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미성숙(未成熟)에서 성숙(成熟)을 향해 달려가는 중.
K야, 요즘 어떻게 지내니? 만나서 긴 이야기를 하고 싶다.
4월에 결혼할 딸을 데리고 어제 시댁에 다녀왔거든. 생각해 보니 6년 만에 갔더라.
그곳은 변함없는데, 시어머니 허리는 더 굽어지고 주름도 깊어졌더라.
전형적인 80대 모습이신 거지.
네가 알다시피 내가 그렇게 독한 사람은 아닌데 ‘짠하다’라는 마음이 없었어.
그냥 ‘헛웃음’이 나온다고 해야 할까? 이런 내 모습이 상상이나 되니?
난 그 누구도 아닌 시댁 보란 듯이 잘 살고 싶었단다.
나에게 못되게 한 것도 아닌데 스스로 ‘한(恨)’이 맺힌 거지.
남편 보내고, 초등학교 입학할 딸을 데리고 친정으로 오던 날이 떠오른다.
아무 생각도 없이 그저 멍한 눈으로 왔었지.
네가 그때 내 모습을 봤다면 텅 빈 눈을 봤을 텐데 아쉽다.
그날 같이 왔던 시어머니가 친정엄마한테 했던 말씀이 여전히 아프다.
“아이고! 사돈이요! 사돈 딸은 살았는데 우리 아들은 죽었네요”
내가 온다고 기다리던 친정 식구들은 당황해서 헛기침만 하더구나.
‘과부, 홀아비’ 난 이 단어가 끔찍하게 싫어 국어 백과사전에서 사라졌으면 한다.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님을 일컬은 단어는 없단다.
오죽하면 없을까? 감히 그 아픔을 감당할 단어가 이 세상엔 없는 거지.
그걸로 스스로 위안했어. 난 자식이 살아있으니깐. 그래도 내 마음은 헛헛하기만 해.
너도 알다시피 난 그 후로도 매년 2번의 명절과 방학엔 시댁을 다녔잖니.
우리 둘을 안쓰럽게 바라보는 시댁 식구들이 미웠어.
그땐 경제적인 도움이 더 절실했으니깐. 그들의 마음이 아닌 현물이 받고 싶었거든.
가진 게 없어서라는데 서운하고 속상하더라.
휑한 마음과 텅 빈 지갑이 날 더 초라하게 만들어서 말이다.
K야, 대학생이 된 딸이 어느 날 내게 이러더구나.
“엄마, 나도 할머니 댁에 가기 싫은데 엄마는 오죽할까 싶어. 앞으로 명절에 나 혼자 갈게.
그냥 엄마는 여기 있어.”
고등학생 때까지 같이 다니던 곳을 이제 혼자 가겠다는 딸 말에 은근히 좋았지만 좀 미안했어.
내가 짊어져야 할 것을 딸에게 미룬 것 같아서 말이다.
둘이 여행 가는 길에 잠깐씩 들르긴 했지만, 꼭 가야 한다는 의무감은 던져버렸어.
가까운 이웃보다 더 먼 마음으로 그냥 그렇게 지냈지.
시간이 훌쩍 흘러 서른 중반이 돼가는 딸이 결혼하겠다고 한다.
그래서 6년 만에 미리 연락드리지 않고 어제 시댁을 간 거야.
경로당에서 달려온 시어머니를 본 순간 뭔가 뜨거운 것이 올라왔어.
난 ‘꿀꺽’ 침 한번 삼켰지. 올 4월에 손녀가 결혼하니 앞으론 명절 때 손녀도 못 올 거라고.
드문드문 왔던 나도 오늘 이후엔 오지 않을 거니 기다리지 말라고 말씀드렸지.
지금부터가 내가 벼르고 벼르던 말과 행동이야. 눈을 똑바로 뜨고 당당한 목소리로 이야기했어.
“곧 설날이고 딸 결혼식도 앞두고 있어 200만 원을 챙겨 왔으니 받으세요.”
아이처럼 소리 내어 우시면서 이렇게 대답하시더라.
“어미야, 네가 너무 젊어서 딸을 버리고 가버릴 거로 생각했다.
고맙다. 이렇게 잘 키워주고 잘 살아줘서. 네가 저 애를 버리고 갔음 내가 어떻게 키우겠니?
이렇게 착한 너를 오해했다. 미안하다….”
옆에 앉아있던 딸은 더 큰 소리로 울더구나.
난 어이없어 웃었어. 재혼하지 않고 지금껏 사는 게 착한 일이니? 요샛말로 ‘헐’이지.
K야, 내 마음 나도 모르겠다.
우리 모두를 얽히고설킨 인연이라는 굴레에 묶어두고, 홀연히 떠난 남편이 밉다.
울음을 그친 시어머니는 부엌으로 가시더라. 난 한사코 거부하고 물 한 잔만 하고 일어섰지.
그 사이 시어머니는 김치, 참기름, 땅콩 등을 챙기면서 코 맹맹한 목소리로 말씀하시더라.
“내가 이 돈을 어떻게 받니?
이렇게 살아준 것만 해도 고마운데. 예쁘게 키워 이제 결혼도 한다고 하니 정말 고맙다. 어미야."
한사코 받을 수 없다고 우기셨지만, 난 기어이 현금을 두고 나섰어.
기름값이라도 하라고 20만 원을 주시길래 그냥 받았다.
팔순 노인이 주름진 손으로 내 손을 꼭 잡아줬지만, 어떤 느낌도 들지 않아 또 놀랬다.
어른이 된 딸애와 울지 않고 결혼 소식을 통보하고 싶었어.
내가 생각했던 소심한 복수였거든.
그런데 마음이 편치가 않다.
자식 먼저 보내고 죽지 못해 사셨음을 알기에 ‘짠함과 서글픔’이 밀려와 울면서 돌아왔거든.
죄송한 마음이 깊어져 간다.
이런 감정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나도 모르겠다. 왕복 540.7km를 운전했던 하루였지만 피곤하지도 않다.
K야, 이게 어제 하루 동안 있었던 일들이란다.
난 여전히 시끄러운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고 있어.
아침부터 수다가 고파 커피 한잔하면서 너에게 글을 쓴다.
딸애 결혼식 마치고 널 만나 긴 한숨을 토해내고 싶다. 이런 나를 꼭 안아줄 거지.
보고픈 K야 그때까지 안녕. 네 친구 H가. 2022년 1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