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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뱃살공주 Dec 28. 2023

꿈같은 또 다른 세상

그 남자가 떠난 지 27년이다.

그 남자가 떠난 지 27년이다.

같이 했던 10년을 훌쩍 넘어선 세월이다. 직장인인 내가 '제사'(음력으로 지내고 있다)라는 단어를 앞세우는 마지막 날이기도 하고. 일 년 중 가장 오랜 시간 보이는 보름달인 콜드문을 바라보며 딸부부, 두 여동생 가족들과 서른아홉 생일을 며칠 앞두고 이곳을 떠난 남자를 추억했다. 결론은 흙으로 후다닥 떠나간 사람이 안타깝고 바보 멍청이 모지리 찐빵이다.


나는 글을 읽기 시작하면서 동네 만홧가게를 자주 갔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돈이 바닥날 때까지 만화를 봤다. 근처 전파상에서는 라디오 소리가 들렸다. 가끔 일일드라마 주제곡이 흘러나오면 보던 만화책을 덮고 그 노랫소리에 빠져들기도 했다. 드라마 내용은 잘 생각나지 않지만, 그 주제곡들은 경쾌보다는 구슬펐다. 가끔 멍하니 노래를 듣다 읽던 만화책을 바닥에 떨어트리기도 했다. 친구들에게 만화책 내용을 들려줬다. 마지막 페이지 이후를 내 마음대로 꾸몄다. 연작소설처럼 들려줬다. 친구들은 다음 이야기를 해달라며 나를 보채기도 했다.     


초등학교 졸업 후엔 만화책보다 연애소설을 읽었다

동네 만홧가게와 학교 도서관을 들락거렸다. 학교 도서관은 신간보다 낡은 책이 많았다. 용돈을 모아 ‘여학생, 여고 시대, 소녀 생활’ 등 당시 유행하던 잡지와 소설을 사봤다. 난 책 속에서 접한 대중가요와 팝송에 빠져들었다. 가수 남진의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를 듣고선, 나도 그림 같은 곳에서 연애소설 주인공처럼 살 거라는 행복한 상상을 했다. 팝송에 나온 단어 뜻을 찾고자 두꺼운 영어 사전을 들고 다니기도 했다. 음정 박자 무시한 채 ‘모리스 엘버트(Morris albert)의 필링(Feelings)’을 부를 땐 애절한 주인공이 된 것 같았다.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귀에 쏙쏙 들어오는 가요를 즐겼다. 성인이 된 후에도 서정적인 발라드 가요와 함께 소설 같은 삶을 꿈꿨다.     


가정주부가 된 나는 라디오와 더 친해졌다

일일드라마나 가요를 들으며 웃고 울었다. 마치 내가 주인공이 된 것처럼 설렘과 흥분 가득 안고 살았다. 여자 운전자가 흔치 않던 1992년. 남편 몰래 운전학원에 다녔다. 2번 만에 합격했다. 운전면허증을 자랑하고 싶었지만, 잔소리할까 봐 숨겼다. 입이 간질거려 며칠 못 가 고백했다. 남편 반응은 의외였다. 3일 동안 동네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연수를 해줬다. 거침없이 운전하는 나에게

“택시도 이렇게 안 다닌다!”

라며 안전운전을 강조했다.

난 운전이 재미있었다. 집에서 듣던 라디오를 차 안에서 들었다. 자동차 운전석에 앉아 라디오를 들으며 달리는 동안 온갖 상상을 했다. 생각에 빠져 자동차 사고를 낼 뻔도 했다. 고속도로를 달릴 땐 겁 없이 과속운전을 했다. 운전이 즐거워 ‘하루 종일 라디오를 들을 수 있는 택시 운전을 할까?’라는 생각도 했다.    


 1995년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남편이 쓰러졌다

공식적으론 ‘과로’였지만, 과하게 즐긴 ‘술 탓’이다. 남편은 중환자실 환자가 되었다. 난 의식 없는 남편 귀에 매일 속삭였다.

“어서어서 캄캄한 터널을 지나 밝은 빛 따라 나에게 와. 제발! 감은 눈을 떠”

보호자 대기실 의자에 앉아 살포시 잠이 들었던 날이다. 멀리서 들려오는 노랫소리에 난 눈을 떴다. 

