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워도 이쁜 녀석들^^
복도에서 졸졸 따라오던 1학년 녀석이
“선생님! 만수무강하세요”
라며 90도로 고개를 숙인다.
평소에 뻔질나게 보건실을 드나든 녀석이다.
나는 피식 새 나오는 웃음을 참고
근엄한 자세로 목소리 높여
“오냐. 네 덕분에 오래 살겠다. 고맙다”
“아~아! 보건쌤! 싸랑한다고 말해주세요!”
온몸을 흔들면서 어울리지 않게 애교를 떤다.
굵은 목소리로
“싸랑한다! 정*아!”
이름을 불러주니 냅다 교실로 뛰어간다.
어디 저놈뿐이랴?
잠깐 교무실 다녀왔더니
컴퓨터에 쪽지가 붙어있다.
“보건선생님 2 기계자동차 2반 세*입니당!
손가락을 아야 해서 밴드랑
소독약을 좀 썼씀다. ㅠㅠ
언제나 쏴랑합니다.♡”
“자유로운 영혼 왔다 감.
아이러브유. 누굴까용?”
“연모합니다.”
출장 다녀온 다음 날
복도에서 마주친
여학생 두 명이 소리를 지른다.
“아앙 보건쌤 어제 어디 갔어요?
제가 아팠다고요!!!”
보건실 문에 ‘출장 중’이라는
팻말이 떠억 있는데도…
나도 덩달아 목소리 높이면서
“아아~나도 아파요!”
날 째려보고 지들 가던 길 간다.
소강당에서 심폐소생술 실습을 했다.
여자가 쓰러지면 어떻게 하냐고
키득거리던 녀석들이
막상 실습을 시작하니
심각한 표정으로
순서를 기억하면서
가슴압박까지 한다.
누군가의 생명을
특히, 우리 가족을
살린다는 마음으로
진지하게 누르고
또 누르는 녀석들이 기특하다.
(실습 마치고 나니
아이고 난 온 삭신이 아프다^*^)
그래, 그래도
이런 맛에 보건선생님 하는 거지.
녀석들 덕분에
난 계속 만수무강(萬壽無疆)이다.^^
(2023.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