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뱃살공주 Mar 22. 2024

삶이 죽음을 이기다.

책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를 읽다.

2014년 여름방학 때 미국과 캐나다에 걸친 북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폭포인 ‘나이아가라 폭포’를 봤다. 눈으로 직접 목격한 거대한 폭포수와 요란한 굉음에 같이 여행 중이던 막냇동생 가족들과 난 부들부들 떨었다. 발레리나를 꿈꾸던 조카 지원인 미국 쪽 폭포수 앞에서 가냘픈 팔다리를 흔들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쏟아지는 폭포수를 배경으로 한 마리 백조가 사뿐히 날고 또 날았다. 햇살이 눈부셨는지 눈을 가늘게 뜬 막냇동생과 지원이 오빠, 이종사촌 언니인 내 딸은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거대한 폭포수가 흩어져 날리듯이 발레하는 모습이 날아갈까 봐 한 컷 한 컷 정성을 다해 찍었다.

그 당시 늘 ‘죽음과 삶’이 함께였던 나는 쏟아지는 물줄기와 한 몸이 된 조카 등 뒤 폭포수를 넋을 놓고 바라보며 혼자 중얼거렸다.

‘이대로 거대한 저 폭포수에 뛰어든다면. 뼈도 못 추린다는 말을 실감하겠다. 아이고! 무섭다.’

난 격렬한 폭포수 앞에서 죽음보다 삶을 더 생각한 것이다. 우린 빨간 우비를 입고 캐나다 쪽 유람선을 타고 폭포수 근처까지 갔다. 거대한 강과 폭포수를 온몸으로 맞았다. 사람의 힘으로는 하기 힘든 위대한 자연 앞에서 우린 목이 터지도록 소리만 질렀다.

미국 여행 후 난 ‘죽음’이란 단어를 시간이 흐르면 자연스럽게 오는 ‘삶’의 일부라 생각하며 살았다.


작가 페트릭 브링리는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에서 경비원으로 근무한 경험을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책을 통해 풀었다. 2층 건물인 미술관엔 근 현대 거장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으며, 복사품은 없는 곳이다. 난 미국여행 당시 그 앞을 지나가기만 했던 기억에 책을 읽으며 아쉬워했다.  

작가는 그의 형이 죽은 후 고통 속에 빠졌다. 가족 죽음 후 많은 사람들이 가슴속에서 점점 커가는 검은 개를 이기지 못하고 꺾인다 하는데 작가 또한 그랬다. 뉴욕 한복판에서 일명 '뉴요커'였던 작가는 검은 개를 이기지 못하고 휘청거린 순간 모든 것을 놨다. 그런 그가 찾은 곳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간인 '미술관'이었다. 작가 표현을 빌리자면 '신발바닥에 붙어있는 껌 같은 작은 일이라' 여기는 경비원을 스스로 선택했다. 가장 아름다운 곳에서 가장 단순한 일을 하는 사람이 '미술관 경비원'이라는 생각에서다. 그곳의 경비원들은 스스로를 '허가받은 교도소 수감자들'이라 일컬으며 작품을 보호하고 관람객의 안전을 지킨다. 작가는 매일 다른 전시실을 지키며 수많은 작품과 같이했다. 직장동료, 명작, 관람객들을 통해 작가는 검은 개를 서서히 밀어냈다. 그의 직장이 그에게 절실했을 산소공급원이 된 것이다.  

형의 죽음 후 슬픔에 빠진 작가 어머니는 작가와 같이 벤 프랭클린 파쿠웨이를 벗어난 미술관에서 슬픔을 눈물로 토해낸다. 14세기에 활동한 피렌체 출신의 '니콜로 디 피에트로 제리니'의 마치 아들이 살아 있는 것처럼 그를 껴안고 있는 어머니를 그린 그림이다. 이 그림은 '통곡 혹은 피에타'라 부르는 장르에 속한 그림이라 한다. 책에 수록된 그림을 보며 작가, 작가어머니 통곡에 나도 동참했다.

죽은 형보다 더 나이 든 사람이 된 작가는 더 이상 호수처럼 고여있는 일이 아닌 생동감 있게 날뛰는 일을 찾아 경비원 10년을 정리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작가는 '로어 맨해튼 도보여행 가이드'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사람들을 이끌고, 그들에게 세상을 탐험하는 것을 도와주는 일을 시작하며 작가는 나에게 이렇게 말을 걸었다.

"죽은 자가 선물해 주고 간 시간은 나만의 것을 만드는 일에 써야 한다."라고.


이 책을 읽으며 난 미국여행 당시를 떠올렸다.

난 건방지게 세상 힘든 일은 나 혼자 짊어졌다며 '죽음'이 별거 아닌 척하며 건성건성 살았다. 먼저 떠나간 사람들에게 절실했을 '살아있는 시간'을 무시했다. 오히려 떠난 그들을 부러워하면서. 그런 내가 거대한 자연 앞에서 '삶'의 소중함을 깨달으며 겸손해졌다. 여행에서 돌아온 난 가장 듣기 좋다는 음 높이 인 '솔'에 가까운 목소리와 항상 입술을 양쪽 귀 쪽으로 당기며 재미있게 지내려 노력했다. 그렇게 살다 보니 주변 사람들은 나를 '명랑하고 경쾌한 사람'이라 한다. 그들은 내가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검은 개를 얼마나 열심히 밀어내고 있는지는 모른다. 지금까지 난 검은 개를 잘 다루면서 살아왔다. 앞으로도 쭉 그럴 거고.

나에게 한부모 가장이란 자리를 던져주고 떠난 남편 나이를 훌쩍 넘어선 지금. 그가 주고 간 소중한 시간을 허투루 쓰지 않기 위해 그가 경험해보지 못했던 것들을 난 더 신나게 누리려 한다. 나의 삶이 그의 죽음을 이겨냈다.


작가의 이전글 光자매 날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