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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뱃살공주 Nov 30. 2023

아버지의 점방

그리움이란 단어에 울음을 삼킨 시간.

 텔레비전에서 탤런트 임현식 님을 오래간만에 보았다살이 빠지고 머리숱이 줄어든 모습에 내 두 눈이 번쩍 뜨였다돌아가신 아버지 모습을 닮아서다눈웃음 살살 흘리면서 약간은 수줍은 듯한 목소리로 다정하게 말하는 임현식 님 모습에 난 친정 식구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아버지가 텔레비전에 나온 것 같아빨리 봐 봐” 

그 프로그램을 본 가족들은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맞다우리 아버지네보고 싶다울 아버지

친구들은 어떤 어려운 일이 닥치면 아이고 엄마!’를 외쳤다난 어릴 때부터 아이고 아버지!’라 했다아버지가 6남매 중 둘째 딸이자 순번으론 세 번째인 날 더 예뻐한 것도 아니었는데이런 나에게 엄마는 질투한 듯 말했다

같은 김 씨라고 넌 아버지만 좋아하지!”     


 아버진 어린 나이에 부모님이 돌아가셨다고아가 된 고모 3명은 배고픔을 피해 일찍 결혼했다혼자 남은 아버지는 밥만 먹여주면 된다는 조건으로 남의집살이 했다. 배를 자주 곯았다 한다그래서인지 배고픔은 죽음이고 슬픔이다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것은 세끼 밥이다라고 했다우리 집에 오는 손님이나 친구들도 꼭 밥을 먹여 보냈다우리 6남매가 밥상에서 맛없게 먹는 날엔 큰 소리로 혼내면서 숟가락으로 손등을 때렸다우린 눈물콧물 흘리면서 밥을 꾸역꾸역 떠먹었다. 

어린 내 기억 속 아버지는 중앙시장에서 점방을 했다. 2~3평쯤 되는 곳으로 온갖 물건이 있는 만물상회였다점방 다락방은 우리 6남매 식당이자 놀이터였다가끔 잠든 우리를 아버진 걸리거나 업고 살림집으로 갔다내가 고등학생이 되면서 2~3평 단층 점방을 팔고, 9평 3층 가게로 확장 이사했다부모님은 우리 6남매 결혼 후까지도 그곳에서 장사를 계속했다     


 이젠 쉬시라는 우리 성화(成火)에 환갑 지난 아버진 가게를 전·월세 놨다. 40년 가까이했던 일을 멈춘 것이다가게 떠나는 걸 힘들어하시는 모습에 성질 못된 내가 한마디 했다.

아버지회사도 60이면 퇴직하잖아두 분도 이제 퇴직할 때가 된 거야자식들도 다 자리 잡았으니 이젠 편한 시간만 가져봐자 갑시다꽃길 걸으러.

예끼아직 이렇게 힘이 펄펄 넘치는데.

아이고아버지 환갑 넘었으니 이젠 쉬셔야지엄마도 마찬가지고앞으론 아끼지 말고 팍팍 쓰면서 맛있는 것 사 먹고 여기저기 여행도 다니셔알겠죠?”

가게에서 받는 월세는 부모님 생활비가 되었다부족한 부분은 우리가 가끔 드리는 용돈으로 해결했다그런 부모님께 난 또 잘난 척하면서 소리 질렀다.

가게를 팔든지은행에 넣어둔 전세금을 쓰든지사시는 동안 그냥 다 쓰라고요!”

엄마가 벌인 사업으로 두어 차례 말아먹은 후경제권을 꽉 쥔 아버지는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이 돈으로 우리 둘은 살만하다필요 없이 돈을 뭐 하러 써!”     

 

아버지가 마지막 투표하던 날

 우리 6남매는 부모님 돌아가시고 가게를 팔았다딱히 누가 관리할 수도 없고더 이상 그곳에 갈 이유가 없어서였다아버지의 성실함과 노력가족에 대한 책임감깊은 사랑을 우린 다른 사람에게 넘겼다

며칠 전 나는 소주와 과자를 챙겨 가족 봉안당을 갔다흙먼지가 가득한 봉안당 안을 깨끗이 닦고 문을 활짝 열었다벽을 사이에 두고 계신 두 분께 겨울을 재촉하는 바람이 불었다.

아버지 바람 쐬니 어때답답함이 싹 사라지지엄마는 시원한가 봐두 분 가게 팔린 건 아시죠이제 가게는 싹 잊고 두 분이 더 재미나게 지내세요소주 한잔하시고 서운하고 섭섭한 마음 날려버리세요.”

바람이 내 마음을 대신 전달하듯이 나무를 흔들어댄다아버지가 술 한잔 드시면 늘 부르던 어머니의 손을 놓고 돌아설 때면…’ 노래도 들린다엄마보다 3년 먼저 돌아가신 아버진 평생을 그리던 당신 어머니와 부인 그리고 먼저 떠난 가족들을 그곳에서 다시 만나셨나 보다사진 속 아버지는 여전히 따뜻한 미소로 나에게 말한다.

그래잘했다너희만 좋으면 됐다


아버지 첫사랑이었을 점방이 가게가 되었고지금은 우리 6남매의 추억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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