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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뱃살공주 Jun 24. 2024

더없이 평범한

특별보단 보통

밤 12시쯤 2주 만에 현관문 비밀번호를 눌렀다난 깔끔하게 정리된 현관 바닥에 놓여있는 슬리퍼가 반가웠다고개를 쑥 내밀어 들여다본 거실엔 적막함과 낯섦이 가득했다난 현관에 ‘Heavy’라는 딱지가 붙은 26킬로나 되는 여행 가방을 둔 채 거실로 들어섰다거실 창을 등지고 있는 화려한 색깔의 큰 잎사귀를 자랑하는 크로톤과 눈이 마주쳤다묵직한 그레이 색깔의 화분 위로 늘 고개를 빳빳이 쳐들고 있던 잎들이 2주 만에 만나는 나에게 45도 각도로 인사를 한다떠나기 전 듬뿍 물을 줬었는데 더운 날씨에 목이 말랐나 보다난 2주 동안 함께 했던 운동화를 벗어던지고 부엌으로 달려갔다꼬들꼬들하게 말라있는 커피포트 뚜껑을 열고 가득 물을 받아 크로톤에게로 갔다화분에 물을 주며 그러데이션 된 넓적한 잎사귀들을 쓰다듬었다휑한 거실 벽에 부딪쳐 울리도록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보고 싶다고 많이 울었구나울음 끝엔 목이 마르니 물을 마셔야 하는데미안해물이 늦어서어서 마시고 기운 차리자.”

거실과 베란다에 있는 몇 안 되는 화분들도 하나하나 살펴봤다애플민트가 처량한 모습으로 날 기다렸다난 처량한 애들의 목마름을 해결해 주고피곤함과 늦은 시간을 이유로 그대로 잠들었다.


내 집내 침대난 깊고 깊은 잠을 잤다. 2주 동안 집을 비웠으니 2주 동안 집안에서 뒹굴었다나와 대화를 충분히 할 수 있는 텔레비전과 함께 했다

여행동안 자연을 충분히 담아 온 내 두 눈에게 사람이 만든 장면만 보여줬다사람의 힘으로 만들 수 없는 자연 앞에 소리 지르던 난 어디론가 사라지고 사람이 만든 장면에 웃고 울었다귀에 쏙쏙 들어오는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어 그들이 듣지 않을 대답을 하면서 난 2주를 보냈다   

  

뉴질랜드 북섬을 거쳐 남섬그리고 호주 도시 몇 군데를 보고 돌아왔다딸과 둘이만 하는 여행이 아닌 단체여행으로 떠난 길이었다일정을 마치고 인천공항에서 2주를 함께했던 일행들과 잘 가라는 인사를 나눌 땐 서로 아쉬워했다. 이번여행에서 처음 만난 사람들이지만 2 주면 이 들만한 시간이기도 하다.

딸과 난 인천공항에서 광명역까지 함께 한 후 헤어졌다난 순천행딸은 마산행내가 7분 먼저 출발했다. ‘Heavy’ 딱지가 붙은 가방을 들고 기차에 힘들게 오르는 내 뒷모습을 바라만 봐야 했던 딸이 기차 출발 후 문자를 보내왔다.

엄마미안해가방이 무거운데 들어주지도 못하고내가 더 늦은 시간 기차를 탈 걸 그랬나 봐미안난 도착하면 오빠가 기다리고 있는데. 엄만 순천에 도착해서도 혼자 해결해야 할 건데내가 같이 갈 걸 그랬나특히 이번 여행 팀들이 모두 부부여서 더 마음이 그래내 마음도 이런데 엄마는

문자 안에 딸 눈물이 함께했다그 문자에 나도 울컥했다혼자 살아온 시간만큼 두껍게 입혀진 괜찮아가 딸 문자에 무너지려 했다난 한 겹 한 겹 벗겨지려는 마음을 다시 단단히 동여매고 딸에게 문자를 보냈다.

한두 번 한 것도 아니고괜찮아ㅎㅎ 난 이미 선수야걱정은 광명역에 버리고 넌 오빠가 기다리는 그곳으로 후다닥 달려가. 난 씩씩하게 내 집으로 갈게. 함께해 줘서 2주 동안 즐거웠다안녕  


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겨울잠을 자는 곰처럼 2주를 보내고 오늘은 팔다리 벌려 내가 좋아하는 기지개를 쫙 켰다. 어제에 이어 오늘도 비가 내릴 것처럼 흐린 날이지만 오래간만에 꽃단장도 했다. 2주 동안 푹 빠졌던 텔레비전에서 이젠 활자 속으로 뛰어들 시간이다난 2주 동안 충전을 충분히 했다이제 현관문을 열고 나서면 된다원영적 사고로 가득 찬 나는 날개 달린 운동화에 두발을 넣는다. 통통 튀는 내 특유의 걸음으로 한발 두발 엘리베이터 앞으로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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