 했다. 손발을 다 맞춰본 우린 산(山)으로 눈길을 돌렸다. 그녀 친구들도 하나둘 모여 5~6명이 한 팁이 되었다. 우린 주말 아침이면 커피와 가래떡을 들고 여기저기 산행(山行)을 즐겼다.


내가 무릎을 다치면서 우리들의 주말 등산과 탁구는 멀어지고, 그 자리를 커피숍이 채웠다.


훈련 첫날. 다행히 등산을 아직 기억하고 있는 내 다리 덕분에 봄꽃들을 즐기며 걸었다. 이런 나에게 초등학교 2학년 담임인 그녀는 마치 학생을 칭찬하듯. 1일 1 등산 정도는 충분히 해 내겠다며 사진까지 찍어줬다. 몇 년 만에 등산화에 스틱까지. 이런 내가 예뻐(ㅎㅎ) 난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을 변경했다.


고생한 다리를 다독이며 집으로 돌아오는데 전화가 왔다. 2년 전부터 우리나라 100대 명산을 정복 중이라는 졸업생이다.

"쌤! 등산 가셨네요. 거기 어딥니까?"

차마 우리 동네 야트막한 산이란 말은 못 하고, 계속 떠들어대는 녀석 이야기만 들어줬다.

요즘 여수국가산업단지가 어렵다는 것부터 3학년 봄 소풍 이야기까지 이어졌다.

3학년 마지막 소풍(그땐 1학기 말이면 대부분 학생이 현장 실습을 나갔다.)은 학급별로 장소를 선정했다. 난 장소 선정 회의가 끝났으니 종례를 해달라는 반장 말에 교실로 갔다. 칠판에 글씨가 커다랗게 쓰여 있었다.

'쌤, 우리 소풍 날로 먹어요.'

무슨 말이냐고 물었더니 각자 집에서 쉬게 해 달란다. 하루 종일 게임하고 뒹굴면 잊지 못할 소풍이 될 거라며. 기가 막혀 째려보는 나에게 학급 전체 아이들이 떼를 썼다.

"쌤! 기억나죠. 그때 우리가 계속 소리 지르니깐 출석부로 교탁을 두드리며 엄청 화 내신 거."

아! 나도 한 성깔 했구나. 까마득히 잊었는데.


녀석의 잊지 못할 고등학교 마지막 소풍 이야기에 문하연 작가님의 『소풍을 빌려드립니다』책이 생각났다.

아픔을 꽁꽁 싸맨 사람들이 복합문화공간인 소풍에서 꽉 묶여있던 매듭을 풀어내는 치유(治癒) 소설이다. 누가 알까 봐 겹겹이 가슴에 묻어둔 색깔과 모양, 크기가 다른 아픔과 슬픔. 그 무거운 보따리가 열리면서 두 다리 뻗고 실컷 울게 만드는 곳 소풍.

책을 읽다가 57페이지, 첫눈처럼 온 손님이 되어 나도 그곳으로 스며들었다. 연재와 호수를 바라보며 따뜻한 커피를. 아니 목에서 술술 넘어가는 맥주를 마시면서 울었다. 너 아픔이 내게로. 내 아픔이 너에게로. 글 속으로 조금씩 사라져 가는 고통을 바라보며 서로가 서로를 아파했다.

소풍에 빠지면 안 되는 '김밥'과 '사이다'가 있는 복합문화공간. 호숫가에 자리 잡은 브런치가 색다른 그곳으로 나도 달려가고 있다. 손가락이 아파도 기타를 배워 '뚝딱뚝딱 콘서트' 무대에 서고 싶어서다. 사람 곁엔 사람이 최고라는. 페이지마다 사람 냄새가 가득한 글을 읽으며 난 막힌 가슴이 뻥 뚫렸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던 날. 나는 우리 동네 골목골목을 기웃거리며 '소풍'을 찾아 헤맸다.


집에 도착할 때쯤 내일 훈련도 잊은 채 명랑한 중년이 되어 말했다.

"ㅇㅇ아, 공단 사정이 어려워져도 근무 잘하고 있는 네가 장하다. 짜식! 담임이 누구였는지 몰라도 잘 컸어. 그치. 100대 명산 중 남은 84개 산도 천천히 잘 오르고. 쌤한테도 지금처럼 종종 소식 전하고. 그때 못 간 날로 먹는 소풍. 우리 한번 가자. 애들 다 불러 모아."

<사랑이 넘치는 5월 이 책을 추천합니다. ^^>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