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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뱃살공주 Feb 22. 2024

통(通)하였느냐?

제주도 엉또폭포

<2024.2.19. 연합뉴스 사진>


어제 구름 잡고 떠난 바람이 비를 안고 돌아와 창문을 두드리는 아침이다.

바람에 흔들거리는 비가 철제난간을 때린다. 쇳소리가 구름 속처럼 포근한 이불속에 잠겨있는 날 부른다. 나는 밤새 굳어있던 팔다리를 흔들며 부엌으로 향했다. 가스레인지 위에 주전자를 올리는데 아파트 안내방송이 나온다. 오늘부터 내일까지 많은 비가 내리면서 기온도 떨어져 도로가 얼 예정이니 조심하라고 한다. 관리실 직원 목소리에서 기계음으로 바뀐 안내방송이 베란다 철제난간에 부딪히는 빗소리와 섞인다. 

물이 끓으면 휘파람 소리를 내는 주전자가 온 집안에 울려 퍼진다. 난 따뜻한 홍차 한 잔을 들고 텔레비전을 켰다. 뉴스에서 폭우가 쏟아지는 제주도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엉또폭포 모습이다. 한라산에 300mm가 넘게 내린 폭우로 평소 물이 없던 엉또폭포가 터져서 장관이다. 난 홍차 잔을 쥐며 텔레비전 앞에 자리 잡고 앉았다.  


몇 년 전 탁구장에서 만난 친구와 3번의 여름을 제주도 올레길에서 보냈다.

우린 배낭과 등산지팡이를 들고 걷다 지치면 근처 찜질방에서 묵었다. 그 당시 매년 빠지지 않고 찾던 곳이 엉또폭포다. 갈 때마다 우린 폭포답지 않게 물이 찔끔찔끔 흐르는 것만 보고 왔다. 이미 다녀온 사람들이 장관인 엉또폭포 모습을 꼭 봐야 한다고 해서 매년 갔지만 우린 못 봤다. 1길에서 시작된 올레길을 9길을 끝으로 제주도 원정을 마쳤다. 오늘 텔레비전을 통해 물이 쏟아지는 엉또폭포를 보니 묵은 체증이 쑥 내려간 기분이다. 직접 눈으로 본 사람들이 추천할 만한 폭포수다.

난 제주도 올레길을 함께 했던 친구에게 전화했다. 몇 번의 신호음 끝에 전화받은 친구 목소리가 잠겨있다.

“우리 학교 선생님이 돌아가셔서 지금 장례식장에 있어.”

고인이 되신 선생님 성함을 들은 난 깜짝 놀랐다. 나와도 인연이 있던 분이다. 우린 오후에 만나자며 전화를 끊었다.

지난해 12월 얼굴 한번 보자 했는데. 서로 시간이 엇갈려 목소리만 듣고 말았다. 그런 분이 돌아가셨다니. 난 진정되지 않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나는 약속 장소로 가는 동안 고인 생각에 잠겼다.

친구를 만나 그간 사정을 들었다. 고인은 12월 말 방학을 앞둔 주말 집에서 쓰러졌다 한다. 가족들은 외출 중이었고 혼자 있던 고인은 갑작스러운 흉통으로 구조 요청 후 쓰러졌단다. 구조대가 위치 추적 끝에 고인 집에 도착했을 땐 이미 의식불명 상태였고. 약 한 달 정도 병원 중환자실에 있었단다. 인공호흡기에 의지한 식물인간 상태인 고인을 가족들은 어제 눈물로 보냈다고 한다. 지병이 없어 스트레스로 인한 심정지라고 했단다. 평소 자신 관리에 철저했던 사람이었는데. 더 충격이다. 회식에서 술잔을 들고 ‘우린 굵게 즐겁게’라고 외치던 고인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살다 간 걸까?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물이 핑 돌았다. 얼굴 한번 볼걸. 전화라도 한 번 더 해볼걸.

친구와 난 고인의 명복을 빌며 뜨거운 차 한잔 후 헤어졌다.     


텔레비전에서 봤던 미치도록 물이 쏟아지는 엉또폭포 모습이 떠올랐다.

우리 혈관에 혈액이 저렇게 시원하게 흐른다면. 심정지 따윈 없을 건데. 사람은 머리부터 발가락 끝까지 산소가 필요하다. 어느 한구석이라도 산소공급이 원활하지 않으면 썩거나 심장이 멈춘다. 혈관 속의 혈액이 중요한 산소와 함께 우리 몸 전신을 달린다. 달리다 주춤거린 순간 우린 가슴 통증이나 두통 또는 소화불량 증상 등을 느낀다. 느끼는 순간 병원 응급실이나 구조 요청을 하는 사람은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다. 장학회에선 더 많은 사람이 이런 증상을 흘려버리거나 증상이 없다며, 일반인들이 심폐소생술 교육을 받아 구조대가 오기 전까지 소생술을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가끔 의인이라며 소개해 준 뉴스가 생각난다. 증상을 호소하는 사람을 위해 구조 요청과 함께 가슴압박을 바로 실시해 사람을 살렸다는 뉴스다. 누구라도 겁내지 않고 의인처럼 행동하려면 심폐소생술 교육과 꾸준한 가슴압박 연습이 필요하다.


집으로 돌아온 난 앨범 속에서 고인 사진을 찾았다.

가지런한 이를 드러내고 큰 키를 자랑하듯 무리 뒤쪽에서 웃고 있다. 앨범 속 사진 위로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 난 안방으로 가 베개를 가져왔다. 거실 바닥에 베개를 둔 채 하나 둘 셋 네소리 내며 가슴압박을 연습했다. 내 혈관을 흐르는 혈액이 제주도 엉또폭포처럼 시원하게 흐르길 바라는 마음으로 서른까지 세며 열심히 눌렀다. 오래간만에 눌러보니 쉽지 않다. 팔과 어깨도 뻐근하고. 난 양팔을 흔들어 풀며 '비가 내리니 아파트 계단 운동하면서 폐활량도 늘리고 산소도 많이 줘야지.'라며 현관문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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