“자고 나면 또 다른 세상. 눈을 뜨면 꿈같은 세상…” 

귀가 번쩍 눈이 번쩍 떠졌다. 이건 딱 내 바람이었다. 해가 뜨면 남편 의식이 돌아올 것 같았다. 난 기도하는 마음으로 가수 ‘이승철의 너의 곁으로’라는 노래를 들었다.

하지만, 노랫말 같은 기적은 없었다. 남편은 1996년 1월 6일 서른아홉 생일을 며칠 앞두고 내 곁이 아닌 하늘 곁으로 갔다. 노랫말처럼 ‘꿈같은 또 다른 세상’이 왔다. 셋에서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딸과 나 둘만 남았으니깐. 

  https://youtu.be/8ciJ4MQwqss?si=l7AGFQLfPOIOttLr

<YouTube 이승철 너의 곁으로>


 그 후 난 경북 포항에서 친정이 있는 전남 순천으로 이사했다

낯선 곳에 엄마와 둘만 있다는 두려움으로 딸은 내 손을 놓지 않으려 했다. 난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아픔을 숨긴 채 당당한 모습을 보이려 애썼다. 눈뜨기도 힘든 표현할 수 없는 통증이 밀려왔지만, 그 누구에게도 하소연할 수가 없었다. 난 잠깐이라도 숨을 곳이 필요했다. 내가 좋아하고 즐기던 운전이 그런 곳이 되어주었다. 난 라디오 볼륨을 최고로 올린 채 고속도로를 달렸다. 폭발했으면 하는 마음으로 힘껏 액셀러레이터를 밟으며 과속했다. 단속하던 경찰분들을 자주 만났다. 범칙금은 상상에 맡긴다.


 수많은 가요가 그때의 내 심정을 대신해 줬다.

나는 남편 죽음을 통해 미국 정신과 의사이자, 임종 연구 분야의 개척자인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Elisabeth Kübler Ross) 분노의 5단계’를 그대로 경험했다. 죽을 만큼 힘들었던 아픔을 부정하고 분노하다 우울증도 왔다. 즐기던 운전 중 운전대를 때리며 큰소리로 따라 불렀던 대중가요가 이런 나를 위로하고 보듬어줬다. 나는 천천히 극복해 나갔다. 딸과 나 둘만 남았다는 현실을 인정했다. 살아남기 위해 두 발에 힘을 주고 세상을 향해 섰다. 비바람이 몰아쳐도 나에겐 우산을 들 기운이 있다. 그 힘은 어린 딸과 가족들 그리고 날 응원하는 친구와 지인들이 내 뒤에 버티고 있어 만들어졌다.    

https://youtu.be/eRb7tXsI4Zw?si=IOggCBvGpdzR-_oI

<YouTube 최재훈 잊을 수 없는 너>


난 여전히 운전하면서 노랫말의 주인공이 된 것처럼 울고 웃는다

혹시 이런 나를 운전 중 본 사람이 있다면 “미친 것 아냐?”라고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 또한 내겐 힘이 되었다. 우리가 즐겨 듣는 노랫말 속에는 ‘사는 게 힘들고 고달파도 극복할 수 있어. 넌 잘하고 있어. 오늘도 힘내!’라는 응원과 칭찬이 들어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응원과 칭찬에 오늘도 나는 운전대를 잡자마자 어깨 들썩이며 큰 소리로 노래를 따라 부른다.

“이 세상 위엔 내가 있고, 나를 사랑해 주는 나의 사람들과 나의 길을 가고 싶어. 많이 힘들고 외로웠지. 그건 연습일 뿐이야. 넘어지진 않을 거야. 나는 문제없어…” 가수 황규영의 ‘나는 문제없어’라는 노래다. 내 노랫소리가 흙으로 돌아간 사람들 귀에도 들리길 바랜다. 노래 제목이 그들과 내 삶이니깐.

https://youtu.be/h8TM4lQxKsE?si=Gj1mBfVJk_s4I4C2

<YouTube 황규영 나는 문제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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